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렇지요. 인간은 폭력적입니다.
존재 그 자체가 폭력이지요.
먹는 것을 아무리 가려도, 동물을 배제해도,
식물을 까지 끊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발견하는 순간에
주저함이 생기게 되고,
조금 심한 경우에는 죄책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요?
불교에서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소리가 나는 4가지 물건입니다.
범고-범종-목어-운판 순으로 치고
각각의 물건들......
먼저,
범고는 사람을 위한 소리를 냅니다.
보다 정확히는 그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실용적으로, 아침에 사람을 깨우기도 하지요.
범종은 땅위의 짐승을 위한 물건 입니다.
이제 일어나서 죽지말고, 여기저기 도망다니란 뜻이지요.
목어는 물속의 중생을 위함 입니다.
중생이라니 왠지 거창한데, 단순히 물고기를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여기저기 도망다니란 뜻이지요.
운판은 날짐승을 위합니다.
뜻은 같지요. 이제 일어나서 여기저기 도망다니란 뜻이지요.
조금 이상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날짐승은 물고기를 먹기도 하고, 짐승이 날짐승을 먹기도 하며,
그 짐승을 인간이 먹기도 합니다.
그 각각의 개체에게 죽지말라고 뜻을 전하는 것이
어찌보면 모순될지도 모르겠지만,
달리보면, 너 태어난 대로 그에 맞게 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간과 다른 동물님들이 다른 것은
정체성에 대한 자각의 차이가 있을 것 같네요.
동물들은 최소한
나는 누구인가?
와 같은 정체정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미개한(?) 우리들, 사람만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서
힘들어 하지요.
그리보면,
인간이 폭력적이라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필요 이상의 욕심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폭력을 만드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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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댓글을 달아보려다가 그냥 이곳에 씁니다.
확실히, 오해없는 소통이란 어렵네요.
a. 폭력에 대하여
=> 동물에게서도 폭력이 발견된다.
그런데 그것이 사회 문제나 인류에 커다란 장애가 될까요?
지구에서 인간이란 종을 빼고 생각해보면,
남은 생명체들이 그들의 폭력성 때문에 큰 일이 벌어질까요?
외적인 폭력에 집착하시는 듯 합니다.
=> 인식하고 못하고는 중요합니다.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가
먹는 것으로는 다른 생명체이고,
사회 안에서는
타인에 대한 물리적, 정신적 압제와 선택의 부자유입니다.
인식하지 못한다면, 성찰할 수 없을 것이고
성찰 할 수 없다면, 폭력이 계속되겠지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란 그 사회 구성원이
지닌 인식수준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인식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합니다.
b. 원죄설?
인간 중에 태어나고자 해서 태어난 사람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 온 사람이 없다는 말이죠.
우연히도, 어쩌다 보니 태어난 것이, 나와 너 모두겠지요.
그러한 가운데 무슨 원죄설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욕구가 있다해서 죄가 되는 것인가요?
오히려 욕구를 적절히 조절하는,
인간적 성숙이 필요한 것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