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서는 지지율 차이가 표본오차 감안해도 2위랑 10% 이상 차이나기 때문에
개표 조작의 가능성 자체는 다행히 많이 낮아졌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안심해서는 안 되겠죠.
그런데 말이죠, "전자개표기 뒤에 수검표 작업이 있으니까 개표기로 조작해봤자 뒤에서 다 걸릴텐데 무슨 의미가 있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집중력이라는 건 연약한 존재예요 ㅠㅠ
여러분 고등학교 다닐 때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수업내용 하나도 안 놓치고 집중한 적 있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날 컨디션 좋다고 쳐도 수업 4~5개 집중해서 들을까말까입니다. 그런데 개표사무원들은 애초에 컨디션이 좋을 가능성이 낮습니다. 낮에 다른 일 하다가 저녁에 모였걸랑요. 그리고 새벽까지 일하게 됩니다. 수업을 밤7시에 시작해서 새벽4시까지 듣는다고 생각해보십쇼. 3시간 이상 집중해서 들을 자신 있나요? 거기다가 수검표라는 것이 아주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의 연속입니다. 차라리 수학 수업이 재밌죠. 휴식시간도 1시간마다 주는 게 아니고 2시간에 한 번입니다.
그래도 초반에는 열심히 합니다. 개표기로부터 표가 한 세트 전달됩니다. 검표 시작! 오호, 혼표 없이 분류기 분류결과 출력문서랑 정확히 같은 결과네요.
또 한 세트 전달됩니다. 검표 시작! 오호, 역시나 출력문서랑 같은 결과네요. 요런 패턴을 초반 여러 번 반복합니다.
아, 10시쯤 방송이 나옵니다. 박근혜 당선 사실상 확정이라네요. 내가 더 이상 검표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이제 와서 공부해봤자 갈 수 있는 대학이 뭐 달라지겠어?' 이런 기분과 비슷하겠죠? ㅎㅎ 그런데 아직 5시간은 더 작업해야한다네요. 왠지 울고 싶습니다.
그 때 문득 이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래 어찌됬든 수당은 어차피 똑같지." "처음부터 검표 결과는 분류기 결과 문서랑 항상 일치했어."
슬쩍 개수기 속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개수기를 은근히 덜 쳐다 봅니다. 눈도 피곤하고요, 아까부터 분류기 잘 작동했는데 설마 이제와서 다를까 싶거든요. 좀 더 어두운 내면에는, 괜히 혼표 발견해서 생기는 귀찮은 일 패스하고 싶은 맘도 있고요. 사실 아까 1장 우연히 발견했는데, 나 빼고 아무도 모르길래 그냥 슬쩍 넘어갔습니다. 별로 죄책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박근혜 당선 확정이니까요. 거기다가 왜 그렇게 미분류표는 그리 많이 나오는건지, 미분류표 분류하느라고 검표할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이상 여기까지 개표사무 3번 경험을 토대로 써본 일반 검표사무원의 내면 흐름 시나리오였습니다.
현재의 개표기를 이용한 조작으로 3% 격차를 좁히는 것은 가능할 꺼 같네요. 아주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1% 격차를 뒤집는건 확실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실 얼마나 조작이 가능하냐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