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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저기 아득히 흘러가버린 과거가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921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7/15 22:05:0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규성, 슬픈 귀향




대개는 객지에서 밀려난 백수들이

할 수 없이 피곤한 발길을 되돌리는 것이

이를테면 허울 좋은 귀향이다

내 고향은 영광 백수

나는 아직도 몸은 백리 밖에 묶어두고

영광스럽게도 그 이름만 백수로 돌아왔다

이 눈치 저 눈치에 지치면

아내가 하는 일거리를 거든다고 설치다가

걸핏하면 퉁사리를 먹기 일쑤였다

아내는 개띠고 나는 소위 호랑이인데도

백수의 왕이 그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도 어엿한 직장인

이름 하여 간병인이다 어머니가

사십구일 째 중환자실에 투숙 중이셔서

나는 아내도 누이도 조카들도 내쫓다시피

호랑이처럼 어머니 곁을 지킨다

행여 이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서이다

하여, 어머니가 한사코 오래 사셔야

나도 그만큼 떳떳이 자리보전할 터인데

어머니는 그도 모른 채 코만 골고 계시고

내 고향은 눈물 캄캄한 백수이다

 

 

 

 

 

 

2.jpg

 

반칠환, 해일




폭풍만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울어서 넘치는 것이다

발목이 젖는 게 두려운 사람들아

제 눈물에 저를 담그고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라


지진만이 아니라

바다가 울어서 넘치는 것이다

세상의 눈물 콧물 다 훔쳐주던 억척어멈도

한 번쯤 제 슬픔에 겨워 넘치는 것이다


뭇 생명들이 처음 태어난 곳도 저 눈물 속이었다

 

 

 

 

 

 

3.jpg

 

김승희,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순간




그 뜨거운 홀연

순간

그 미끄러운 순간

날씨처럼 항상 변하고 있는

천연

어디에도 밑줄을 그을 수 없는

그 순간

아낌없는 순간

죽어도 좋은 순간

 

 

 

 

 

 

4.jpg

 

천상병, 나무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죽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죽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죽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5.jpg

 

장석주, 그믐밤




커피 물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 불을 켠다

새벽 세시다

가스레인지의 스위치를 비트는 하얀 손이

낮엔 복숭아나무 죽은 가지 두어 개를 툭툭 분질렀다

아주 가까운 둔덕에서 소쩍새가 운다

그믐밤인가 보다

내가 청혼했던 여자의 잠도 깊겠다

내겐 벌써

저기 아득히 흘러가버린 과거가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매우 숭고한

쓰라린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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