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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기, 엄마와 곤란
엄마가 나를 낳을 때의 고통을
나는 모른다
나를 낳은 후의 기쁨도
나는 모른다
아픈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고통을 나는 모른다
내가 퇴원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울다가 웃던 엄마의 기쁨을 나는 모른다
나는 언제나
엄마의 고통이거나 기쁨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나는 그것을
아주 곤란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김경미, 전대미문(前代未聞)
그녀가 떠났다
그가 떠났다
독사진 속으로 구급차가 들어간다
눈동자가 벽에 가 부딪힌다
방석이 목을 틀어막는다
안개가 촛불에 제 옷자락을 갖다 댄다
우편배달부가 가방을 찢어버린다
가로수가 일제히 자동차 위로 쓰러진다
숨을 멈춰도 끊어지지 않는다
누가 누구와 헤어지는 건
언제나
전대미문의 일정이다
허연, 밥
세월이 가는 걸 잊고 싶을 때가 있다
한순간도 어김없이 언제나 나는 세월의 밥이었다
찍소리 못하고 먹히는 밥
한순간도 밥이 아닌 적이 없었던
돌아보니 나는 밥으로 슬펐고
밥으로 기뻤다
밥 때문에 상처받았고
밥 때문에 전철에 올랐다
밥과 사랑을 바꿨고
밥에 울었다
그러므로 난 너의 밥이다
이면우, 밤 벚꽃
젊은 남녀 나란히 앉은 저 벤치, 밤 벚꽃 떨어진다
떨어지는 일에 취한 듯 닥치는 대로 때리며 떨어진다
가로등 아래 얼굴 희고 입술 붉은 지금
천 년을 기다려 오소소 소름 돋는 바로 지금
몸을 때리고 마음을 때려, 문득 진저리치며 어깨를 끌어안도록
천 년을 건너온 매질처럼 소리 안 나게 밤 벚꽃 떨어진다
심재휘, 옛사랑
도마 위의 양파 반 토막이
그날의 칼날보다 무서운 빈집을
봄날 내내 견디고 있다
그토록 맵자고 맹세하던 마음의 즙이
겹겹이 쌓인 껍질의 날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마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