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슴체인 이유는 맨 아래에.
영화를 좋아해서 보고싶은 영화는 일요일 아침 일찍 조조로(싸게) 보기도 했던 나이지만
근 몇 년간 엄청나게 오른 영화값 때문에(심지어 통신사 할인도 없어졌다)
일년에 영화 다섯편 보면 많이 본 정도가 되어버렸음.
그러한 나에게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그것도 한번은 그냥 보고,
두 번째는 아이맥스로 본다는건 엄청난 사치인 것이 분명함.
하지만 많은 관람객들이 ‘인터스텔라는 역시 아이맥스로 봐야’
‘왕십리 아이맥스...마지막 상영일까지 매진’ 이런 후기와 평들이 쏟아지고,
귀 얇기로는 달인의 수제비 저리 가라하는 내가,
스스로 외계인이었으면 좋겠다고 까지 상상했을(이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음...이해바람)
정도로 우주를 좋아하는 마당에, 이 영화를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보지 않을 이유는
‘매진’ 그 하나뿐이었음.
그런데 갑자기 비어버린 토요일 저녁 시간을 때우려고
CGV 앱으로 뭐 건질거 하나 없나 하고 어슬렁거리던 차에
4시, 8시 같은 황금시간대의 좌석들이 하나둘씩 비는 것이 보이기 시작함.
심지어 가운데쪽 자리!!
오호 통쾌라, 이것은 필시 영화 보자고 약속했다가 취소된(혹은 깨진) 자들의 은혜로구나! 하며
기쁜 마음으로 예매 하려고 했으나 이미 나같은 하이에나 한 마리가 표를 잡고 놔주질 않음.
그렇게 영화표 3~4장을 보내고 드디어 2연석 중에 한 좌석을 잡아 간신히 예매하는데 성공함.
영화시간에 맞춰 상영관에 들어가 앉으니 2연석중
내가 버려뒀던 한 자리에 아리따운 여성분이 앉아계신 것을 봄.
버터구이 오징어를 뜯어먹는 저 수줍은 손가락으로 나랑 같이 미친 듯이 클릭질,
혹은 터치를 해댔을 생각을 하니 살짝 웃기기도 했지만, 끝내 자리를 쟁취해낸
동지의 마음으로 그녀에게 눈을 찡긋.....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음.
영화는 이미 두 번 째 보는거라 혹시 졸리면 어쩌나 했는데, 그 엄청난 몰입감은 두 번 째 관람이라고
크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았음. 첫 관람때 체감 상영시간이 1시간 반이었으면,
이번엔 2시간 정도로 늘어난 정도?
정작 몰입을 방해한건 영화 시작하고 한참 지나 들어온 내 옆자리 커플과,
한참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영화 중간에 나갔다 들어오면서도 호모 에렉투스의 기립력을 자랑하던 여성분이었음.
두 번을 보니 안보이던 부분도 보이기는 했는데, 역시 아무리 봐도 불쌍한 아들 톰.
톰이 이름이 맞는지도 헷갈리는걸 보니 어지간히도 모두의 안중에 없었나봄. 불쌍한 톰.
희한하게도 처음 봤을땐 별로 안궁금했는데 이제와서 인듀어런스 호의 과학적 원리,
블랙홀과 웜홀의 상상의 근거같은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함. 유투브에서 찾아봐야하는데 영어고자라 좀 걱정됨.
오랜만에 크레딧 올라가는 모습을 앉아서 봤는데,
이 영화는 ost가 워낙 좋아서 시간 여유만 되면 영화관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입체서라운드 음향으로 제대로 즐기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듬.
크레딧이 특이하게도 등장 순서대로였는데, 제일 먼저 등장한 이름은 머피할머니였음.
만 박사는 배우를 꽁꽁 숨겼다더니만 배우 본명에서 끝 알파벳 두 개만 바꾼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11시가 넘었는데 민낯에 츄리닝 파카 차림으로 영화관으로 들어서는 사람들과 마주치니,
쉴새없이 돌아가는 아이맥스 관이 마치 타스풍차같다는 생각이 듬.
영화 하나 보려고 깜깜 새벽에 끝나는걸 감수하나 하며 혀를 차기 직전,
몇 년 전에 새벽 3시에 간신히 예매한 아바타를 보러 가자고 자던 동생을 깨워
난생 처음으로 제정신(?) 상태에서 할증빨고 미친 듯이 달리는 택시마를 봤던 기억이 났음.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인터스텔라 관람기의 끝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글이 음슴체인 이유와, 갑자기 토요일 시간이 비어버린 이유를 알려드림.
짐작 하신분도 있겠지만
금요일 저녁에 헤어짐.
그것도 메시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