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북한산 밑 불광동 달동네에서 살았습니다.
비탈졌던 동네에도 제법 넓은 평지가 존재했는데 꼬맹이들은 그냥 공터라고 불렀죠.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가보면 동생도 있고 형도있고 친구도 있고 항상 떠들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떠한 이유로 땅까진 골라놓고
몇년동안이나 건물을 올리지 못한 장소였습니다만 그때야 알 바 없었죠.
왜일까 넓은 학교운동장보다 오히려 그 시멘트 공터에서 노는것이 더 즐거웠었습니다.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놀 것인가가 최고의 고민인 소년들에게
그 장소에가면 반드시 즐거움이 존재한다는것은 다름아닌 축복이었네요.
당연히 통신 수단은 없던 시절입니다.
일요일에 일어나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테레비로 만화동산을 보고 끝나자마자 친구집앞으로 달려갑니다.
아버지가 연신내에서 중국집을 하셔서 북한산 달동네에서는 그래도
좀 사는축에 들었던 친구라 동네에서 귀한 2층 벽돌집이었죠.
"지훈아~ 노올자~~아~"
개구리울듯 계속 외치고 있노라면
"야야 어제 야구 봤냐?"
당연하게 첫인사가 야구인 지훈이가 집에서 나옵니다.
멋진 청룡어린이야구단 잠바를 입고
야구방망이와 글러브 두개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글러브는 야구소년들에게 비싼 아이템인데 그 시절에는
아마 불광동 전체에 4개쯤 있었을겁니다.
김재박 이종도 이야기를 하며 동네 공터를 향해 걷노라면
이미 우리는 벤치에서 그라운드로 걸어나가는 프로야구선수!
야구는 둘이 할수는 없지만 걱정을 한적은 없습니다.
그 장소엔 항상 놀거리를 찾는 소년들이 모여있으니까요.
학교운동장에서 주운 테니스공이 야구공.
글러브는 투수와 포수면 충분합니다. 베이스는 공사장에서 주워온 벽돌.
소년들의 동네야구라도 프로와 마찬가지로 야구의 주인공은 투수입니다.
서로 투수를 하겠다고 잦은 다툼이 생길정도였으니 ^^;;
저도 어떻게든 투수를 해 보고 싶었지만 소년들의 강호는 냉정한 것!
그렇게 해보고싶던 투수는 항상 동네 싸움 잘하는 형의 차지였었네요.
그래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시간모르고 야구공을 던지노라면
그림자 길어지는데 밥짖는 냄새가 달동네 여기저기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배고픈것보다 야구더 좋은 야구소년들은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결국 공터의 존재를 잘 알고계신 어머니들께서 친구들을 데리러 오고 한명두명 집으로 돌아갑니다.
야구는 내일도 계속될것을 잘 알았지만 얼마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때기가 어렵던지...
시간은 흘러 군대에서 전역하고 한창 백수짓을 할 때쯤
문득문득 생각나던 유년시절의 추억의 장소로 가 봤지만
야구소년들은 어디가고 조그만 건물만이 하나 들어서있네요.
먹고사는것이 그리 쉽지는 않아서 이런일 저런일 하면서
머리는 없어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할쯔음 다시 야구 생각이 납니다.
아아 그랬었지. 즐거웠었지.
다시 해볼수 있으려나. 야구.
야구는 혼자서 할수없습니다.
"어어 나 오뭐시기야 야야 잘 지내냐?"
야구를 하고 싶지만 그 시절 야구소년들은 다 어디가고
각자 먹고사는것이 바쁜 친구놈들만 남았네요.
잘 몰랐지만 나이먹고 야구를 다시 해 보려고 하니
결코 쉬운게 아니더군요. 한국에는 야구를 즐길수있는 공간이 절대 부족하더군요.
2000만 사는 서울에 직접즐길수있는 야구장이 두손으로 셀수있을 정도니까요
사회인야구리그에 등록하면 어떻게든 소원하는 야구를 할수는 있지만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유니폼 등록비 리그비 기름값.
아! 한국에서 야구는 직접하는게 아니라 테레비에서나 관객으로 지켜 보는거인가.
친구들 모두 술을 좋아하기에 술자리에서 계속 야구를 추억해 봅니다.
그리고 복숭아 나무는 없지만 아쉬운대로 신길동 맥주집에서 도원결의!
어떻게든 공터를 찾아내 동네야구를 우리끼리라도 해보자.
일단 시간되는대로 캐치볼 부터다!
왕년의 야구소년들 모두 집합해라~!
그렇게 시작된 캐치볼 모임은
처음엔 3명 모이기도 힘들었습니다.
다들 먹고사는게 우선이니 생활을 끼고 야구하기란 쉽지가 않죠.
야구가 아닌 캐치볼을 할 공간을 찾는것도 쉬운게 아니라서
아쉬운데로 안양천의 농구장이나 한강변까지 나가서 잔듸위에서 캐치캐치볼
"야 이놈들아 야구좀 하자아~~"
"야 내가 먹고 살기도 바빠."
4명이 모여 최초로 투수 포수 타자 수비수(사실상 볼보이)가 이뤄지는데 1년여가 걸렸죠.
드디어 드디어 상시 6명정도 모이기 시작할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1루는 글러브 2루는 야구공2개 3루는 야구가방 홈베이스는 글러브나 주위의 아무물건 주워서.
나이먹고 동네사람들 보기 부끄럽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릴적 기억에
얼마나 즐거운지 오랜만에 해가지는게 아쉬운 맘을 찾았네요.
이야 그거 재밌게 보이는데 같이 해도 될까요?
점차 야구가 해 보고싶던 사람들이 한명두명 더 모였고,
작년 6월쯔음부터 드디어 9:9 야구가 가능해 졌습니다.
투수선발 시스템도 마련되었고 규칙도 점차 다듬어져 갔습니다만 하나는 놓치 않았네요.
누구나 원한다면 가볍게 즐길수 있는 생활속의 야구.
당연히 회비도 없고, 연습이나 출석강제도 없습니다.
프로야구와는 다른 연식야구공으로 놀아도
야구에 고픈 사람들이라 항상 돌아가는 발자국에 아쉬움이 가득하죠.
이제는 주말이면 60여명이상도 모이는 야구놀이터가 되었네요.
스트라잌을 못넣어서 프로야구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던지고
그런 공을 치지못해 야구방망이는 파리잡듯 허공을 가릅니다.
땅볼로 오는 공을 못잡아서 허둥거리고, 1루수는 공을 잡을때보다 놓칠때가
더 많습니다만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야구란 즐거우면 그게 다죠.
안전문제를 핑계로 관리를 귀찮아하는 학교에서 마저
야구를 금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야구를 하고싶은 소년들도 많이 찾아 옵니다.
즐겁게 야구하는 모습을 보면 어릴적 불광동 공터가 생각나네요.
올때마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 입니다.
동네야구 모임의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어릴적 저처럼 투수를 하고싶던 야구소년을 추억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