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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존경하는 판사님께
게시물ID : panic_917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꼬마글요정
추천 : 16
조회수 : 2624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12/11 15: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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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저의 억울함을 호소하기위해 나왔습니다. 

세상은 지금 한창 신나서 저를 물고 뜯더군요. 
살인자?
의사라는 탈을 쓴 미치광이? 
하얀 가운을 입은 살인자?
참 재미있는 별명들을 붙였더군요. 하하하.
뭐 자극적인 주제라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저는 살인자도 아니고 미치광이도 아닙니다. 

저는 단순한 조력자입니다. 
의사의 역할은 환자를 돕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지극히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측은지심을 발휘하여 환자분들의 고통을 덜어준 것 뿐입니다.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내준 18명의 환자 중 
첫번째 환자였던 김조하 할머니. 
할머니는 생전에도 우리 병원에 자주 오시던 분이었습니다. 저한테 매일 진료를 받으셨죠.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답답해했죠. 
교통사고가 나서 허리밑으로 못쓰게 되자 할머니는 좌절해 식음을 전폐했죠. 
차라리 죽여달라고, 본인은 이렇게 살아가고싶지않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잔인한 가족들과 병원이 한 짓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식음을 전폐한 할머니에게 강제로 튜브를 꽂아 영양을 공급했죠. 
할머니의 죽고싶다는 의사는 철저히 무시된 겁니다. 
왜 할머니의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억압받아야하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할머니는 저에게 죽음에 대한 열망을 자주 비치셨고, 저는 의사로서 이를 충실히 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열번째 환자였던 박은혜 할머니. 
이 분은 정신병으로 고통받으셨죠. 
생전에 누리던 호화로운 유산마저 결국 다 뺏기고,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 할머니에게 자원봉사자가 접근해 회유해 그나마 남아있던 것마저 다 사라졌죠. 
혼자가 된 할머니는 저에게 늘 천진하게 저 먼 곳으로 가면 자기가 원하는 세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가고싶다고요. 저는 그것을 들어드리려했을 뿐이고요. 

또 일곱번째 환자였던 진성준 어린이. 
이 어린이네 집은 특이하게도 5남매 집안이였죠. 
애들은 많고, 돈 나갈 곳은 많고. 
성준이네는 철저히 가난했어요. 슬프게도. 
성준이가 대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집안 꼴은 말이 아니였죠. 
차라리 전뇌사면 뇌사 처리가 될텐데. 식물인간이라니. 
일년이 지나자 성준이네 아버님이 오열하시면서 조용히 저한테 부탁하셨습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요. 본인의 집안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요. 
본인의 손으로는 보낼 수 없으니 의사선생님께 부탁드린다고요. 
아버지가 자식을 보내달라고 말할 심정을 아십니까? 
옆에와서 간절함과 원망으로 악귀가 된 가족들의 모습은요?

이외에도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가 보내드린 분들은 다 이런분들이에요. 
아프다고, 아프다고, 치료가능성이 없는 분들. 

지금 소극적 안락사는 가족 전원의 동의와 의사 2인의 허가를 받으면 가능합니다.
객관적 증거에 집착하는 미국보다 지인의 증거에 의존하는 한국의 시스템의 허점이 보이시지 않으십니까?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살인자가 아닙니까? 
과연 천천히 죽게 만드는 소극적 안락사가 덜 잔인한가요? 제가 했던 적극적 안락사보다?
저는 그분들의 선택에 작은 도움을 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했을뿐입니다. 

잘생각해보시고 판사님의 정의에 따른 결론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철저히 픽션입니다. 실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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