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pc방알바 하는중이므로 음슴체
글쓴이는 이제 21살 되어가는 모솔 게이임[이미지가 게이]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시절 내내
폭력과 따돌림을 당했음. 하지만 조금 나사빠진 성격이라 저런것에 굴하지 않고 조금 밝은 또라이처럼 살고있음
고등학교때와 중학교때는 폭력은 있어도 따돌림은 없었기에 이 자식은 나와 맞오줌 싸는 친구다! 라는 녀석도 몇 있음.
나는 공부에 흥미도 없고 돈이 급했기에[게임이라던가 음식이라던가 놀러간다던가]라는 엄청나게 소소한 이유로 고등학교 3학년 편입생 신분으로
폴리텍 학교에 입학 '멀티미디어'과정을 마치고 '컴퓨터 그래픽스 운용기능사'와 '전자출판 운용 기능사' 이 두가지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음. 그게 작년 12월의 일임. 하지만 멀티미디어과의 특성상 장기적으로 일할 인재가 필요했고 난 아직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20살이었기에 받아주지 않고 번번히 좌절하다가 결국 들어간곳은 온수분배기 공장의 생산직이였음. 나는 그저 '그래 개같아도 사회경험 이려니~ 하고 참아보자'라는 마인드로 일을 시작함. 그렇게 6개월을 일했는데. 회사에 있는 형들이나 삼촌들은 다 괜찮은데. 유독 아줌마년들이 개 지랄발광을 하는거임.
나이먹고 어린놈 만만하게 보여서 이것저것 시키고 욕하고 뒤집어 씌우고 하는게 화가 났지만 형들과 삼촌들 때문에 꿋꿋하게 다녔음.
그런데 그 와중에 그 회사에 있는 중동계 노동자 형이 받는 월급이 "210만원"임... 물론 그만큼 일도 힘들다는것은 나도 알고있음.
하지만 나와 똑같은 일을 하는 아줌마들과 삼촌,형들이 나보다 3~40만원은 더받아챙겨간다는 것에 나는 심히 배신감을 느꼈음.
나는 당시 최저임금 5210원을 시급으로 받고 일을하고 있었는데. 아줌마들과 삼촌 형들은 다 나한테 잔심부름과 귀찮은 일까지 시키곤 했음. 그래놓고 아줌마들은 나에게 왜 생산량이 그따구냐면서 쌍욕을 퍼부어주셨지...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바로 회사를 나와서 친구가 있는 대구에 가게됨.
그런데 대구에 도착한 다음 날... 친구의 어머니께서
"00아 삼촌 돌아가셨대..."
나는 엄청나게 당황하기 시작함. 나는 단기 알바로라도 버스비정도는 구해서 갈 생각이였는데 바로 다음 날에 다시 돌아가야만하는 황당한 일이 생김;;
친구에게 평소 잘해주신 삼촌이 내가 온 다음 날 돌아가셨다. 친구는 펑펑울고 나는 머릿속이 점차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이성을 추슬린 친구는 나에게 "...게이야 나 1주일정도 거기 있다 올테니 너혼자 여기서 일구해보고 있어"라고 말을 함.. 친구가 지금 매우 우울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서 붙잡을 상황이 아니라는것을 안 나는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함 그 뒤부터 정말 지옥이 시작됨. 맨밥에 간장말아서 1주일을 먹었더니 진짜 토하는 줄.... 그렇게 1주일동안 열심히 알아본 결과 [친구가 없어서 지형을 모르는 나는 단기알바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몰라 가지를 못했음]
어머님께서 차비하라며 주신 만원으로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발품을 팔아 pc방 알바를 구하게 됨. 그리고 다다음 날 부터 일을 하겠다고 하자 사장님이 그럼 그 때 부터 나오라고 함. 그리고 다다음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길을 걸어 알바하게 될 pc방에 설렘반 기대반으로 들어옴. 그런데 사장이
"나는 그런 알바생 면접 본 적 없는데?" 라고 개드립 시전
나는 결국 깽판을 피울 힘도 없이 쳐져서 친구집으로 돌아와 친구집 복도에서 펑펑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결국 나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또 다른 친구와 같이 용역을 시작하였다...
1달 동안 용역을 하며 여러가지를 해보았는데. 처음에는 포장 그 다음에는 소화기 공장 그 다음은 어묵공장 등등 여러가지 공장에 갔다 왔다.
그중 최악을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오뚜기를 꼽울 것이다. 그 당시 오뚜기에서 여러가지 라인이 있었는데. 참기름,후추,겨자,와사비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배정받은 곳은 사람들이 제일 꺼린다는 후추... 그 날 난 점심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내야했다. 코는 아프고 속은 메슥껍고 그 날 집에 돌와와서 결국 아무것도 못 먹고 다음날 하루를 쉬었다. 만약 후추공장에 가서 일을하게 되면 조심하라. 마스크따윈 도움이 돼지 않는다...
그렇게 한달을 보내고 또 다른 친구가 흥미로운 제안을 해왔다.
약 하나만 먹고 피 몇번 뽑으면 40만원임!! 해볼래?
내가 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멀디 먼 경기도 부천까지 가서 마루타 알바를 끝내고 지금은 이렇게 pc방 알바를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할머니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저금부터 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한달에 70만원짜리 적금을 들어놓고 이제 곧 그 적금이 깨진다..
1년동안 정말 정신없었지만.. 돌이켜보면... 후아 개새끼들...
그리고 이제 내앞에 남은것은 신체검사 1급과 군대영장뿐이겠지...
20살 때 너희도 내꼴 안나려면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