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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길을 잃다
3월에 큰 눈이 내린 후
황새 한 무리 길을 잃었다
검고 흰 날개를 펴고
철원평야를 건너 순담계곡을 배회하다
날개를 접었다
바이칼 호가 아득하다
나도 어딘가에 길을 잃고 버려지고 싶다
아득히 잊혀지고 싶다
이세기, 먹염바다
바다에 오면 처음과 만난다
그 길은 춥다
바닷물에 씻긴 따개비와 같이 춥다
패이고 일렁이는 것들
숨죽인 것들
사라지는 것들
우주의 먼 곳에서는 지금 눈이 내리고
내 얼굴은 파리하다
손등에 내리는 눈과 같이
뜨겁게 타다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사이
여기까지 온 길이
생간처럼 뜨겁다
햇살이 머문 자리
괭이갈매기 한 마리
뜨겁게 눈을 쪼아 먹는다
김정환, 구두 한 짝
찬 새벽 역전 광장에
홀로 남으니
떠나온 것인지 도착한 것인지 분간이 없다
그렇게 구두 한 짝이 있다
구겨진 구두 한 짝이
저토록 웅크린 사랑은 떠나고
그가 절름발이로
세월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하지
벗겨진 구두는 홀로
걷지 못한다
그렇게 구두 한 짝이 있다
그렇게 찬 새벽 역전 광장에
발자국 하나로 얼어붙은
눈물은 보이지 않고 검다
그래. 어려운 게 문제가 아냐
기구한 삶만 반짝인다
나희덕, 입김
구름인가, 했더니 연기의 그림자였다
흩날리는 연기 그림자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아직 훈기가 남아 있었다
그 중 한 줄기는 더 낮게 내려와
목련나무 허리를 잠시 어루만지고 올라갔다
그 다문 입술을 만지려는 순간
내 손이 꽃봉오리 위에서 연기 그림자와 겹쳐졌다
아, 이것은 누구의 입맞춤인가
천양희, 끝 섬
파도가 벼랑을 부여잡는다
벼랑길이 아득하다.
아득한 섬 끝, 섬은 어디쯤일까
해안 끝이 많이 휘었다
벼랑에 매달려 산다는 가마우지새
원고지에 매달리는 글쟁이 같다
끝섬은 섬의 끝일까
끝의 섬일까
끝섬은 끝까지 가보아야 하는 곳
끝에 가서야 보이는 곳
내가 원고지를 부여잡는다
고지(高地)가 아득하다
아득한 고지 원, 고지는 어디쯤일까
원고지 사방이 절벽이다
절벽에 매달려 사는 글쟁이들
벼랑에 매달리는 가마우지새 같다
원고지는 내가 올라야 할 고지일까
고지는 끝까지 올라가야 도달하는 곳
끝까지 올라서야 보이는 곳
끝섬은 끝까지 가야 할 끝, 섬일까
원, 고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