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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평상이 있는 국숫집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갔다
붐비는 국숫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 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 일을 손 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천상병, 등불
저 조그마한 불길 속에
누가 타오른다
아프다고 한다. 뜨겁다고 한다. 탄다고 한다
허리가 다리가 뼈가 가죽이 재가 된다
저 사람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아 나의 얼굴
코도 입도 속의 살도
폐가, 돌 모두가
재가 되어진다
김준태, 꽃을 좋아하는 사람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랑으로 감옥에 갇히고
불을 추종하는 사람은
그 힘으로 머리에 왕관을 쓰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향기로 세상에 피어나고
불을 맹신하는 사람은
그 불길 무너질 때
자신마저 잿더미가 돼 버린다
최문자, 슬픔에 오르다
사랑만한
슬픈 산이 있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슬픔이 높아가는 산이 있었다
비린내 품은 본능의 숲을 지나
굵은 눈물방울로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
찌를 때마다 더욱 엉겨붙는 가시덤불을 헤치면
천근으로 내려앉는 절망의 바위
숨막힐 듯한 무심한 정상의 얼굴은
무방향으로 돌아앉은 절망의 높이였다
슬픔에 놀라지 않으려고
융기된 슬픔의 산자락을
딛고 또 딛으며
헛발질친 사랑을 등뒤에 두고
나는 오른다
줄어들지 않는 슬픔에 오른다
윤석산, 입적(入寂)
이만 내려 놓겠네
해인사 경내 어느 숲 속
큰 소나무 하나
이승으로 뻗은 가지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
지상으로 지천인 단풍
문득
누더기 한 벌뿐인 세상을 벗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