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남징어입니다. 후,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한창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절엔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먼저 대쉬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때는 남자애들끼리 축구하고, 피시방에서 리니지하는 게 뭐 그리도 재밌던지...
그렇게 살다가, 첫사랑을 만났네요.
월드컵을 두 번이나 같이 보고 결국 헤어졌어요.
그 사람은 늦깎이 미대입시, 나는 뒤늦게 정신차려서 수능공부하는 고3...그 벽을 넘기가 힘들더라구요.
대학교 합격소식을 알린지 4일 뒤에 문자가 오더라구요. 이제는 너를 놔줄 때가 된 것 같다고...
괜한 자존심에, 그리고 저도 그만큼 지쳐있었기에 한 번 잡지도 못하고 그렇게 보내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근데 그 여파라는게 천천히, 그리고 너무나 크게 다가오더라구요. 삶의 일부가 떠난다는게, 늘 함께하는 나날들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리라고 정말 바보처럼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그 다음은 정말 흔하디 흔한 클리셰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람을 만났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쁘지 않은 학벌에 나쁘지 않은 외모, 나쁘지 않은 스타일, 그리고 썩 괜찮은 말빨.
헌팅에, 합석에, 미팅에 소개팅에, 단지 '저 여자가 나한테 번호를 줄까?' 가 궁금해서 다가가서 번호만 따고 연락안하고 바로 삭제하기를 수십차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게 참 쉽더라구요. 그게 제 자신의 가치 증명이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었지요.
그렇게 2년을 별 영양가 없는 관계들 속에서 살았더니 자기혐오가 오더라구요. 허무하게 열정을 소모하는 느낌이 너무 커서 군입대를 결심했어요.
그리고 전역한 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람 대 사람으로 진실하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너무 어렵네요.
가벼운 관계 뒤에 오는 허무함을 너무 잘 알아서 그저 신중해지고 싶을 뿐인데, 최근에 만나게 된 여자들은 그런 저를 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ㅋㅋㅋ
친구들도 '여자 그렇게 만나봤으면서 뭐 그렇게 얌전한척 하냐? 술먹고 제껴 너 그런거 잘 하잖아.'라는 말을 위안삼아 저에게 건넬 뿐...
그냥 아직까지는 인연인 이를 못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좀 우울해지네요...하...오죽 우울하면 대낮에 이런 글을...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