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내 살아있음이 미안했던 걸까
게시물ID : lovestory_919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1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05/31 20:40:4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소연, 강릉, 7번 국도




다음 생애에 여기 다시 오면

걸어 들어가요 우리

이 길을 버리고 바다로

넓은 앞치마를 펼치며

누추한 별을 헹구는

나는 파도가 되어

바다 속에 잠긴 오래된

노래가 당신은 되어

 

 

 

 

 

 

2.jpg

 

문정희, 기억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나는 젊지 않았어

때때로 날은 흐리고

저녁이면 쓸쓸한 어둠뿐이었지

짐 실은 소처럼 숨을 헐떡였어

그 무게의 이름이 삶이라는 것을 알 뿐

아침을 음악으로 열어보아도

사냥꾼처럼 쫓고 쫓기다 하루가 가고

그 끝 어디에도 멧돼지는 없었어

생각하니 나를 낳은 건 어머니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어머니가 생명과 함께

알 수 없는 검은 씨앗을 주실 줄은 몰랐어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늘 펄펄 끓는 슬픔이 있었어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어

그 푸르고 싱싱한 순간을

함부로 돌멩이처럼

 

 

 

 

 

 

3.jpg

 

안도현, 가마우지




해안선을 잘 엮어서 어머님께 보여드리자


밤새 젖은 모래톱 한 두름 꾸덕꾸덕하게 말려 굽고

시끄러운 파도 소리 살짝 볶아 쟁반에 담아서

어머님의 서러운 아침 밥상에 올리자


해안선을 올리자 어머님을 위하여

허공을 깎아 만든 절벽의 집으로도 가지 못하고

바다의 밑바닥으로도 이제 갈 수 없는

검은 해안선에 몸이 감긴 어머님


최대한 목을 길게 빼고

가마우지, 가마우지 공중에서 울자

 

 

 

 

 

 

4.jpg

 

이용악, 슬픈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면 알아 못 볼

사람들끼리

비웃이 타는 데서

타래곱과 도루모기와

피 터진 닭의 볏 찌르르 타는

아스라한 연기 속에서

목이랑 껴안고

웃음으로 웃음으로 헤어져야

마음 편쿠나

슬픈 사람들끼리

 

 

 

 

 

 

5.jpg

 

이규리, 보라빛이라는 것




왜 미안하다고 말했을까

네가 맥문동과 나란하다

달빛 아래서 맥문동을 보면 결핵 빛깔이다

세계를 투정하고 세상을 밀어내던 내가

꽃보다 오래 산다는 건 미안하다

맥문동은 흔들리면서 생을 완성한다

너는 외대에 닿는 흰 바람조차 붙들고 싶었던가

일획 단정 한 잎들이 단명과 유사하다면

맥문동은 네 기침이 피우는 꽃

비 오는 날은 더욱 자지러진다

생이 기우뚱 풍경들을 놓칠 때 왜 보랏빛일까

너무 큰 신발을 신고 숨차 오르던 여름 내내 돌아보면

굽이마다 맥문동 보였다

보랏빛 네 단명 앞에 탕진하듯

내 살아있음이 미안했던 걸까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