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J얼굴 나오면 채널돌리는 경상도
난 전라도 사람을 3년 전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식당의 아줌마, 다방에 아가씨, 공사장에 일당 노가다꾼들, 술집의 아가씨, 시장 통의 사람들. 한 푼이라도 벌어 보려고 마치 20년 전의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의 세계에 떨어져 미래사회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치는 듯한 그들의 삶에서 그들의 절절한 모습을 보고 동정을 했었다.
그냥 간단히 그들을 이해해주는 편이었다. 전라도에서 몰표가 나온다고 다들 비아냥대도 난 이해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마치 미련하기 짝이 없이 무던하게 불평 없이 일만 하는 옛날의 머슴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를 하려고 했다.
40년 가까운 경상도정권에 경상도의 포항, 부산, 울산, 구미, 창원 등 공장이 수두룩하게 생겨나도 전라도 사람들은 묵묵히 그들 나름대로 불평 없이 살아왔다. 뭐 전라도에 공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좀 뒤 늦게 생기긴 했어도 광양제철도 있고 영광에 원자력발전소도 있고, 섬진강변에 금호타이어도 있고, 여천에 화학공업단지도 있기는 하다. 정리되어 없어지긴 했어도 그래도 한때의 영광을 누린 해태, 쌍방울, 기아, 나산기업이란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가난한 시절 경상도에 공장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여촌 야도의 투표성향이 야당으로 표의 프로테지가 높아감으로서 약간의 불만의 심기를 드러내 결국은(5.18이야기를 빼고도) 절대적 투표성향이라는 치유되기 어려운 골수 병으로 도지게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40년 가가이 차별을 받아오면서도 그들은 탓 한번 안하고 그 긴 세월을 감수해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후죽순처럼 늘어만 가는 경상도의 공장들을 바라보며 내심 서운한 감정을 선거 때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참정권으로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김 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얼마 후의 일이다. 우리 엄마가 8남매라서 여섯 집이 경상도에 살고 있다가 왕래가 잦았기에 경상도 말만 들었지 전라도 사정을 몰랐던 나에게 언젠가 3년 전의 전라도 여행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다.
김 대중이 북한에 막 퍼주고 전라도에 막 퍼준다는 소리만 들었던 터라 막상 전라도에서의 황량함을 보고 난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고급외제승용차 한대 구경하기 힘들었고 광주의 하남공단은 공단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저 썰렁함 그 자체였다. 어떤 택시의 아저씨에 의하면 그래도 김 영삼은 전라도에 신경을 마음을 많이 써주었고 상무대도 이렇게 변했지만 김 대중정부는 아니라나. 해준 것이 없다나. 이목이 있어 가제가 게 편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을 이해한다나. 목포의 대불공단도 내 눈으로 확인함으로서 난 거기서 깨달았을 수 있었다.
김 대중이 그렇게 전라도에 막 퍼주었고 그렇게도 공장이 꽉꽉 들어찼다는 경상도 사람들의 기만적인 사상과 입으로 허상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행위를 느끼고 섬뜩 나도 모르게 히틀러와 유태인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세뇌당하며 학습했던 이데올로기의 교육시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죽었다는 어느 소년이 과연 정말 공산당이 뭔지나 알고 그랬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기만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우롱하고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는 배신감으로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이었다. 경상도에 대한 새로운 편견의 시작이었다. 수혜자로서 포용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철저하게 특수계층적인 우월의식은 지역감정차원의 주범이 아니라 망국적이고도 매국적인만 못하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로서 나치스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유태인이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나라가 없고 민족이 흩어져 타국살이를 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그들은 게르만족의 히틀러 나치스에게 사사건건에 연루되고 깽깽거리는 모습이 경상도인의 눈에 비친 전라도와 다를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전두환의 광주 사태의 진압을 보면서 유태인의 비극과도 같은 것을 예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청교육이란 미명하에 저지른 반인권적 행위가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전라도에서 노 무현에 대한 지지가 절대적이라고 해서 전라도 투표성향을 경상도의 투표율과 비교해서 꼬집기도 하고 물고 늘어지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독일의 나치당이 지금 존재한다면 독일의 나치당은 유태인들로부터 1%의 지지도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 1%를 개선하는데 백년이 더 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경상도가 정권의 수혜지역으로서 전라도를 이해해주고 포옹하려는 자세가 거의 없고 오히려 적반하장이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은 공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등 김 대중이 막 퍼준다는 등 광주의 슈퍼에는 롯데 껌은 구경도 할 수 없다는 등 실제로 티브이에서 김 대중이만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등 엽기적인 현상과 사상이 만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경상도에서 살면서도 자신은 형편이 좀 어려운데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열 받고 광분하기일쑤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 나라의 국가원수를 마치 버러지 보듯 대하는 이들은 이 나라의 국민임을 포기하고 파시스트 적 성향으로 흘러가는 이들을 어찌 나치스와 유태인으로 비교하는 것이 무리가 되겠는가.
전라도가 공장지어 달라고 데모한 적이 없다. 못산다고 데모한 적 없다. 차별 받는다고 데모한적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라도 사람들이 데모 한 번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엉뚱하게 들고 일어서기도 한다. 동학혁명이 전라도에서 시작되었고 일본남학생에 시달리는 조선여학생을 의협심으로 사건화 하여 발달된 광주학생운동이 전라도에서 시작되었다. 4.19의 김주열의 묘(경상도에도 있음)가 전라도에 있고 옳지 못한 쿠데타의 도당 전 두환에 당당하게 맞서 죽어간 5.18의 현장이 바로 광주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전라도 사람들은 분명 사사롭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너희 쌀의 고장하라고 하면 열심히 쌀농사 짓고 너희 예술의 고장하라고 하면 광주궁동거리의 표구집 몇 개, 필방집 몇 개 바라보며 그런지만 아는 아둔하기 그지없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옳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불의를 보고는 목숨마저 아끼지 않는 의협심이 있다는 것에 난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전라도에 공장 하나라도 늘어날까봐 노심초사하고 온갖 유언비어가 나무하고 이기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흑색도당들의 비방과 감언이설에 놀아나 김 대중이 얼굴만 쳐다봐도 구역질난다는 경상도는 정말 쩨쩨하며 전혀 이해할줄 모르고 포용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새가슴의 집단인 것이었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지만 칠거지악이란 말이 있다. 시기하는 것.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 부정하는 것, 수다 떠는 것, 못된 병, 애기 못 낳는 것, 훔치는 것 뭐 이런 것들인데 옛날 같으면 지금의 이혼사유에 해당되는 것 쯤 이다. 칠거지악에 해당되어도 이혼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불 출거라는 말이 그 말인데 여자의 집에 삼년상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여자가 시집와서 그 집안을 일으켰을 경우의 조강지처나 여자가 이혼당해서 돌아갈 집이 없는 경우에는 비록 칠거지악을 범하였던들 이혼이 안 되는 것이다.
지역성의 이야기는 경상도가 주도권이나 해결 권을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tv의 뉴스에서 전라도가 사고를 냈느니 무엇을 좀 훔치며 부정을 좀 했느니 해도 비록 전라도가 불만을 늘어놓으며 수다를 좀 떨어도 사회문제아가 좀 많이 나타나도 시장 통에서 싸우는 아줌마나 부자를 시기하는 사람이 좀 있다한들 고질적인 투표율을 갖고 있는 병이 좀 있다한들 친정을 잃어버려 돌려보낼 수도 없는 여자처럼 차별받아온 상처를 안아주는 자세로 침묵과 인내로 견뎌온 세월을 이해해주는 자세를 감안해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마음의 고향에 상처당한 그들에게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는 불출거의 마음가짐으로 의연함을 보였을 때 대한민국은 고질적인 망국병의 지역감정을 벗어나 노후를 보장 받는 아름다운 황혼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전라도는 무조건 노 무현이라서 이혼하라는 이회창의 부르짖음이 있다한들 이번엔 경상도에서 희생하고 감수하는 마음으로 큰 가슴과 넓은 마음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의 노후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이혼을 부추기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와 행동으로 지금까지 가정불화를 부추겨서 먹고 살아온 한나라 당에 진정한 경상도의 정의와 자존심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가 합장되어 묻힌 선산에 둘러 모여앉아 감사의 눈물을 보이며 찬사와 뜨거운 갈채를 받는 역사의 주인공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자세와 마음가짐 그리고 곧 우리가 행할 한 표의 정의로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났다. 경상도의 정의와 자존심은 빚을 보지 못했다. 그 대신에 젊은 세대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라도 95%몰표에 대해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경선에서 한 화갑이나 정동영이 당선되고 그 사람들이 대통령령 출마해 95%몰표였다면 국민적 질타를 벗어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선에서 한 화갑, 정 동영을 떨어트리고 노 무현을 당선시켜 그에게 절대적 지지표를 주었다. 그들은 피해자입장에서도 국민적 화합을 95%주장하는 것이다. 더 이상 몰표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소인배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것이다
호남 결집표에 대한 해석에 있어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시는 분, 그러나 95%의 몰표는 역시 받아들이는데 곤혹감을 떨칠 수 없다고 토로하시는 분들을 위해 씁니다.
이번 대선의 몰표를 우려하는 분들이 자신의 출신지역(영/호남과 무관하다는)을 내세우며 지역감정에 중립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지역감정을 가지지 않은 사람임을 알아달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출신배경 하나로써, 자기들의 주장이 지역감정을 담고 있지 않노라는 근거를 삼으려 합니다. 이런 주장은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참 위험한 논리입니다.
출신배경과는 무관하게 얼마든지 지역감정에 절어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에서의 자유를 표방하는 자체가 오해일 경우가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40여년에 걸친 수구냉전세력의 집권에 의해 얼마나 길들여지고 뇌세척을 당해왔는지, 그 예를 보이려고 합니다.
영남을 지역적 근거로 한 그들은 지역주의를 자의적으로 조작 확대 유포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이용하는 매국적 전략을 사용해왔습니다. 그 결과 영남 출신자는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호남출신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자리하는 구도가 강고해졌습니다. 강자의 주장은 여론을 주도하기 마련입니다.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호소와 주장은 그것이 아무리 절박하고 정당성이 있을 때마저도 반향 없이 늘 허공에 흩어지고 맙니다. 그 예를 이번 '몰표 논란'의 현장에서 똑똑히 보게 됩니다. 지역감정에서 자유롭다는 사람들도 얼마나 현 지역주의의 틀 속에서 자유스럽지 못한지도 극명히 보여줍니다.
(이 글은 '중립주의자'이신 M형의 주장을 내내 생각하며 쓰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M형은 12월 25일 한겨레 토론방에 '중립적시각'이란 아이디로 "지역감정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을 썼었지요)
저는 여기서 호남표에 대한 논란의 현상 자체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왜 호남표를 문제 삼는가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에게 호남표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인지가 나에겐 큰 의문입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편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중립을 표방하여 공정함을 호소한 뒤, 굳이 호남표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하는 사회심리가 무언지 궁금합니다.
님들은 문제제기 시 스스로 매우 불편부당한 정보라고 믿고 있는 근거들를 제시합니다. (대선 이후 수도 없이 쏟아지는 반론의 글들이 95% 몰표의 정당성과 당위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굳이 더 보태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님들이 굳이 치우친 정보만을 수집했을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님이 지금까지 지역감정과 관련하여 절대적으로 편향된 정보들에만 접근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언론의 권력을 40여년간 독식한, 영남을 지역적 근거로 한 세력들이 만들어낸 왜곡된 정보들에 매우 길들여져 있다는 뜻입니다.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님(들)은 언제 호남의 입장에 서보신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지를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님이 이제까지는 수구냉전 기득권층이 생산해낸 정보만 접해왔을테니, '중립'을 견지하기 위해서라도 호남인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정보도 접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남인의 목소리는 편견에 가득차 있어서 들으나 마나한 거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40년 영남 기득권층이 생산해낸 정보들만은 편견이 없노라고 자신하겠습니까. 만약 현재까지 생산된 정보들이 가치중립적인 것들이라고 우기신다면 님은 수구세력에 의해 이미 구제불능 상태로 세뇌돼 있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럼 님이 어떤 면에서, 편견의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중의 하나인지를 말하겠습니다.
바로 문제제기의 시각입니다. 바로 님이 글을 쓴 동기 자체란 뜻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경악할 사실은 영남표의 수구성입니다. 그런데 네티즌의 대부분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합니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아무도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반면, 놀랍게도 오히려 호남표를 가지고 왈가왈부 합니다. 호남표에 문제 있다고 아우성입니다. 님의 문제제기도 이와 동일한 선상에 있습니다.
왜 영남표에 대해 문제제기 못합니까. 영남은 수구꼴통집단이니 아예 논의에서 제껴 놓자는 합의입니까. 아니면 영남에게 무슨 큰 죄를 졌습니까, 큰 부채를 졌습니까. 영남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아니면 영남은 그렇게 우리가 감싸고돌아야만 할 지치고 천대받는 소외지역이라도 되는 겁니까. 무엇 때문에 침묵합니까. 너무 거대한 권력이라 두렵고 겁난다는 겁니까. 그렇지만 호남은 어차피 늘 눌려왔으니 좀 추궁해본들 큰 일이야 벌어지겠나 하는 기회주의적 발상은 아닙니까.
호남의 표는 관제화된 표, 동원된 표가 아닙니다. 각각의 개인이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상식과 비상식 간에 상식을 지지했던 결과일 뿐입니다. 95% 라는 숫자가 아직도 영 께름칙하다고 느끼신다면 이 나라 정치사회 구조가 얼마나 참혹할 정도로 비틀린 지경였는지를 먼저 살피셔야 할 겁니다. 95%는 대한민국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고 상징입니다. 더구나 지지받은 노 후보가 호남지역의 패권을 부르짖은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무랄 구석이 없습니다.
반면 이회창 지지 영남유권자 75% 중 절대다수가 영남패권주의를 선택했습니다. 20%, 30%, 40%도 아니고 전체 75% 중 절대다수가 영남 패권주의의 기치에 떼로 몰려든 겁니다. 호남표를 분석해보십시요. 거기 호남패권주의의 흔적이 있습니까. 단 5%라도 있습니까. 어떤 호남 유권자가 부산출신 후보를 지지하면서 호남 정권 재창출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겠습니까.(영남표가 갖는 지역패권주의의 표심을 읽는 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그것이 유권자의 몇 %인지를 따지자는 유치한 얘기가 아닙니다. )
대한한국의 수준이 아직 이 정도입니다. 이만큼이나 한국은 정의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불공평이 지배하는데도 님과 같은 사람은 나서서 중립임을 자랑스레 외칩니다. 영남표에 대한 치열한 반성에 날과 달을 새우고 난 뒤 호남표에 대해서 얘기해야 합니다. 도무지 봉건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지역패권주의가 75%의 수치 속에 극명하게 드러났는데도 그 무지막지한 집단주의는 논의에서 면제를 받고 도리어, 상대지역 출신이지만 노 후보의 탁월한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상식'을 택했던 호남인은 트집잡히고 추궁당하는 이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게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침묵하는 여러분이 다 공범입니다. 영남표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은 여러분이, 비상식이 상식 행세를 버젓이 하고 있는 이 나라를 만들고 있는 협력자입니다.
호남인은 자기방어를 하기에 지쳐있습니다. 왜 그들이 떳떳한 일, 자랑스런 일을 했으면서도 수세의 입장이 되어 자기변호에 급급해야 합니까. 경제적인 차별보다 몇 배 더 깊고 질긴 상처는 사회적 차별에 기인합니다. 70년대 초 산업화과정과 더불어 본격화된 박정희 정권의 지역감정 조작범죄는 호남인들을 간사하고 음험하고 의리없고 뒤통수치고 천하고 교활하고 ....등등의, 부정적 인간상의 표본으로 이미지조작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영남인 뿐만 아니라 호남인을 제외한 전 국민은 호남인들을 멸시의 눈으로, 사시로 흘기며 배타적 소외와 천시를 일삼는데 동조해왔습니다. 이런 행태가 무려 한세대를 훨씬 너머 이어져오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비호남인 중 문제제기를 했던 지식인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이제, 호남인들이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나마 방어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기막힌 심정에 울고 있는것, 공감하십니까.
호남인들은 범수구세력을 포함한 영남의 지역패권주의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왕따당하지 않을까 늘 두려운 겁니다. 쪽수에서 형편없이 밀리니, 무슨 구실로 어떻게 비틀려 왕따를 당하고 말 지 겁나기 때문입니다. 호남인이 어떤 정당한 이유로 인해 왕따라도 당한다면 차라리 정의의 도가 살아있음을 보며 감사라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에 의해 이유도 모르고 차별당하고 멸시받아온 호남인들은 바르게 행동하고도 칭찬은 커녕 세상모르고 시건방졌다는 괘씸죄를 상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게 어디 살 세상입니까. 이게 어디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줄 세상입니까.
우리는 모두 호남인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호남인이 아니었으면, 이땅에 사는 우리 대부분은 아직도 군사독재의 질곡에서 신음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들 덕에 이만큼의 민주화가 되었고 더구나 그들의 상식적인 투표행위란 공헌에 힘입어 우리 노 당선자가 탄생한 것을 과소평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차별과 소외의 어두운 그늘에서 무려 40년 넘게 가슴을 졸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던 우리 형제인 호남인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향한 험난한 노정에서 뿌린 그들의 피의 희생에 커다란 부채감을 품어야 합니다. 이들의 한을 풀어주지 않고서는 한국인의 한이 풀리지 않습니다. 이들의 응어리를 풀지 않고서는 이 응어리가 끝내 우리의, 당신의 족쇄가 되어 국민화합을 저해할 것입니다. 호남인의 소외를 슬그머니 모른척 하고 사회통합을 운위하지 말 기 바랍니다.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그 화합은 '당신들'만의 통합입니다. 그것이 사기수법이라는 걸 호남인의 가슴들은 압니다.
어느 진보를 표방하는 유명 논객은 그럽니다. 아주 당당하고도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전라도 깽깽이들, 그만 징징거리고 아예 전라민국으로 하나 떼서 독립이라도 하라고요. 놀라운 일입니다. 국민 화합이 이 나라가 당면한 최주요 현안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막말을 내뱉는 자가 있을 정도입니다.
부당하게 차별받아왔던 호남인들을 위무하는 것은, 국가의 현안 어쩌고 하기도 전에, 인간의 양심을 지키는 자의 가슴 깊은곳에서 울리는 떨림이요, 영혼의 맑은 목소리입니다.
하물며 희망을 싹틔울 새정권의 여명을 맞아서까지 호남인을 몰아세우는 잔인성은 그만, 동작그만! 으로 끝내세요.
중립을 주장하신 님 이하 여러분은 지금이라도 영남표에 대해 문제제기하시기 바랍니다. 굽은것은 바로 펴야 합니다. 그들이 다수라서, 이 사회에서 힘이 있으므로, 아니면 긁어 부스럼이므로 영남표에 대해선 눈 질끈 감자라고 하는 멘탈리티를 끝내 견지하는 이상 이땅은 계속해서 전근대주의의 진구렁에 갇혀 헤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영남인들이 스스로 하면 더욱 좋을 것이요, 우선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나서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영남인을 도매금으로 매도하자는게 천만에 아닙니다. 영남인을 양심불량 집단으로 몰아넣고 나는 빠져나와 카타르시스나 즐기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지역감정에 대해 치열하게 자성하는 기회를 갖자라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호남과 비호남이란 대립구도 속에서 '상대'의 입장을 비판하는 것만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비판해보자는 겁니다. 이 일은 당연 영남인이 주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호남인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내가 해봤자 '라도'애들은 안할텐데 뭐," 라며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몸 안에 암세균처럼 스물거리는 지역편견을 청정하게 세탁해내는 일이, 개인이 마음 한번 바꿔먹겠다는 결심으로 가능해질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 병은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수십년에 걸쳐 전 사회 구성원들 뇌촉수 곳곳까지 깊숙히 침투한 전염병입니다. 따라서 나 하나만 득도하여 깨어나고 병을 치유받는게 아닙니다. 주위의 전염병 환자의 몸에서도 동시에 병원균을 박멸해야만, 나 또한 병의 재발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공론의 장'에서 토론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 질병은 수치스러운 병이므로 쉬쉬하다가 그저 나 홀로 아스피린 먹고 치유되는, 그런 병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대명의 햇살 아래 거침없이 펴놓고 공개방송으로 토론하여 균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각 균에 최적한 치유제를 개발하여 우리가 동시에 복용하는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번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이 지난한 수고를 건너 뛰어 국민간 화합을 꿈꾸는 것은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민화합이 어디 대-한민국 한달 외쳤다고 내게 달려와 주었습니까. 월드컵 함성속에서 국민화합에의 열망만은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공개토론을 통한 자성입니다. 님들. 지식인, 그리고 개혁의 논객들이여, 입을 열어 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결코 쉬쉬하지 말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시작합시다
안녕하십니까? 시스템 클럽에서 지만원씨의 '호남 지역감정은 호남인이 만들었다'라는 글을 읽고 그곳 게시판에 제가 '지스카드'라는 필명으로 올린 반론입니다. 그리고 'MBC 간부 호남 90% 주장'을 반박하고 위 글 뒤에 첨부된 'MBC 간부진의 인적구성 리스트'가 조작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조선일보 인명DB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서 MBC 간부 및 방송위원회 관련자를 출신지별로 분류해서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1. 우선 '간부'의 정의부터 따져봐야겠지만 MBC의 간부 90%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거짓'입니다. 최고위직은 물론 중앙 MBC 간부 영호남 비율만 따져도 편중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첨부자료 참고) 반대로 언론사 중 조중동 3사 기고자의 영남 출신자 비율은 50%에 근접한 반면 호남 출신자 비율은 한자리 %에 머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중동의 편파성과 왜곡 등을 문제삼지 출신지 비율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2. 현 정권에서 검찰, 안기부, 국영기업 간부의 다수를 호남인맥으로 채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현 정권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파출소장 대부분... 이하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며 왜곡의 고의성마저 엿보입니다.
3. 대기업은 아직도 영남 출신이 다수입니다.
4. 지만원씨는 몇몇 개인적 경험의 사례를 지역민 전체의 성향으로 일반화하는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그런 식으로라면 어떤 지역도 매도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5. 현 정권이 호남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지 못한 것은 현 정권의 잘못도 큽니다. 하지만 정권과 특정지역민들을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 식이라면 이전의 수십년간의 영남 정권들의 잘못은 모두 영남인들이 뒤집어 쓰고 있는 상태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6. 현 정권의 잘못과 실정은 호남인들도 비판해야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정권의 잘못을 가지고 호남인들에게 멍에를 씌웁니까? 멍에를 씌운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왜 멍에를 뒤집어쓴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웁니까?
"호남에 대한 지역감정은 호남인이 만든 것" "흑인에 대한 편견은 흑인이 만든 것" "유색인에 대한 편견은 유색인이 만든 것"
첨부 1) 중앙 MBC 간부 출생지(원적)별 분류 최신 리스트입니다. (2002년 7월 18일 현재)
* 조선일보 인물 DB ( http://www.dbchosun.com/man/ )에서 검색했습니다. 본 리스트에 의심스런 부분이 있다면 직접 확인해 보세요. (지금처럼 리스트만 뽑아 보는 것은 공짜입니다.)
* 검색조건으로는 '소속기관'을 'MBC'로 설정한 뒤, '출생지'를 도,광역시별로 검색했습니다. (출생지가 이북이거나 외국인 사람은 몇 되지 않아서 생략했습니다.)
* 위 검색 결과에서 지방 MBC 관련자는 모두 삭제하고 중앙 MBC 관련자에 대해서만 조사했습니다.
* 검색 결과 영남 출생자 20.44%, 호남 출생자 17.52%, 기타지역 62.04%로 나왔습니다. 17.52%와 90% 사이에는 격차가 너무 크죠. :/
* 검색 결과
1. 출생지별 인원수 및 비율
출생지 인원수 비율 ============================ 경상도 56 20.44% 전라도 48 17.52% 충청도 37 13.50% 강원도 7 2.55% 수도권 124 45.26% 제주도 2 0.73% 계 274 100.00%
2. 출생지별 분류 리스트 ------------------------------------------------------------ 경상도 56
경상북도 19
1. 강성주 (姜聲周) MBC 보도국 부국장 1952.11.17 22. 김선익 (金善益) MBC 문화인형극회 회장 1956.04.03 28. 김종길 (金鍾吉) MBC 제작본부 제작자원국 영상2부장 1955.07.01 35. 박근학 (朴根學) MBC 감사 1945.01.25 36. 박노흥 (朴魯興) MBC 보도국 정보과학부 부장 1955.02.19 41. 서정창 (徐廷彰) MBC 시사교양국 특임 4CP 1957.12.26 48. 안재기 (安在基) MBC 보도국 총선방송기획팀 부장 1949.04.10 53. 윤길용 (尹吉龍) MBC 시사제작 5CP 부장 1957.03.03 54. 윤재근 (尹在根) MBC 스포츠취재부 부장 1955.06.15 60. 이석헌 (李錫憲) MBC 라디오본부 위원 1952.12.19 64. 이인용 (李仁用) MBC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1957.03.08 73. 장근복 (張根馥) MBC 경영본부정보시스템 팀장 부국장 1952.06.15 75. 전종건 (田鍾建) MBC 정책기획실 정책보좌역 1951.10.21 80. 정준 (鄭俊) MBC 사업국 국장 1955.12.20 87. 최완규 (崔完圭) MBC 방송작가 1964.08.18 90. 최한수 (崔漢樹) MBC 보도국 해설위원 1948.08.15 91. 홍성태 (洪性太) MBC 기획국 대외협력팀 부장대우 1959.02.04 92. 황길수 (黃吉洙) MBC 보도국 위원 1946.12.21 94. 황윤환 (黃潤煥) MBC 부국장 1943.03.28
대구 9
1. 고대석 (高大錫) MBC 해설위원 1956.01.02 4. 구본홍 (具本弘) MBC 경영본부 본부장 1948.06.05 9. 박진석 (朴鎭錫) MBC 방송기술국 제작기술부 부장 1954.08.28 10. 서영호 (徐榮鎬) MBC 보도국 워싱턴특파원 (부장대우) 1955.10.03 11. 소원영 (蘇元永) MBC 드라마2차장 1955.10.15 12. 신동호 MBC 아나운서 1965.01.10 10. 장석호 (張碩昊) MBC 스포츠국 위원 1953.04.06 22. 정순원 MBC 보도국 뉴스편집1부 사원 23. 정흥보 (鄭興寶) MBC 보도국 부국장 1956.04.03
경상남도 18
1. 강동균 (姜東均) MBC 라디오국 위원 1953.02.21 7. 강철용 (姜喆鏞) MBC 월드컵방송 기획단 단장 1948.11.13 20. 김영면 (金永冕) MBC 편성실 편성위원(부국장) 1946.04.21 43. 박영선 (朴映宣) MBC 보도국 국제부 차장 1960.01.22 50. 배대윤 (裵大玧) MBC 뉴스편집2부 차장 1955.10.16 57. 신종인 (愼鍾寅) MBC 제작본부 본부장 1947.03.10 60. 안광한 (安光漢) MBC 편성실 편성기획부 부장 1956.08.27 63. 안성일 (安聖日) MBC 보도국 통일외교부 부장 1955.12.25 68. 유규현 (柳圭鉉) MBC 방송운영국 위원 1940.12.28 74. 이상용 (李相龍) MBC 보도국 문화부 부장 1954.01.05 78. 이성언 (李成彦) MBC 경영자문위원 1949.12.20 88. 전연식 (全連植) MBC 월드컵방송기획단 부장대우 1957.07.11 91. 정길화 (鄭吉和) MBC 시사교양국 특임4CP 차장/책임프로듀서 1959.10.11 92. 정병수 (鄭丙守) MBC 홍보심의국 위원 부장 1947.03.16 93. 정병수 (鄭丙守) MBC 홍보심의국부장 위원 1947.03.16 94. 정성만 (鄭成萬) MBC 보도국 위원 1951.07.22 111. 하동근 (河東瑾) MBC 정책기획실 정책보좌역 1956.02.05 115. 허구연 (許龜淵) MBC 야구해설위원
부산 9
12. 김영희 MBC 예능국 예능2팀 차장대우 1960.06.16 14. 김종오 (金鍾午) MBC 보도본부 본부장 1947.06.23 15. 김지일 (金智日) MBC 편성실 실장 1951.05.25 17. 박건칠 (朴健七) MBC 기술정책국 위원 1947.01.30 19. 박나림 MBC 아나운서국 사원 1974.01.23 23. 신견옥 (辛堅鈺) MBC 경영관리국 국장 1955.01.31 36. 이창우 (李昌雨) MBC 편성실 TV편성부 부장 1950.08.11 38. 이해성 (李海成) MBC 보도국 국제부 베이징특파원 1953.08.21 40. 장근수 (張根洙) MBC 드라마 2차장 1957.10.31
울산 1
9. 이채원 (李埰元) MBC 사업국 부국장 1956.02.24 ------------------------------------------------------------ 전라도 48
전라북도 21
5. 권희상 (權熙相) MBC TV제작1국 프로듀서 6부장 1950.07.04 8. 김광택 (金光澤) MBC 영상취재2부 차장 1954.04.12 19. 김철호 (金澈鎬) MBC 편성실 편성보좌역 1946.12.23 21. 김택곤 (金宅坤) MBC 보도국 국장 1950.09.19 23. 문정철 (文正喆) MBC 기술본부 본부장 1949.10.18 27. 성경환 (成景煥) MBC 아나운서국 부장 1955.09.05 28. 신경민 (辛京珉) MBC 워싱턴특파원 1953.08.19 31. 양성호 (梁成鎬) MBC 영상취재2부 차장 1956.06.02 32. 양성희 (梁成熙) MBC 광고업무부장 1951.09.25 33. 양영철 (梁英喆) MBC 해설위원실 경제담당 해설위원 1948.10.12 34. 양희성 (梁熙成) MBC 감사부 위원 1951.09.25 37. 유기철 (柳基撤) MBC 보도국 뉴스편집1부 부장 1954.10.29 40. 은희현 (殷熙玄) MBC 건설기획단 단장 1947.06.11 41. 이경열 (李慶烈) MBC 방송기술국 국장 1952.04.29 42. 이선호 (李善鎬) MBC 해설위원실 위원 1953.10.20 44. 이연재 (李燃在) MBC 부장대우 1954.10.05 47. 전재철 (全在哲) MBC 보도국 영상취재1부 차장 1955.01.14 51. 정수렬 (鄭秀洌) MBC 라디오국 위원 1950.08.20 52. 정수채 (鄭壽采) MBC 시사제작국 부국장 1951.06.21 58. 최성근 (崔成根) MBC 홍보심의국 위원 1947.02.02 59. 최진용 (崔震溶) MBC 시사제작국 시사제작 3CP 1958.09.20
전라남도 21
1. 강순규 (姜淳奎) MBC 시사제작1국 국장 1952.04.19 4. 구영회 (具榮會) MBC 해설위원실 주간 1953.10.05 9. 김상기 (金相基) MBC 보도국 부국장 1953.01.27 10. 김상옥 (金尙鈺) MBC 홍보심의국 위원 1946.03.30 13. 김영문 (金永文) MBC 기획심의팀 팀장 1955.11.28 14. 김영일 (金英日) MBC 통일방송연구소 소장 1948.10.27 25. 문병화 (文炳樺) MBC 방송인프라국 국장 1952.06.09 27. 문진호 (文辰鎬) MBC 스포츠국 국장 1952.02.19 31. 박석태 (朴錫泰) MBC 보도국 부국장 1954.07.06 32. 박완주 (朴完柱) MBC 보도국 뉴스편집2부 부장 1957.05.01 35. 배귀섭 (裵貴燮) MBC 동경특파원 1951.08.03 38. 서정훈 (徐正塤) MBC 스포츠국 스포츠취재부 부장 40. 송일준 (宋日準) MBC 교양제작국 도쿄특파원 1958.10.14 45. 오열 (吳烈) MBC 보도국 라디오뉴스부 국장 1938.01.30 49. 윤영관 (尹泳觀) MBC 시사제작국 위원 1955.05.01 50. 윤재복 (尹在福) MBC 시사교양운영부 부장 1952.06.14 66. 정연호 (鄭衍昊) MBC 홍보심의국 위원 1946.05.25 68. 정인 (鄭仁) MBC 드라마2팀 차장 1955.05.20 69. 정일윤 (鄭鎰允) MBC 보도국 전국부 부장 1954.08.14 78. 최천 (崔天) MBC 방송기술국 부국장 1953.11.24 80. 홍은주 (洪銀珠) MBC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부장대우 1958.12.12
광주 6
2. 김상균 (金相均) MBC 정책기획실 실장 1949.12.19 5. 김중배 (金重培) MBC 사장 1934.03.26 10. 박명규 (朴明奎) MBC 홍보심의국 부국장 1948.10.16 14. 손동용 (孫棟龍) MBC 사업국 위원 1940.02.08 17. 이은규 (李殷珪) MBC 드라마 3CP 차장 1956.12.30 23. 최우철 (崔宇哲) MBC 홍보심의국 위원 1948.12.26 ------------------------------------------------------------ 충청도 37
충청북도 14
5. 김승수 (金丞洙) MBC TV제작1국 국장 1949.03.02 7. 김창수 (金昌洙) MBC 방송기술국 송신부 부장 1950.11.18 9. 김호준 (金好駿) MBC 스포츠국 스포츠제작부 부장대우 1952.12.21 11. 남윤숙 (南允淑) MBC 영상편집부 차장 1952.01.13 19. 유문식 (柳文植) MBC 방송자료국 자료부 국장 1944.04.27 21. 이기호 (李基鎬) MBC 라디오본부 본부장 1948.10.16 22. 이상노 (李相魯) MBC 건설기획단 건설기획부 부장 1955.02.14 24. 이우용 (李愚庸) MBC 라디오본부 위원 1956.03.07 25. 이종성 (李鍾聲) MBC 제작기술국 위원(부국장) 1941.02.12 27. 전우성 (全遇聖) MBC 기술연구소 부장직대 1955.04.28 28. 정계춘 (鄭桂春) MBC 라디오국 위원 부국장 1949.04.04 30. 정기평 (鄭璣平) MBC 기획국 국장 34. 정주춘 (鄭柱春) MBC FM 부장 1949.04.04 44. 황용구 (黃容九) MBC 보도국 보도기획부 부장 1958.03.19
충청남도 16
5. 김기덕 (金基德) MBC 라디오 제작위원 1948.07.25 7. 김승한 (金承漢) MBC 보도국 위원 1948.12.01 15. 민현기 (閔賢基) MBC 교양4 차장 1957.01.14 18. 오광섭 (吳光燮) MBC 해설위원 1953.03.25 21. 원병희 (元丙喜) MBC 라디오국 편성기획부 국장대우 1939.08.21 27. 윤영무 (尹永武) MBC 경제부 차장 1958.01.24 28. 이걸범 (李杰範) MBC 영상미술국 영상1부 부장 1950.10.01 29. 이명복 (李明福) MBC 차장대우 1958.12.21 30. 이병훈 (李丙勳) MBC 드라마국 위원 국장 31. 이성호 (李晟豪) MBC 예능국 예능3CP CP 1956.02.12 34. 이인규 (李仁圭) MBC 영상미술국 부장대우 1958.10.27 35. 이재은 (李載銀) MBC 보도국 부국장 1952.05.13 38. 임재륭 (林栽隆) MBC 제작기술국 위원 1940.12.30 41. 정상모 (鄭尙模) MBC 해설위원 1948.04.16 43. 정재순 (鄭載淳) MBC 송출기술국 부국장 1951.11.01 44. 조복행 (趙福行) MBC 사업국 사업부 부장 1958.03.18
대전 7
4. 김광백 (金光白) MBC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1943.01.12 7. 김윤영 (金潤永) MBC 홍보심의국 국장 1954.09.18 14. 송재종 (宋在鍾) MBC 해설위원 1955.01.03 18. 이상이 (李相二) MBC 시사제작국 시사영상부 부장 1955.03.16 24. 정찬형 (鄭燦亨) MBC 비서실장 1958.03.12 25. 정철영 (鄭哲永) MBC 보도국 영상취재1부 부장대우 26. 조일동 (趙一東) MBC 미술부 위원 1949.06.17 ------------------------------------------------------------ 강원도 7
4. 김규서 (金圭西) MBC 보도국 부장 1947.06.04 8. 김동환 (金東煥) MBC 제작기술국 제작기술부 부장 1952.04.15 14. 김주성 (金鑄城) MBC 축구 해설위원 1966.01.17 18. 김태희 MBC 아나운서 1971.12.21 24. 박영민 (朴暎珉) MBC 보도국 국제부 부장 1956.04.10 29. 엄기영 (嚴基永) MBC 특임이사 1951.08.05 60. 한광섭 MBC 아나운서 1958.04.03 ------------------------------------------------------------ 서울인천경기: 124
경기도 21
2. 구대성 (具大成) MBC 프로덕션 국제사업부 부장 1959.01.13 3. 권대택 (權大澤) MBC 제작기술국 보도기술부 부장 1948.05.21 6. 김광목 (金光穆) MBC 스포츠국 보도위원 1940.10.03 7. 김용빈 (金容斌) MBC 기획실 위원 1944.12.08 8. 김익호 (金益鎬) MBC 편성국 편성위원/국장 1946.03.15 13. 서경주 (徐敬周) MBC 라디오본부 1CP 1957.09.08 15. 신민철 (申敏哲) MBC 감사부 부장대우 1954.08.18 16. 신원호 (申源浩) MBC 제작기술국 국장 1945.11.11 17. 양경운 (楊慶雲) MBC 영상미술국 위원 1943.01.09 18. 양진수 (楊鎭秀) MBC 아나운서국 위원 1948.05.05 20. 원춘재 (元椿載) MBC 영상미술국 국장 1944.09.30 22. 유재석 (劉載錫) MBC 제작기술국 TV중계부 부장대우 1949.03.19 25. 이수향 (李秀香) MBC 영상취재1부 차장대우 1953.11.14 28. 이현규 (李顯圭) MBC 홍보심의국 위원 1945.07.13 30. 정균 (鄭均) MBC 라디오국 위원 1941.03.07 33. 정진민 (鄭鎭珉) MBC 홍보심의국 부국장 1952.06.19 34. 조항민 (趙恒旻) MBC 보도국 영상취재1부 부장 1953.05.28 35. 차범근 (車範根) MBC 축구 해설위원 1954.05.22 36. 최상일 (崔相一) MBC 라디오국 4CP 1957.10.24 37. 최영근 (崔泳根) MBC 예능국 예능2CP CP 1955.03.01 42. 황인뢰 (黃仁雷) MBC 드라마국 드라마3CP부 부장 1954.12.28
서울 101
2. 강영은 (姜鈴恩)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2부 차장 1963.10.22 4. 고연도 (高鍊棹) MBC TV편성국 TV편성부 부장직대 1955.08.15 5. 고창근 (高昌根) MBC 아나운서국 국장 1950.05.07 7. 권재홍 (權在弘) MBC 보도국 경제부 부장 1958.02.20 9. 김경태 (金京台) MBC 영상2부 부장 1951.05.13 11. 김상수 (金尙秀) MBC 정치부 뉴스개선팀 차장 1956.05.27 13. 김세영 (金世榮) MBC 편성국 국장 1954.08.03 14. 김세하 (金世河) MBC 방송기술국 위원 1948.04.09 18. 김영철 (金英澈) MBC 편성실 편성보좌역 1953.06.18 19. 김용관 (金容寬) MBC 라디오본부 2CP 1956.06.05 22. 김재철 (金在哲) MBC 시사제작1국 부국장 1953.12.18 23. 김정수 (金晶洙) MBC 라디오국 라디오3 CP 1955.11.05 24. 김종국 (金鍾國) MBC 보도국 정치부 부장 1956.01.05 26. 김종윤 (金鍾允) MBC 제작기술국 종합편집부 부장 1954.03.17 28. 김주하 (金柱夏)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 1973.07.29 33. 김현주 (金賢珠) MBC 인사부 차장 1958.10.07 34. 김홍기 (金弘基) MBC 보도국 영상편집부 부장대우 1951.01.03 37. 마동익 (馬東翼) MBC 감사부위원 1940.12.21 39. 민창환 (閔昌煥) MBC 전무이사 1947.08.22 40. 박경추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 사원 1969.07.05 42. 박병선 (朴炳宣) MBC 라디오국 부국장 1949.10.29 43. 박복만 (朴福萬) MBC 드라마국 국장 1948.03.02 46. 박승규 (朴勝圭) MBC 영상취재1부 차장 1957.01.04 47. 박신서 (朴新緖) MBC 시사제작2국 국장 1955.11.25 48. 박우성 (朴雨成) MBC 홍보심의국 시청자부 부장 1955.03.15 49. 박종 (朴鍾) MBC TV제작1국 프로듀서 1956.02.26 51. 박혜영 (朴惠英) MBC 라디오국 제작1부 차장 1961.02.26 52. 박흥영 (朴興榮) MBC TV편성국 위원 1949.03.24 53. 배상석 (裵相錫) MBC 편성실 위원 1947.02.18 57. 변창립 (邊昌立) MBC 아나운서국 차장 1958.06.09 60. 서형호 (徐亨豪) MBC 홍보심의국 위원 1946.05.20 62. 성경섭 (成慶燮) MBC 심의부 부장 1957.06.09 63. 손석희 (孫石熙)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2부 부장 1956.07.27 65. 송인득 (宋仁得)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부 부장 66. 신경식 (申京植) MBC 사업국 콘텐츠사업부 부장 1956.11.17 67. 신동진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 1968.08.25 68. 신석균 (申錫均) MBC TV편성부 차장대우 1959.11.04 69. 신현필 (申鉉弼) MBC 사업국 위원 1943.08.31 72. 안우정 (安祐廷) MBC 예능특임1 특임 CP 1958.11.22 74. 양윤모 (梁潤模) MBC 영상취재1부 차장 1955.03.14 76. 여태성 (呂泰成) MBC 편성본부 본부장 1944.09.14 78. 오창식 (吳昌植) MBC 스포츠제작부 부장 1955.07.01 79. 오현창 (吳賢昌) MBC 드라마1팀 차장 1960.04.02 81. 유기선 (劉起善) MBC 방송기술국 라디오기술부 부장 1951.02.06 83. 유대희 (柳大熙) MBC 방송심의국 심의위원 국장대우 1938.10.01 84. 윤경진 (尹慶鎭) MBC 편성국 외주1부 부장 1956.11.07 85. 윤기백 (尹起伯) MBC 라디오국 위원 1953.07.27 86. 윤병건 (尹炳建) MBC 스포츠국 위원 1947.01.13 88. 윤혁 (尹赫) MBC 교양제작국 차장 1957.04.03 89. 윤홍섭 (尹鴻涉) MBC 보도국 위원 1945.08.10 90. 이규현 (李揆賢) MBC 보도국 부장 1952.03.31 93. 이문노 (李紋魯) MBC 보도국 영상취재1부 차장 1954.09.19 94. 이범의 (李範儀) MBC 예능1팀 1955.06.02 95. 이병구 (李炳求) MBC 보도제작국 부장 1946.10.09 97. 이상근 (李相根) MBC 방송인프라국 부국장 1955.02.01 98. 이상민 (李商敏) MBC 기획국 위성방송추진팀 팀장 1954.09.10 100. 이석균 (李碩均) MBC 기획국 정보시스템부 부장직대 1955.12.15 102. 이성수 (李誠洙) MBC 영상취재1부 차장 1953.03.03 104. 이승문 (李承汶) MBC 영상미술국 부장 1946.05.12 105. 이여춘 (李如椿) MBC 시사제작국 차장 1957.07.06 106. 이영삼 (李永三) MBC 제작지원국 국장 1951.01.12 107. 이용석 (李容碩) MBC 홍보심의국 홍보부 부장 1957.04.30 108. 이우호 (李宇浩) MBC 보도국 사회부 부장 1957.10.19 110. 이원하 (李元夏) MBC 제작기술국 위원 부장 1945.06.25 111. 이유호 (李裕浩) MBC 예능국 예능1CP부 부장대우 1948.11.19 112. 이윤철 (李潤哲) MBC 아나운서국 부장 1954.03.08 113. 이재갑 (李在甲) MBC TV제작1국 부국장 1955.03.22 116. 이주갑 (李柱甲) MBC 시사교양국 시사교양특임1CP 1956.10.04 117. 이준희 (李埈熙) MBC 보도국 영상취재부 부장 1955.04.28 119. 이춘호 (李春浩) MBC TV제작본부 제작운용팀 팀장 1955.02.03 121. 이현우 (李賢雨) MBC 아나운서국 부장 1950.08.14 123. 이호식 (李鎬植) MBC 보도국 영상편집부 부장 1953.01.06 126. 임채헌 (林彩憲) MBC 팀장 1942.12.24 128. 장수봉 (張秀鳳) MBC 드라마국 드라마1CP부 부장대우 1949.06.23 129. 장영준 (張永俊) MBC 사업국 위원 1946.07.23 130. 장영효 (張榮孝) MBC 비상계획부 부장 1951.02.05 132. 장태연 (張泰淵) MBC TV제작2국 국장 1956.11.17 136. 정관웅 (鄭貫雄) MBC 시사제작국 시사제작 2CP 1957.03.05 138. 정명규 (鄭明奎) MBC 미주방송지사 지사장 1949.08.15 140. 정병운 (鄭炳雲) MBC 해설위원 1947.11.06 143. 정운현 (鄭雲鉉) MBC TV제작1국 전문프로듀서(부장대우) 1957.07.14 145. 정창남 (鄭昌男) MBC 시사영상부 부장대우 146. 정태석 (鄭泰錫) MBC 감사부 위원 1946.04.24 147. 정태성 (鄭泰成) MBC 보도제작부 차장 1956.02.02 149. 정혜정 (鄭惠丁)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부 사원 1966.10.01 153. 조성식 (趙誠植) MBC 홍보심의국 심의위원 1950.07.20 154. 조헌모 (曺憲模) MBC 시사제작국 특임5 CP 1953.10.07 155. 조형재 (趙亨在) MBC FM 차장 1955.06.12 156. 주용국 (朱龍國) MBC 제작기술국 부국장 1949.10.03 159. 채규태 (蔡奎泰) MBC 영상미술국 영상1부 부장 1955.11.05 161. 최동윤 (崔東胤) MBC 방송인프라국 부국장 1950.08.27 162. 최삼규 (崔三奎) MBC 시사교양국 특임 3CP 1956.07.12 164. 최세훈 (崔世勳) MBC 영상취재1부 차장 1956.03.22 166. 최용익 (崔容益) MBC 보도제작국 차장 1954.08.24 167. 최율미 MBC 아나운서국 사원 1969.03.27 169. 최재혁 MBC 아나운서국 사원 1961.09.07 170. 최창영 (崔槍暎) MBC 보도국 국제부 미주지역담당 차장대우 1956.10.21 174. 한귀현 (韓貴鉉) MBC 광고국 국장 1953.11.10 176. 한병우 (韓秉宇) MBC 선거방송기획단 위원 1954.01.18 178. 홍기룡 (洪起龍) MBC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1950.11.18 179. 홍예원 (洪藝元) MBC 보도국 라디오인터넷뉴스부 부장 1958.10.24 180. 홍은철 MBC 아나운서 1959.10.29 181. 황희만 (黃熙晩) MBC 보도국 LA특파원 1954.04.02
인천 2
5. 신영철 (申英澈) MBC 영상취재2부 차장 1955.01.27 8. 장덕수 (張德秀) MBC 시사교양국 시사교양1CP 1956.09.22 ------------------------------------------------------------ 제주도 2
18. 신용진 (申瑢眞) MBC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1957.01.13 28. 조승필 (趙勝必) MBC 감사부 위원 1955.08.15
1. 김유주 (金遊柱) 방송위원회 연예오락 제1심의위원회 심의위원 1940.06.17 3. 이종대 (李鍾大) 방송위원회 심의평가실 심의1부 부장 1957.08.13 5. 임형두 (林炯斗) 방송위원회 위원 1938.07.17 6. 함상규 (咸尙奎) 방송위원회 심의1부 부장 1958.10.20 7. 홍순권 (洪淳權) 방송위원회 공보팀 부장 1956.09.30
서울 8
3. 김창현 (金昌鉉) 방송위원회 법제부 부장 1959.01.04 4. 김춘희 (金椿熙) 방송위원회 시청자국 국장 1953.04.08 6. 오일룡 (吳一龍) 방송위원회 연예오락 제2심의위원회 위원장 1934.07.10 7. 윤혜주 (尹惠珠) 방송위원회 행정국 행정2국 부장 1957.01.31 8. 이영미 (李英美) 방송위원회 부산사무소 부장 1959.10.15 9. 장인식 (張仁植) 방송위원회 연예오락 제1심의위원회 심의위원 1940.02.11 10. 정순경 (鄭淳慶) 방송위원회 감사팀 팀장 1956.09.27 11. 조광휘 (趙光輝) 방송위원회 정책국 국장 1957.05.21
함경북도 1
1. 강대인 (姜大仁) 방송위원회 위원장 1942.02.04
-------------------------------------------------------------------------------------------------- -------------------------------------------------------------------------------------------------- 영남 사람이 지역차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2002년 대선토론방에 '국민통합'님이 "지역차별에 관한 글(펌)"(http://bbs.hani.co.kr/Board/ns_vote02/Contents.asp?STable=ns_vote02&RNo=11907&Search=&Text=&GoToPage=1&Idx=24777&Sorting=1)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입니다.
아래 글을 보신 분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지역차별에 관한 글이 최근 게시판에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아직 못 보신분을 위해 제 pc에 보관해 놓았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영남 사람이 지역차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김상봉/전 그리스도 신학대학 교수 계간 <철학과 현실> 99년 봄호 에서
1. 「이스라엘에도 책임이 있다」
1991년 초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걸프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나는 독일에서 유학 중 이었다. 그 때 그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 독일에서는 여러 가지 비관적인 목소리들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강대국들에게 향해진 것이었는데, 비판의 요지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서방세계가 정당한 응징의 한도를 넘어 지나친 보복을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비판의 목소리들은 개신 교회를 비롯해 일부 진보적인 양심세력에 국한된 것이었고 대다수 사람들은 이라크에 대한 서방세계의 군사적 행위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하는 편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사담 후세인의 위협이 단순한 엄포로 그치지 않고 실제상황으로 나타나자, 이런 분위기는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독일의 녹색당(Die Gr"unen) 외교위원장 일행이 이스라엘을 공식 방문하여, 기자회견장에서 던진 말 한마디가 독일 정가(政街)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라 정확한 발언의 경위와 내용까지를 기억할 수는 없으나, 그들 발언의 요지는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이 날아오게 된 데에는 이스라엘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넌지시 비판했던 것이다. 그들의 기자회견이 이스라엘 국민들을 얼마나 분노케 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사일이 날아드는 전쟁상황에서 긴장할 대로 긴장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선방문차 왔다는 외국 손님이 "너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훈계를 늘어놓았으니 그들이 어떻게 경악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물며 분노를 느낄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도리어 내겐 녹색당 일행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 참신하고 용기 있는 행위로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독일에서 보고 느끼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존권이 위협 받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마치 그들이 남에게 박해 받은 것이 그들에게 남을 박해해도 된다는 권리를 주기라도 했다는 듯이, 자기만 살겠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박해하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내겐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뒤부터는 그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 박해 받았던 것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볼 때조차, 박해 받은 역사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현재의 범죄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생각에 때로는 그런 말들이 역겹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니까 녹색당 외교위원장 일행의 지적대로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을 쏘게 된 데는 이스라엘의 책임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울 때부터, 수천 년 동안 그곳에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더라면 어떻게 사담 후세인이 아랍 세계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의도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들의 발언이 전파를 타고 독일에 전해졌을 때, 독일의 조야(朝野)는 마치 미사일을 얻어맞은 것처럼 경악했다. 그리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한 목소리로 그들의 발언을 부적절하고 미숙한 발언이라고 규탄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놀랍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녹색당 일행의 발언 내용은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아주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 발언의 옳고 그름은 뒤로 밀쳐둔 채 무작정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그들 발언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길래, 미숙하다, 부적절하다, 야단들인지 도무지 불만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남의 나라를 공식 방문한 외교사절이 그 나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결례가 되는 일이라서 이들이 녹색당 일행의 발언을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비판하는가 보다'라고만 추측할 뿐이었다.
2. 「옳은 말이라도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의 추측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태에서 며칠이 지났을 때, 당시 야당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의 총재 한스-요헨 포겔(Hans-Jochen Vogel) 박사가 녹색당 외교위원장 일행의 이스라엘 발언에 대해 점잖은 어조로 행한 짤막한 비평은 나에겐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는 "독일인은 그가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비록 객관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한 정치가의 영혼 속에 그토록 깊은 지혜와 순결한 양심이 깃들일 수 있는지, 전율스러운 감동으로 한동안 말을 잃은 채 망연히 있었다.
아마도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녹색당의 젊은 정치가는 자기들이 더 이상 나치의 범죄에 대해서 아무런 직접적 책임도 없으며, 그런 만큼 이스라엘의 잘못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누가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 말이 그 자체로서 옳은가 그른가 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녹색당 일행의 말이 백번 옳은 말인데 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비판하고 나서는지 의아하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은, 그가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비록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객관적으로 옳은 말에 대해 독일의 조야가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녹색당 일행의 발언을 부적절하다 비판했던 것은 단순히 외교적인 고려에 따른 것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에 따른 판단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때로는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말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비록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이치가 어떻게 독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누구든 역사 속에서 가해자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은 피해자인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그가 앞에 나서서 그 피해자들을 박해한 장본인이 아니라고 해서 이런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의 집단에 속하여 피해자의 설움을 몸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말과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사람이 가져야 할 마땅한 염치인 것이다. 하물며 가해자 된 사람이 피해자들에 대하여 있지도 않은 말로 거짓선전을 늘어놓는다면, 이런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야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3. 영남 사람들이 지역차별을 말할 수 있는가
걸프 전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한 장 두 장 달력이 넘어가고 나의 유학 생활도 그 뒤 얼마 있지 않아 끝이 났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뒤에 나는 독일에서의 일들을 하나 둘 씩 잊어갔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의 연락이 끊어지고 유학생활은 이제 빛 바랜 사진처럼 의식 속의 관념으로만 남았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뒤에 지금 그 때 그 노(老) 정치가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시 내 마음에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언제쯤 우리는 그런 정치가를 가져볼 것인가? 언제쯤이면 우리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과 염치를 가진 정치가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야당이 여당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권리이자 국민에 대한 의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국민의 지역감정을 악용하여 국가권력을 독점했던 사람들, 그리고 바로 그 권력의 독점이 낳은 부정과 부패로 나라를 아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람들이, 권력을 상실한 뒤에는 이제 자기들의 과거 비리와 현재의 무능을 은폐하고 호도하기 위해 천박한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선동하고 다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지금까지 지역차별을 무기로 수십 년 동안이나 정권을 독차지해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 정권이 바뀐 지 겨우 1년이 지난 지금 뻔뻔스럽게도 새 정부가 영남 지역을 차별하고 있다고 영남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게 된다. 과연 경상도 사람들이 지역차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지역차별이란 무엇인가? 호남 기업만 살리고 영남의 기업은 죽인다는 것인가? 그리고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호남 사람이 많아지고 영남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인가? 아니면 호남에서보다 영남에서 기업의 부도율이 더 높은 것이 지역차별 때문이라는 말인가? 고작 이런 것이 경상도 사람들이 느끼는 지역차별인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고향 친구들이여, 부끄러움을 배워 다시는 지역차별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말라.
지역차별이란 무엇인가? 나는 80년 광주의 일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려 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일회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차별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가 단지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해서 어떤 기업체의 입사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고서도 거기 취직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호적을 서울이나 경기도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조상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호적을 옮긴 뒤에도 나의 원적지가 호남이기 때문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가능하면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해 전라도 사투리, 전라도식 억양을 숨기고 서울말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차별이란 이런 때나 쓸 수 있는 말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호남 사람들이 호적을 옮겨야 했는가? 그것은 우리가 해방된 조국에서 동족에게 강요했던 창씨개명(創氏改名) 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호남 출신 젊은이들이 서울말을 쓰기 위해 애쓰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고 좌절하였겠는가? 마치 일제가 마지막에 우리의 모국어를 말살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해방된 조국에서 동족에게 그들의 정든 고향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서울에서 살면서 나는 전라도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온 사람들이 반듯한 서울말을 쓰지 않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서울 생활을 하면서 반듯한 서울말을 쓰는 것 또한 거의 보지 못하였다. 아니 그것은 고사하고 경상도 출신들은 경상도 말씨가 무슨 대단한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단정한 표준말을 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나는 서울생활을 시작한 뒤부터 그리고 특히 강단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한 뒤부터, 빠르고 시끄러운 나의 경상도 말씨를 부드러운 서울 말씨로 바꾸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거나 나는 말씨를 바꾸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고향 말씨를 감추지 못하는데 호남 친구들은 완벽하게 서울말을 쓰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막연히 경상도 말씨 자체가 전라도 말씨보다는 더 바꾸기 어려운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나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 때부터 서울 생활을 한 사람이 경상도 사람인 줄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서울 말씨를 쓰는 것을 보고 나는 경상도 말씨를 바꾸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더불어 전라도 사람들이 완벽하게 서울 말씨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전라도 말씨 자체가 유연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의 출신 지역을 감추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경상도 말씨를 버리지 못한 것은 내겐 나의 출신지역을 감추어야 할 아무런 절박한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말씨가 나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였더라면, 나도 전라도에서 온 친구들처럼 반듯한 서울 말씨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느꼈던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았으면 내가 20여년을 노력해도 배우지 못한 서울 말씨를 그들은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었을까.
4. "호남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차별이란 그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호남 사람이 단지 호남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온갖 유형무형의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호적을 바꾸는 것도 모자라 몸에 밴 말씨까지 바꾸어야 할 때,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지역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물을 머금고 호적을 바꾼 적도 없고 경상도 말씨를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본 적도 없는 경상도 사람들이 모든 국민이 같이 겪는 경제난을 두고 지역차별을 입에 올린다면, 이것은 가히 세상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 볼 때 정말로 염려스럽고 유감스러운 사람들은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정치인이나 그런 선동에 놀아나는 군중이 아니라, "호남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는 호남 차별에 대하여 아무런 역사적 책임이 없다는 듯이 지역감정의 문제가 나오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호남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안이한 양비론(兩非論)이 무슨 대단한 지혜의 증거라도 된다는 듯이 이쪽 저쪽을 모두 훈계하려 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호남 차별에 관한 한, 호남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공범이다. 그리고 호남 차별에 대해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역사적 부채는 호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고 해서 유태인들에 대한 독일의 역사적 채무관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해방되고 독립을 얻었다고 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부채가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호남 사람들에게 "너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주제넘은 애국 지사들이 학계에 또는 언론계에 너무도 많이 있다.
그렇다. 어쩌면 피해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공연히 피해자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가해자의 몫은 아니다. 가해자의 집단에 속한 사람은 그가 가해자의 일원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피해자에 대해서는 비록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물을 머금고 호적을 바꾼 적도 없고 고향 말씨를 감추고 서울 말씨를 배우기 위해 이를 악물어 본 적도 없는 이 땅의 행복한 지식인 애국지사 여러분, 부디 기억 하시라, 적어도 지역감정이나 지역차별에 관한 한, 나처럼 그대들에게도 호남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훈계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