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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옛날 마비노기 이야기
게시물ID : mabinogi_920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챀한칰힌
추천 : 5
조회수 : 60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11/21 12:21:57
친구의 권유로 처음 접하게 된 마비노기는 꽤나 익숙해지기 힘든 게임이었다.

시기가 어느 때 쯤이었을까. 대충 10년은 더 된 이야기이긴 한데. 유료 정액 서비스까지 했던 기억도 있으니 아마 막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몰랐던 티르코네일에는 환생존이라는 것도 없었고, 대부분의 유저는 나과장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은 시기였다.

요즘에는 사장되어 버린 배틀 아레나에는 나과장을 피해 숨어든 밀레시안이 북적거렸고, 던전 보상방은 나과장을 만나기 싫어하는 밀레시안들이 모닥불을 켜고 담소를 나누는 채팅방으로 변하곤 했다. (당시 무료 플레이 유저들은 일일 2시간의 플레이 밖에 할 수 없었지만, 아레나와 던전에 있을 경우는 강제로 종료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둘째 치고서 처음 도착한 티르코네일에서 인벤을 열어 봤을 때의 아득함은 아직도 잘 기억이 난다. 빵 하나. 요상한 책 하나.  아무것도 모르고 빵을 먹었고, 책을 장비했다. 퀘스트를 가져다 준다는 흰 부엉이는 튜토리얼 퀘스트를 가져다 주기는 커녕 깃털하나 보이지 않았고, 나는 막막히 티르코네일 광장에 서 있곤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친구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조언은 단순했다. 처음에는 축포 알바를 해서 돈을 벌어라. 하지만 시간개념이 철저한 엔델리온은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아르바이트를 줄 생각이 없었고, 나는 그렇다면 일단은 사냥이겠거니 하면서 지도를 살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쪽의 출구가 가까웠기에 나는 마을 밖을 나섰고, 여지껏 해보았던 온라인 게임들을 경험 삼아 (마을 밖의 초급 몬스터여야 할!)늑대에게 도전했다.

무모한 짓이었다. 주먹으로 몇대 때리지도 못했는데 나는 늑대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누워 있었고. 나는 멍하니 크리티컬 히트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메세지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운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어찌되었든 늑대는 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는 얌전히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 시간은 정오였다. 시계조차 없었고, 그림자로 시간을 판별해야하는 아주 효과적인 시스템은 나를 꽤나 곤란하게 했지만,  자동 카메라 조정은 그 때 쓰라고 있는지 정남쪽으로 카메라의 시점을 잘 잡아주었다.

그리고 재수 없게 나에게 주어진 아르바이트는 밀을 수확해 오는 아르바이트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그 아르바이트를 받았고, 다른 밀레시안들의 뒤를 쫓아 밀 밭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밀을 수확하는 밀레시안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내 소지금은 0골드였고, 나는 들고 있는 거라고는 요상한 책 한권 뿐이었다.

낫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상식은 현실에서만 통하는 줄 알았던 나는 첫 아르바이트를 무참히 실패했고, 아웃사이더 체질인 나는 꽤나 노력한 끝에 다른 밀레시안들에게서 기본적인 정보를 조금 얻었다. 더불어 친구에게 욕설을 내뱉기로 마음 먹었다.

첫 아르바이트를 성공하는데는 거의 두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늑대와 삽질을 했고, 하루는 맨손으로 밀을 뽑으려고 한 결과였다.

두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소비해 인벤에 고작 축포 4개를 손에 쥔 나는 절망감에 게임을 종료했다. 내일 친구를 만나서 몇대 갈구고 유용한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다음 날 친구에게 약간의 가이드를 받고 나서야 나는 다시 마비노기에 접속했다. 이번에는 무난했다. 축포 4개를 판 돈으로 낫을 구했고, 다른 아르바이트도 시간에 맞춰서 한두개는 더 뛸 정도로 조금 익숙해졌다. 아르바이트는 꽤나 지루했다. 친구의 조언대로 축포를 꽤 모은 후 나는 그걸 판 돈으로 장비를 살 마음을 먹었다.

친구의 추천 아이템은 '해머'와 '라운드 실드'였다. 어째서인지(그 당시 아이템의 판매가 좀 달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두개의 장비품을 던바튼에 가서 사왔다. 던바튼의 배경음악은 고행에 가까웠던 내 여행의 끝을 축하하는 것처럼 경쾌하게 울렸고, 그 당시에는 배경음 자체도 꽤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간신히 장비를 사와서 나는 전투에 익숙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장비를 맞췄지만 전투는 여전히 어려웠다. 지금도 '다운 게이지'는 쓰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참고할만한 지표도 없었고, 내 친구는 나에게 '해머는 3타가 기본'이라는 말을 전하고서 타이밍이 중요하단 말 만을 남겼다. 경험치를 마이너스까지 잔뜩 깍고 나서야 나는 3타 공격 타이밍을 익혔다.

하지만 갈수록 태산이라고 스킬창을 열어본 나는 꽤나 절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티르코네일의 npc 들에게 모든 키워드로 대화를 해봤던 나는 '윈드밀'이라는 스킬을 가르쳐주는 npc가 던바튼에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지금에 와서는 기본 전투 교습으로 가르쳐 준다지만, 당시에는 아란웬에게 가지 않으면 스킬을 얻을 수 없었다. 던바튼은 너무 멀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방도가 없었다. 다시 한번 내가 하는 게임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는 던바튼에 다녀왔다.

기본적인 전투와 늑대의 ai에 익숙해질 무렵, 친구는 나에게 학교를 가라고 했다. 무슨 소리냐 했더니 마법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스킬북으로 배우는건 비싸니까 조금이라도 골드를 아껴야 한다는 얘기였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며칠씩이나 학교에 다녀 나는 아이스볼트라는 스킬을 익혔다. 그제야 친구는 나를 찾아왔다. 요 며칠 바빳다고 하긴 했지만, 몇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좋을 사족이지만, 그 당시 친구는 넷카마질에 열중이었고, 나는 마비노기에서 내 친구를 여자로 대해야만 했다. 거지같은 기분이었다.

친구는 나와 함께 타이틀을 따러 가자고 했다. 지금에 와서는 사장된 타이틀이지만, 그 당시에는 최고의 효과를 자랑하는 타이틀인 '열살에 곰을 잡은'을 따러 가자는 말이었다. 꼭 열살로 캐릭터를 만들라던 말은 아마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나중에서는 나이를 먹을 때 부여받는 ap까지 고려한 일이란 걸 알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친구와 나는 또 다시 열심히 두 발을 놀려 벌목캠프로 향했다. 피가 가장 적다는 갈색곰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파티플이라는 것 자체에 개념이 없었고, 여지껏 늑대만 상대해 봤던 나에게 곰은 난적이었다. 디펜스로 막았음에도 곰의 공격은 매우 막대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20분에 걸쳐서 2마리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친구와 호흡을 맞춰서 곰을 잡을 수 있었다. 사냥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조건 탓이었다.

틈틈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어느정도 기본 자금도 갖춰 졌기에 나는 알비 던전을 거쳐 키아 던전으로 향했다. 당시 키아 던전은 모든 밀레시안의 주된 사냥터였고, 폭스 자이언트가 인첸된 전투 장비는 종결 장비로 평가 받던 시절이었다. 사실 그 당시 법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 거 같다. 내가 보지 못한 것 뿐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마법 장비의 수리비와 마나 포션의 값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골드가 흔하지 않은 탓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상상하기 힘들 수 있지만, 당시에는 30포션 10개짜리가 300골드였고, 휴즈 럭키 피니시는 정말로 운이 좋다. 라고 평가 받는 일이었다. 이제와서는 몬스터가 드롭하는 골드는 인형 가방을 쓰지 않는 이상 버리고 다니는 수준이지만, 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키아 던전에서 나는 파티 사냥에 익숙해졌다. 골렘을 스매시로 다굴하는 타이밍도 익숙해졌고, 타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경직 타임을 만드는 서포트 기술까지 익혔다.

개인적으로 익숙해지는 것과 별개로 커뮤니티적인 면으로는 친구가 속해 있던 길드에 들었고, 친구의 넷카마질에 입을 맞추는건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사람이 한 명이 있었다. 그 당시 마흔언저리의 연세였으니 이제는 쉰에 가까이 되셨을 분이었다. 기억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채팅이 느렸다.

안녕하세요. 한마디를 건네면 답이 돌아오는데 10초 가량의 시간이 걸렸고, 말이 조금이라고 길어지면 30초 정도의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답을 들을 수 있는 분이었다. 연세도 지긋했기에 나는 그 분을 OO아빠라고 부르곤 했다. 본인이 싫어했는지 좋아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부터 나는 마비노기에 한참 재미를 붙였다. 스매시로 한 방에 몬스터를 잡는 건 꽤나 멋있어 보였고, 나는 그걸 위해 꽤 열심히 사냥을 하곤 했었다.  학원이 끝나면 집에가서 곧장 마비노기를 켰고, 두시간의 시간 제한이 끝나기 직전에 던전에 들어가는 근면함도 보였다. 하지만 성당은 꽤나 더뎠다.

 당시에는 평범한 축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10주(10살 캐릭이 20살 될때까지)의 시간도 더 넘게 걸려서 나는 간신히 35정도의 레벨을 찍었고, 사실 그 때는 그 정도가 환생의 적절한 레벨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마스 상급 통행증이 나오는 날에 전 길드원이 빽빽하게 모여서 아이스엘레멘탈을 서도 나눠서 장비에 떡칠하고 사냥을 하는게 특별한 길드 사냥이었던 수준이니, 레벨업이 힘든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스킬 랭크마저 1랭크가 끝이 아니었다. 9랭크였나. 오래된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당시에 얻을 수 있던 ap에 대해 고민해보면 확실히 대단한 수준이었다.

어찌되었든 마비에 항상 재미를 들린 나는 중학생이었던 당시의 몇푼 안되는 용돈을 아껴서 간신히 한달의 정액비용을 모을 수 있었다. 당시의 정액 서비스는 세 종류 였다. 얼마전까지와 크게 차이가 없는 '어드벤스' '인벤토리 플러스' '나오' 시리즈였다. 명칭은 확실하지 않지만, 각각 어드템을 주는 서비스, 은행의 나머지 반쪽 슬롯과 가방을 이용하는 서비스, 그리고 나오의 부활 서비스가 특징이었다. 당시에 나오는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서비스였고, 나는 나오의 서포트를 선택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엄청 야박하지만, 당시의 나오 부활 서비스는 현실시간으로 1일에 3번의 부활이 주어지는 서비스였다. 

그리고 G1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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