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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새는 자기 길을 안다​
게시물ID : lovestory_919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02 21:49:4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종해, 새는 자기 길을 안다




하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먼저 안다

하늘에 길을 내며 날던 새는

길을 또한 지운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2.jpg

 

신경림, 다리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 일이 서글퍼진다

 

 

 

 

 

 

3.jpg

 

이근배, 문




내가 문을 잠그는 버릇은

문을 잠그며

빗장이 헐겁다고 생각하는 버릇은

한밤중 누가 문을 두드리고

문짝이 떨어져서

쏟아져 들어온 전지(電池) 불빛에

눈을 못 뜨던 버릇은

머리맡에 펼쳐진 공책에

검은 발자국이 찍히고

낯선 사람들이 돌아간 뒤

겨울 문풍지처럼 떨며

새우잠을 자던 버릇은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이 깨던 버릇은

내가 자라서도

죽을 때까지도 영영 버릴 수 없는

문을 못 믿는 이 버릇은

 

 

 

 

 

 

4.jpg

 

정일근, 마음이 머무는 곳에




마음이 머무는 곳에 영혼 머문다

마음이 머문 곳에 영혼 눈뜨며 살아 있다


저무는 가을 바다 만나는

보랏빛 해국(海菊) 피어 있는 언덕길이나

바다로 길을 내는 등대의 불빛 아래

우리보다 먼저 바다를 지극히 사랑한 사람들의 영혼

환한 빛으로 떠돌고 있지 않았던가


가고 싶어 밑줄 그어놓았던 낡은 해도(海圖) 위로

그대 손때 묻은 젊은 날 섬처럼 빛나듯이

오래 마음 준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 섬마다

그대 영혼 담은 푸른 파도가 숨 쉬고 있듯이


사람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영혼이 머물도록 마음 주는 것이다

그 사람 떠나간 뒤에도

영혼의 온기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우편으로 받은 섬을 받은 저녁

바다에 모두 마음 준 그대 영혼 읽는다


서쪽 바다 먼 섬에 두고 온 쓸쓸한 영혼

행간마다 책갈피마다 반짝반짝 눈뜨고 있다

 

 

 

 

 

 

5.jpg

 

송찬호, 별은 멀리서 빛나고




짐승이 그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의 상처를 핥고 있다

가뭄이 오래 든 자리는

가뭄의 흉터 같은

깊은 샘물을 남기듯

그 상처를 보면 그 동안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상처 속에서 피어난 꽃듯

그 몸으로, 짐승처럼 그 몸으로

한아름 꽃을 안고 그대로

쓰러져 꽃밭이 되었구나


꽃이 꽃씨를 떨구듯

아픈 상처의 딱지가 떨어지듯

어둡던 몸 속으로 떨어지는

별 하나

잠시 아픔도 잊고 환해지는 몸


지금 그별은 멀리서 빛나고 있지만

누구나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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