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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아, 이것은 누구의 입맞춤인가
게시물ID : lovestory_921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4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8/04 16:20:51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곽효환, 길을 잃다




3월에 큰 눈이 내린 후

황새 한 무리 길을 잃었다

검고 흰 날개를 펴고

철원평야를 건너 순담계곡을 배회하다

날개를 접었다

바이칼 호가 아득하다


나도 어딘가에 길을 잃고 버려지고 싶다

아득히 잊혀지고 싶다

 

 

 

 

 

 

2.jpg

 

이세기, 먹염바다




바다에 오면 처음과 만난다


그 길은 춥다


바닷물에 씻긴 따개비와 같이 춥다


패이고 일렁이는 것들

숨죽인 것들

사라지는 것들


우주의 먼 곳에서는 지금 눈이 내리고

내 얼굴은 파리하다


손등에 내리는 눈과 같이

뜨겁게 타다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사이


여기까지 온 길이

생간처럼 뜨겁다


햇살이 머문 자리

괭이갈매기 한 마리

뜨겁게 눈을 쪼아 먹는다

 

 

 

 

 

 

3.jpg

 

김정환, 구두 한 짝




찬 새벽 역전 광장에

홀로 남으니

떠나온 것인지 도착한 것인지 분간이 없다

그렇게 구두 한 짝이 있다


구겨진 구두 한 짝이

저토록 웅크린 사랑은 떠나고

그가 절름발이로

세월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하지

벗겨진 구두는 홀로

걷지 못한다

그렇게 구두 한 짝이 있다


그렇게 찬 새벽 역전 광장에

발자국 하나로 얼어붙은

눈물은 보이지 않고 검다

그래. 어려운 게 문제가 아냐

기구한 삶만 반짝인다

 

 

 

 

 

 

4.jpg

 

나희덕, 입김




구름인가, 했더니 연기의 그림자였다

흩날리는 연기 그림자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아직 훈기가 남아 있었다

그 중 한 줄기는 더 낮게 내려와

목련나무 허리를 잠시 어루만지고 올라갔다

그 다문 입술을 만지려는 순간

내 손이 꽃봉오리 위에서 연기 그림자와 겹쳐졌다

아, 이것은 누구의 입맞춤인가

 

 

 

 

 

 

5.jpg

 

천양희, 끝 섬




파도가 벼랑을 부여잡는다

벼랑길이 아득하다.

아득한 섬 끝, 섬은 어디쯤일까

해안 끝이 많이 휘었다

벼랑에 매달려 산다는 가마우지새

원고지에 매달리는 글쟁이 같다

끝섬은 섬의 끝일까

끝의 섬일까

끝섬은 끝까지 가보아야 하는 곳

끝에 가서야 보이는 곳


내가 원고지를 부여잡는다

고지(高地)가 아득하다

아득한 고지 원, 고지는 어디쯤일까

원고지 사방이 절벽이다

절벽에 매달려 사는 글쟁이들

벼랑에 매달리는 가마우지새 같다

원고지는 내가 올라야 할 고지일까

고지는 끝까지 올라가야 도달하는 곳

끝까지 올라서야 보이는 곳


끝섬은 끝까지 가야 할 끝, 섬일까

원, 고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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