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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강상기, 우리
우리는 나를 가두는 우리다
나는 우리 밖이 그립다
우리에 갇히겠느냐
우리에서 벗어나겠느냐
내가 그리는 무늬가 세상을 바꾼다
김종해, 인사동으로 가며
인사동에 눈이 올 것 같아서
궐 밖을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퍼다 버린 그리움 같은 눈발
외로움이 잠시 어깨 위에 얹힌다
눈발을 털지않은 채
저녁 등이 내걸리고
우모보다 부드럽게
하늘이 잠시 그 위에 걸터앉는다
누군가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를 눈 속에 파묻는다
궐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내 생의 그리움
오늘은 인사동에 퍼다 버린다
최인숙, 꽃이 피었다 지며
장엄한 표정으로
꽃이 피었다
연약한 모습으로
꽃이 떨어졌다
색을 나눠주고
향기를 안겨주고
쉽게 하지 못할
또 하나의 말이 생겼다
너 그리고
꽃
이성미, 반복의 이유
나는 너를 반복한다. 너를 알 수 없을 때
너의 이름을
나는 언덕을 반복한다
반복하면 너는 민요처럼 단순해진다
반복하면 마음이 놓인다
만만해 보이고
알 것 같고
반복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법칙이 생길 것 같다. 게임처럼
너에게도 언덕에게도
반복하다 보면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복하면 리듬이 생긴다
리듬은 기억하기 좋고
연약한 선을 고정시킨다
고개와 어깨에 잘 붙고 발바닥과 손바닥과 친하고
리듬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리듬은 주술 같고
리듬이 된 것은
일이 어렵기 때문인데
리듬으로 두려움이 줄어들고
낯섦도 줄어든다
리듬은 폭력과 가깝고
노래와도 가까워서
리듬은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마치 형태가 있다는 듯
이 손으로 부드럽게 쥐어서
너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너에게서 건네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