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어떤 나무의 말
게시물ID : lovestory_917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5/06 20:20:5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나희덕, 어떤 나무의 말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

 

 

 

 

 

 

2.jpg

 

김희업, 담배 끊은 파이프




연기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입술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얼굴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사내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3.jpg

 

이영춘, 세월




한 폭도 못 되는 내 손등을 들여다보면서

손등 면적보다도 넓고 깊게 골진

세월을 읽는다


애써 공들이지 않았어도

애써 힘들이지 않았어도

이토록 골 깊이 뿌리내린 세월


하많은 그 광음 속에

진정 내가 심은 것은 무엇인가

새삼 내 정원이 텅 빈 것을 알았을 때

어이없게도 그 텅 빈 사잇길로

구름 몇 조각이 흘러가고 있었다

 

 

 

 

 

 

4.jpg

 

박연준, 서랍




사랑하는 사람아

얼굴을 내밀어보렴

수면 위로

수면 위로


네가

떠오른다면


나는 가끔 눕고 싶은 등대가 된다

 

 

 

 

 

 

5.jpg

 

원구식, 탑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한꺼번에 무너진다

무너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 한꺼번에 무너진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다

당연히 무너져야 할 것이

가장 안정된 자세로 비바람에 천년을 견딘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다 보면

이것만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아 어쩔 수 없는 무너짐 앞에

뚜렷한 명분으로 탑을 세우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탑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탑에 새긴 시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간 무너질 탑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탑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고

무너져선 안 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