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백혈병
8년 전의 일이다.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늘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개인용 식판을 따로 썼다. 큰 병을 앓는 아이를 둔 집안들이 그러하듯 몹시 가난했다. 감기만 걸려도 아이는 응급실로 실려 갔고, 무균실에 며칠씩 갇혔다가 회복되면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는 정이 그리웠으므로 마스크 뒤에서 언제나 웃으려 했고 늘 아이들에게 뭔가를 주려 했지만, 자주 외면당했다. 이 아이를 우리 반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하려는 어설픈 노력으로 알게 된 것은 열네 살 소녀의 생에 깃든 깊은 슬픔이었다. 이를테면, 아이가 품고 다니는 연필 스케치 그림 속 소녀들은 무균실에서 함께 지내다 죽은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백혈병이란 드라마에 나오듯, 머리에 뒤집어쓴 털모자 하나로 표현되는 외상 없는 질병이 아니라, 집안 살림을 결딴내는 어마어마한 치료비와 항암 치료, 구토, 탈모, 응급실과 무균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의 지옥 같은 초조함 따위의 캄캄한 기억의 덩어리들이다.
황유미, 이숙영, 황민웅, 이 세 사람의 이름을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들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였고, 모두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죽었다. 10만명에 3.7명꼴로 발생한다는 이 희귀한 병이 한 기계를 놓고 짝꿍으로 일했던 20대 초반의 두 여성과 그 라인의 유지 보수를 담당한 엔지니어에게 발병했고, 이후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에 접수된 발병 사례만도 22건이다.
재발한 병으로 몸도 못 가누면서도 억대에 가까운 치료비로 노심초사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던 황유미씨는 결국 스물셋에 죽었다. 투병중이던 황민웅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코 둘째의 출생신고를 했고, 얼마 뒤 죽었다. 지난 5월19일, 이들 세 사람을 포함한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와 유가족들이 집단으로 제출한 산업재해 신청은 전원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그들이 작업중에 들이마시는 수십 종의 화학물질의 존재도, 내과학(內科學)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백혈병과 화학물질의 명백한 상관관계도, 직접적 증거 없이 간접적으로라도 ‘상당인과관계’가 성립되면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소용없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우연이었다. 억대의 치료비도, 죽음 앞에 선 자의 산더미 같은 고통도 슬픔도 결국 각자의 책임이었다. 산재 신청을 하겠다는 황유미씨의 아버지에게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님, 삼성을 이기려고 하십니까? 이길 수 있으면 이겨보세요”라고.
그리고 열흘 뒤인 5월29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지던 바로 그 시간, 연매출 200조원대의 거대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고작 16억원의 세금밖에 내지 않은 기상천외한 사술은 대법원에 의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모든 것이 절묘했다. 6 대 5의 아슬아슬한 판결, 태산 같은 사퇴 압력을 버텨내시고 끝내 그 한자리를 지켜 주신 신영철 대법관님, 그 판결이 끝나고 나니 슬슬 신 대법관에게 물러나라는 뜻을 내비치시는 이 사건 1심 재판 삼성 쪽 변호인 출신의 이용훈 대법원장님.
나는 이 글을 야간자율학습이 한창인 우리 반 교실에서 쓰고 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땅으로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 최소한의 정의마저 쓰레기통에 처박힌 나라에서, 아이들은 이 가파른 삶의 한쪽 벼랑에라도 뿌리내리고자 환한 불빛 아래 공부라는 것을 한다.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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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1431.html (원문)
작년에 발표된 글입니다만, 때가 적절하여 퍼옵니다.
오는 3월 6일이 글에 나오는 故 황유미 님의 3주기입니다.
글을 읽다 “아버님, 삼성을 이기려고 하십니까? 이길 수 있으면 이겨보세요”에서 속이 터지고,
3년 동안 아무 것도 변한 것 없는 삼성과 이 나라에 또 한 번 속이 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