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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돌고 있다.
마치 톱니바퀴가 헛돌듯이 삐걱인다.
그녀를 찾고 있는 손은
단지 앨범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교사였던 나와 학생이었던 너의 사랑은.
마치 밝게 빛나는 어둠처럼 모순된 아름다움을 지녔었다.
그것이 진실임은 우리 둘이 가장 믿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 날.
아름다운 별이 반짝이던 가로수 아래에서 붙잡은
너의 그 손은 뜨거웠으니까.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늦은 시간 어딜 나가냐고 말했지만.
오늘은 무언가 나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찰칵. 문이 닫혔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뽀얗게 분칠한 듯.
뽀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또 떠올린다.
너의 그 모습을.
이젠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름다웠던 사랑은.
그 아름다웠던 시간은 단순하게도 깨져버렸다.
선 두개가 그어져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관계를 평행선으로 돌리기 위한 것인 듯.
그 두개의 평행선은 우리를 갈랐다.
그때 이후로 널 만나지 못했다.
난 교직을 나왔기에.
넌 그곳에 있지만.
난 더이상 없다.
그때부터 헛돌고 있다.
시간이, 꿈이.
살아가기 위했던 모든 것이 헛돌고 있다.
톱니바퀴를 잃은 시계가 멈춰버린 듯.
나도 멈춰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헛돌고 있다.
눈이 서서히 떨어진다.
아름답다.
손을 뻗어본다.
닿자 이내 녹아버린다.
알고 있다.
영원히 헛돌 수 없음을.
이 눈과 같이 녹아 사라져야만 하는 것임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눈을 감아도 너의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비록 너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너의 그 아름다운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어떻게 잊으란 말인가.
어떻게 헛돌 지 않을 수 있는가.
어머니가 내려오셨다.
어머니는 눈을 맞으며 서있는 내 모습이 걱정스러웠나보다.
아니 웃고 있으신 것을 보니 아이같다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웃음?
난 저 웃음을 알고 있다.
눈을 감아도 잊을 수 없는.
나를 헛돌게 하는 그 웃음을 알고 있다.
왜?
나는 이내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위화감이 들었다.
내 손을 보고
그것은 확연해졌다.
얼마나.
나는 얼마나 헛돌고 만 것인가?
얼마나 지나고 만 것인가.
나는 무슨.
어떻게.
그렇다면 우리들은 갈라진 것이 아니라..
주름잡힌 손가락만이
헛돌고 있는 시간들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그리고 '어머니'를 보고 깨닫고 만다.
아름다웠던 사랑이 아닌.
단지 나는.
단지 학생이였던 그녀를.
아아.
그녀는 나를 사랑했을 지 몰라도.
나는 결국 그렇다면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는 결국
그녀의 젊음과 배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