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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사흘
문상객 사이에 사흘이 앉아 있다
누구도 고인과의 관계를 묻지 않는다
누구 피붙이 살붙이 같은 사흘이
있는 듯 없는 듯 떨어져 있다
눈코입귀가 눌린 사람들이
거울에 납작하게 붙어 편육을 먹는다
사흘이 빈소 돌며 잔을 채운다
국과 밥을 받아놓고 먹는 듯 마는 듯
상주가 사흘을 붙잡고 흐느낀다
사흘은 가만히 사흘 밤낮 안아준다
죽은 뒤에 생기는 사흘이라는 품
사흘 뒤 종이신 신고
불속으로 걸어가는 사흘이 있다
서수찬, 갈매기 떼
해변에 갈매기 떼가
내려앉아 있다
사람이 다가오자
일제히 날아오른다
수많은 갈매기 떼가 서로
부딪칠 만도 한데
바닥에는 부딪쳐
떨어져 내린 갈매기가
한 마리도 없다
오밀조밀 틈도 없이 모여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날개를 펼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었는데
실상은 갈매기들은
옆 갈매기가 날개를 펼
공간을 몸에다
항상 숨기고 있었다
최영미, 인생
달리는 열차에 앉아 창 밖을 더듬노라면
가까운 나무들은 휙휙 형체도 없이 도망가고
먼 산만 오롯이 풍경으로 잡힌다
해바른 창가에 기대앉으면
겨울을 물리친 강둑에 아물아물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시간은 레일 위에 미끄러져
한 쌍의 팽팽한 선일 뿐인데
인생길도 그런 것인가
더듬으면 달음치고
돌아서면 잡히는
흔들리는 유리창 머리 묻고 생각해본다
바퀴소리 덜컹덜컹
총알처럼 가슴에 박히는데
그 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아직도 못다 한 우리의 시름이 있는
가까웠다 멀어지는 바깥세상은
졸리운 눈 속으로 얼키설키 감겨오는데
전선 위에 무심히 내려앉은
저걸
하늘이라고 그러던가
양중해, 연
푸른 하늘 아득히
한없이 날아가고 싶어도
너를 떠날 수 없어
날아갈 수가 없다
내 무슨 전생의 인연으로
너의 얼레에 이렇게 매이어
네가 실을 늦추어 주면
나는 바람을 타고 둥둥 솟아오르다가
때론 이대로
아주 너를 떠나가는가 하다가도
네가 얼레를 잡아 감으면
다시 너에게로 감기어 들어오는 나
터진 가슴의 앙상한 늑골 사이로
문풍지를 울리듯 찬바람에 스치우며
너의 얼레 하나로
감기었다 풀리었다 하고 있으니
높고 넓은 하늘이 저만치 푸르러도
나의 하늘은 너와의 거리일 뿐
해가 빛나도 별이 반짝여도
나는 늘 너로부터 이만쯤 떠 있어야 한다
너의 얼레에 매여 있는
이 실오라기가 끊기는 자유가
무서워 무서워
늘 허공에서 떨고 있는 나의 삶이다
이시영, 무늬
나뭇잎들이 포도 위에 다소곳이 내린다
저 잎새 그늘을 따라 가겠다는 사람이 옛날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