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3·1운동 91주년, 아직 청산못한 역사
게시물ID : sisa_792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그네시인
추천 : 2
조회수 : 5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0/03/01 05:40:11


3·1운동 91주년, 아직 청산못한 역사 


올해로 91번째 삼일절을 맞지만 독립운동가의 명예회복이나 재산 환원 문제는 여전히 후손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일제에 재산을 몰수당했어도 국가는 애국지사 후손의 절박한 요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안동 출신 김세동 애국지사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 김 지사는 대대로 물려받은 강원도 태백의 야산에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무기를 만들고 독립자금 모금 활동에 투신했다. 김 지사는 주로 화약과 사제총 등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에게 조달하고 뜻있는 사람들이 건넨 자금을 서간도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보탰다. 신흥무관학교는 백범 김 구 선생과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이 졸업한 학교다. 

1919년에는 “강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파리로 가서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안동의 부호인 김봉경을 찾아가 자금을 조달받기도 했다. 

해가 갈수록 일본경찰의 경계가 삼엄해졌고 김 지사는 이곳저곳으로 숨어 다녀야 했다. 김 지사의 가족들은 항상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고 위협과 고통을 당해야 했다. 

김세동 지사는 1915년 무기 제조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8개월을 복역하고 1918년에는 독립자금을 모금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아버지와 아들도 같은 죄목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일제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김세동 지사 집안의 토지를 1923년 토지조사사업 때 국유 임야로 귀속시켜 버렸다. 김세동 지사의 아버지인 김병락이 1924년 불복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제가 강탈해버린 임야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막아낸 공로로 헌종 때 김 지사 집안에 내려진 땅이었다. 헌종이 내린 교서에는 ‘강원도 태백의 사방 백리땅을 하사한다’고 나와 있다. 

김세동 지사의 증손자 김종훈(55) 씨는 증조부의 업적을 확인하기 위해 20년간 자료를 찾아헤맸다. 그동안 국가는 이러한 김씨 집안의 활동을 외면했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국가기록원 등에 자료열람을 요청해도 6·25때 다 소실돼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었다. 김씨는 곳곳을 찾아다닌지 12년 만에 중요 사실이 담긴 기록을 발견했고 결국 1993년이 돼서야 증조부는 애국훈장 건국장을 추서받을 수 있었다.

증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됐어도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오던 강원도 태백의 임야는 되찾기 힘들었다. 

법원도 소멸시효가 이미 지난 데다 관련 법률이 없기 때문에 땅을 돌려주기는 힘들다는 판결을 내렸다. 2006년 공시지가로 720여억원에 달하는 강원도 태백의 임야는 현재 95% 정도가 국유지로 남아있다.

‘독립유공자 피탈재산의 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 조속 제정 촉구모임’의 총무이기도 한 김씨는 “진정한 독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재 관련법을 대표발의를 한 박상돈 자유선진당 의원은 “친일재산환수법을 만들 때 같이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인데 국가가 직무유기한 셈”이라며 “국가가 받을 것만 챙기고 돌려줘야 할 것은 외면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