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에 젤 무서웠던 경험이 딱 두 번뿐인데,
첫번째가 예전에 꿨던 꿈이라면, 두번째가 외지에서 직접 겪었던 이 경험입니다.
생에 처음 모텔이란 곳에 가본 게 어릴 때 가족이랑 멀리 여행갔다가 길 잃어서 숙박한다고 새벽에 급하게 한 번 갔었던 것 제외하고는
성인들어서 일 때문에 한 달 정도 서울에 간 적 있습니다. 그 때가 두번째지요.
기숙할 수 있는 건물도 있었습니다만, 자율성이 없어서
지방 촌사람이 서울까지가서 이 곳, 저 곳 못가는건 아쉬울거란 생각에 개인적으로 숙박소를 찾았지요.
반 장기 투숙이라 할인 좀 받는다 손 치더라도 서울이라 그런가 모텔촌이 전체적으로 비싸더군요.
그런데, 근처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싸다고 입소문이 난 곳이 있길래 바로 갔습니다.
저 말고도 일때문에 올라온 지방인들이 장기투숙 많이 하러 가는 곳이라고 하대요.
(인근에서는 모텔이름만 대면 거의 아는 인지도도 있고, 싸고, 번화가쪽에 위치해서 맞은편에는 24시 편의점도 있구요.)
제가 별로 겁이 없는 편인데,
모텔이 창문닫고 불끄면 내 손도 안보일 정도로 깜깜한지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때문에 옅은 조명 켜고 자려니 무슨 식육점같이 붉은 빛이 들어와서 적응하기 힘들더군요.
모든 불은 작은 리모컨으로 껐다 켰다 되더라구요.
보통은 일행들이랑 많이 오던데, 혼자왔냐며 묻더니 열쇠를 주시는데, 방이 얼마 없다며 특실인데 싸게 주겠다고 복도 끝방을 주시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올라왔지요. 깨끗하고 뭐 별문제 없었습니다만,
첫 날 제외하고, 그 다음날부터는 잘 때마다 가위가 눌리는 거에요.
정신은 꺠어있는데 몸이 안움직이는 거요.
평소에도 피곤하고, 허하면 자주 눌리긴 해서 지방에 올라와서 몸이 많이 힘들긴 한가보다 했죠.
그런데, 제가 한 번도 가위눌리면서 귀신을 본 적이 없거든요?
결국 가위 눌리는 것도 꿈이잖아요.
꿈에서라도 귀신은 본 적 없었어요. 그냥 불쾌하고 귀에서 방울소리나 쩅쩅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만 들리고
원래 가위라는게 잘 때 몸이 불편하면 깨었다 다시 자라고 몸에서 무의식을 깨우는 신호를 보내는 거라잖아요.
저도 항상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가, 아 다시 일어났다 자야하는구나 정도의 자각만 있고, 막 귀신을 보거나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남자아이가 보이더군요.
눈을 감았는데도 방 구조가 다 보이고, 그 남자애가 침대 왼 편에 턱괴고 저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와 진짜 딱 죽는줄 알았습니다.
꿈인걸 알면서도요.
귀신이라면 소복입고, 머리긴 성인 여자를 보통 떠올리잖아요? 뜬금없이 남자 꼬마 아이가 보이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귀신이 보이는게, 진짜 보이는 사람이랑 정신병이라서 환각을 보는 사람이랑 구분하는 법이 있대요.
엄마가 스님한테 들으시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정신병자는 눈을 감으면 그 보인다는 귀신이 안보인대요.
그런데, 빙의나 진짜로 귀신보이는 사람들은 눈을 감아도 보인다나요...
아, 하여간
귀신 꿈은 딱 하루밖에 안꿨어요.
그 후로 센서 달리지도 않은 조명이 멋대로 깜박이는 정도의 일은 뭐 고장 났을 수도 있죠 하도 오래된 건물이었으니까.
의미부여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요.
불쾌해가지고 그 날 이후 부턴 잠도 잘 안오더라고요.
진짜 아저씨가 어이없어 하실 수도 있지만, 혹시 끝방에서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묻고싶었는데
하루는 엘리베이터 타고 가는데 제가 그냥 넌지시
"아저씨 방 새로 빈 곳 있어요?" 하고 그냥 물어만 봤어요.
"있긴 있는데, 왜? 바꿔줄까?"
하시길래 그냥 아뇨 됐어요.
하고 올라왔는데요. 어차피 며칠뒤에 내려갈거고 해서
제가 제일 후회하는게 그 날 방 안바꾼 거였어요 ㅜㅜㅜㅜㅠㅠㅜㅜㅠㅠㅜㅜㅠㅠㅜㅠ
그날 저녁 유독 피곤해서 잠이 오길래 (한 며칠 잠을 설쳐서 그런가)
평소답지 않게 저녁 10시쯤? 바로 씻고 잤거든요?
근데, 아침에 알람우는 소리 듣고, 비몽사몽 일어나서 머리감고, 세수하고 화장하다가 더워서 창문을 열었는데
글쎄 밖이 깜깜한 겁니다.
동도 안텄더라고요.
식겁해서 휴대폰 봤더니... 새벽 3시;;;;
화장까지 다 했는데;;
허탈한 건 둘째치고, 분명히 아침 7시로 맞춘 알람소릴 듣고 깬 것 같은데
그리고 일어나서 시계도 확인 안해보고 왜 머리감고 세수하고 그 지랄을 하고 있었는지
멘붕오고 소름돋아서 창문 다 열어놓고, (밖에 불들어온 편의점이라도 보여야 좀 덜 무서워서요)
침대에 불 다켜놓고 앉아서 잠도 못자고 날 샜습니다.
평소에 몽유병기질 전혀 없습니다.
잠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릅니다.
알람도 세네번 끄고 다시자는 정말 잠많은 잠쟁이에요.
그 날 제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네요.
최근에 한 허름한 여인숙인가 모텔에서 자살한 아저씨(?) 글 보고 제 경험에 비추어 느낀 건데,
허름한 숙박업소에서는 자살이 제법 빈번한가요? 제 꿈에 나온 아이도 혹시 그런 불쌍한 아이였을까요?
휴... 다시 생각하니 싱숭생숭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