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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이슬에 대하여
희망과 절망 두 개의 극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나침반 바늘
남과 북 두 개의 극으로 균형을 잡고
무한 공간에서 원심력처럼 돌고 있는 지구같이
진흙의 깨끗함과 흰 눈의 더러움 사이에서
풀잎처럼 흔들리고 있는 섬세한 감성
중천에 직립한 풀잎 끝에
맺히는 한 방울 수분처럼
물은 얕은 높이에서도 밑으로 떨어진다
꼿꼿하게 서 있는 풀잎은 알고 있다
아득한 별빛 높이를 위하여
어둠의 지층이 누워 있는 것을
태양 둘레를 도는 지구에 버금가는
여리고도 정갈한 이슬의 무게를
잠들지 못하는 풀잎은
투명한 외로움처럼 떨면서 견디고 있다
안수환, 문
내 마음속에는
닫힌 문짝을 열고자 하는 손과
열린 문짝을 닫고자 하는 손이
함께 살았다
닫히면서 열리고
열리면서 닫히는 문살을
힘껏 잡고 있으려니
눈물겨워라
눈물겨워라
류시화,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황인숙, 비
아, 저, 하얀, 무수한 맨종아리들
찰박거리는 맨발들
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쉬지 않고 찰박 걷는
티눈 하나 없는
작은 발들
맨발로 끼어들고 싶어지는
김경주, 바다횟집
그 집은 바다를 분양받아 사람들을 기다린다
싱싱한 물살만을 골라 뼈를 발라 놓고
일 년 내 등 푸른 수평선을
별미로 내놓는다
손님이 없는 날엔 주인이
바다의 서랍을 열고
갈매기를 빼 날리며 마루에 앉아
발톱을 깎기도 하는 여기엔
국물이 시원한 노을이
매일 물 위로 건져 올려지고
젓가락으로 집어먹기 좋은 푸른 알들이
생선을 열면 꼭 차 있기도 한다
밤새 별빛이 아가미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그물보다 촘촘한 밤이 되어도 주인은
바다의 플러그를 뽑지 않고
방안으로 불러들여 세월과 다투지 않고
나란히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깐 마늘처럼 들러 앉아
사발 가득 맑은 물빛들을 주고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