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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음] 고독한 식사
게시물ID : panic_917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나틱프릭
추천 : 10
조회수 : 322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12/08 00:55:36
람답게 생활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인해 문을 굳게 닫고 산 지가 글쎄... 삼 개월쯤 되었던가?
의사에게 가봐야 공황장애니, 대인 기피증이니 이따위 소리나 할 게 뻔하므로
그냥 이래저래 시간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방안이라면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공허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냉장고 안에는 다 시어서 식초맛을 내는 김치와 이런 저런 밑반찬,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은 김 몇 장과 언제 만들었는지 상상하기도 힘든 콩나물 밥이 들어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얹힌 냄비 안에는 차갑게 식은 이름 모를 국이 들어 있었다.

....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웅얼거리는 소리.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쪽방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하다.

아니 사실은 그냥 환청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처음 왔을 때부터 무언가 수상했다.
원래 살았던 여자는 불친절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틱틱대는 말투에, 사람을 쏘아보는 좍 찢어진 눈깔하며
그 씨발같이 듣기싫은 새된 목소리...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진다.

한 날은 내가 얼마 전 사온 그림을 걸기 위해 벽에 못질을 하고 있으려니까
이 집 주인이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야밤에 뭐하는 짓이냐고.
그때가 새벽 두 시였던가? 나한테는 초저녁인데. 그렇게 몇 번의 언쟁이 오간 후에 그 여자는 지쳐서 돌아갔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나를 귀찮게 하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뿐이었다.
그 여자가 잘못 한...

또 소리가 들린다. 쪽방에서 들려오는 지긋지긋한 환청.
환청은 이상하게도 문을 뻥뻥 걷어차면 조용해지곤 했다.

생각해보면, 그 여자, 못생긴 편은 아니었다. 볼륨감 있는 몸매 하며
외모도 따져보면 상위권에 속하는 것 같고. 성격만 조금 둥글둥글했으면 내가 당장에 대쉬했을 터인데.
사실 그 여자를 보기 위해 일부러 일을 벌이는 것이기도 했었다. 그 여자는 항상 얇은 반팔 티셔츠에 짧은 돌핀 팬츠를 입었었다.
그 여자를 보기 위한 노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 벽에는 못자국으로 가득했다.

그래 그 날은 참 이상ㅎ....

아니 아까 조용히 하라고 분명 이야기 했는데 또 지랄이야?
개같은 환청
나는 쿵쿵 소리를 내며 쪽방으로 가 문을 홱 열어젖혔다.

 "......"

이 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할 때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내 눈 앞에 묶여 있는 여자는 반팔 티셔츠에 짧은 돌핀 팬츠를 입고 있었다.
좍 찢어진 눈깔. 볼륨감 있는 몸매가 눈에 또 들어왔다. 
손발이 묶인 채로 내 밑에 깔려서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그렇게 오래 갇혀 있었으면서 아직도 힘이 남아 있나 봐?"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쳤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나는 흥분되었다.
그 년의 뺨을 수 차례 후려쳤다. 뺨이 시퍼렇게 물들고 입술과 눈에 핏기가 맺힌 것을 보았다.
그 여자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년의 입을 막고 있던 청테이프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나는 그 년의 머리채를 잡고 내가 식사를 하던 테이블에 거칠게 앉혔다.

나는 휴대폰을 그녀 앞에 던졌다.
본인의 휴대폰을 집어던지는 나를 보는 눈이 커졌...던 것 같다.

 "찍어."
 "...네?"

말귀를 못 알아 먹는 여자에게 젓가락을 집어 던졌다.
젓가락은 맑은 쇳소리를 내며 저 벽으로 나동그라졌다.

 "찍으라고 이 년아."
 "...왜...왜요?"

내 말에는 토를 달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뭐, 이제는 더 이상 이 년을 혼내줄 이유가 없다.

뒤이어 그녀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콩나물밥을 한 숟가락 뜬 채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녀와 함께 먹는 마지막 밥 한 술이었다.
이 식사를 다 하고 나면 그녀는 나와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이다.

이미 박제를 위한 준비는 다 해놓았다.
나는 언제 만들었는지 상상하기도 힘든 콩나물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오늘따라 쉰 밥이 더 맛이 좋은 것 같다.

콩나물밥d_seabel.jpg

출처 inspired by. 콩나물밥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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