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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단추
사람의 첫 단추는 어디일까
출생일까
부모의 결합이 자신의 처음이 아닐까
학교의 졸업을 첫 관문이라 할 수 있을까
첫 직장일까
본인의 결혼일까
인생의 첫 단추는 내가 가고자 한 길을
처음 시작한 날이 아닐까
나는 글을 쓰며 살고자 꿈꾸어 왔으니
그 꿈이 있던 열다섯에 첫 단추를 꿴 것이 아닐까
아니다
나의 첫 단추는 지금이다
나는 지금부터
나로 말미암아 나를 아는 누구든 기뻐하며
누구든 해가 되지 아니하며
나로 하여금 그가 득 되게 도와주며 살리라
그리하여 늘 새로운 단추를 꿰리라
육과 영을 다하여
박재삼, 매미 울음 끝에
막바지 뙤약볕 속
한창 매미 울음은
한여름 무더위를 그 절정까지 올려놓고는
이렇게 다시 조용할 수 있는가
지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정적의 소리인 듯 쟁쟁쟁
천지(天地)가 하는 별의별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히 빨려들게 하구나
사랑도 어쩌면
그와 같은 것인가
소나기처럼 숨이 차게
정수리부터 목물로 들이붓더니
얼마 후에는
그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맑은 구름만 눈이 부시게
하늘 위에 펼치기만 하노니
김혜순, 생일
아침에 눈뜨면
침대에 가시가 가득해요
음악을 들을 땐
스피커에서 가시가 쏟아져요
나 걸어갈 때
발밑에 쌓이던 가시들
아무래도 내가 시계가 되었나 봐요
내 몸에서 뽀족한 초침들이
솟아나나 봐요
그 초침들이
안타깝다
안타깝다
나를 찌르나 봐요
밤이 되면 자욱하게 비 내리는 초침 속을 헤치고
백 살 이백 살 걸어가 보기도 해요
저 먼 곳에
너무 멀어 환한 그곳에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당신 생일날
그 초침들로 만든 케이크와 촛불로
안부 전해요
고증식, 단절
갯바위에 앉아
하염없는 햇살 받는다
집 떠나온 지 며칠
전화라도 할까 했으나
저만치 던져버린다
전화기의 파장이
이 맑은 햇살들을
토막내 버리면 어쩌나
최영철, 밤에
하늘로 가 별 닦는 일에 종사하라고
달에게 희고 동그란 헝겊을 주셨다
낮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밤에 보면 헝겊 귀퉁이가
까맣게 물들어 있다
어두운 때 넓어질수록
별은 더욱 빛나고
다 새까매진 달 가까이로
이번에는 별이 나서서
가장자리부터 닦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