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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 II
게시물ID : panic_924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나틱프릭
추천 : 11
조회수 : 14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07 23:38:18
 배수길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길고 긴 숲 길을 달리고 또 달렸지만 숲의 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그가 나가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그저 같은 자리를 빙빙 돌 뿐이었다.
배수길을 쫓는 그 실루엣은 아무리 달려보아도 거리가 벌어지긴 커녕 오히려 그 차이가 좁혀지고 있었다.
마침내 배수길의 뒷목을 추격자가 움켜쥐었다. 그는 뒤돌아 보았다. 
그의 뒷목을 잡고 있는 것은 머리 반쪽이 날아간 배수환이었다.

 새벽 공기와 함께 어렴풋이 들리는 새 소리가 배수길을 깨웠다.
한동안 꾸지 않았던 동생에 대한 꿈 때문에 그의 잠자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 속의 잡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는 화장실로 향하여 거울을 보았다.

 많이 초췌해진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에 비친 시계는 4시 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요즘들어 그가 시계를 볼 때마다 보이는 시간은 4시 56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머리 속을 채운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웃기는 놈들이었다.
감히 자신의 영역에 작업을 치고 간 놈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찬찬히 자기 동네에 있는 건물들의 상호명을 떠올렸다.



 ◆믿든지 말든지

 영국에 사는 폰 리들러는 최근 몇 달 간 시계를 보면 12시 34분인 경우가 많았다.
기억 편향인지는 몰라도,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 시간이 되면 왠지 모르게 시계를 보게 된다고 했다.
항상 건강하고 활기찼던 그는 일을 하던 중 불의의 감전 사고를 당하여 사망했는데 그 때 시각이 12시 34분이었다.

 ◆믿든지 말든지

 아마존에는 마치 누군가를 붙잡아 두려는 듯 사람을 빙빙 돌게 만드는 숲이 있다고 한다.
노련한 탐험가도 이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같은 곳을 계속 배회하게 되는데 
가끔씩 그 숲 속에서 천진난만한 아이가 즐거워 웃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쿨.....쿨.."
 "......"

 강력계의 분위기가 싸했다. 얼음을 끼얹은 것만 같았다.
무표정하게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이창준 형사의 앞에 신참 고상영이 졸고 있었다.
존다기 보다는 대 놓고 자는 모양새였다. 고개는 구십 도로 꺾여 있었고 입에서 침이 질질 샜다.

 찰싹!
 "으악, 씨바 누구세...."
 "뭐? '씨바'?"

고상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창준의 반문이 들어왔고 미처 반격할 틈도 없이 서류철이 날아들었다.
결국 고상영은 고개가 구십 도로 꺾인 상태로 일을 하게 되었다. 이창준은 태연히 말했다.

 "그래서, 내가 조사하고 있는 건 찾고 있나?"
 "그러문입죠, 창준 형님."

고 형사는 자신의 품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겉에는 '배씨 집 앞'이라고 적힌 3M 라벨지가 달라붙어 있었다.
이창준은 USB를 받아 자신의 안주머니에 숨기듯 집어넣었다. 고상영이 질문했다.

 "아니 근데 이 형님, 이거 공식적으로 조사하는 사건 아닙니까?"
 "조용히 해라."

그는 짐짓 차가운 투로 말하며 고 형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건 내용을 알고 있지?"
 "네... 네, 아는뎁쇼."
 "어떻게 생각해?"
 "글쎄올시다. 허무맹랑하죠. 그..."
 "그래서 보고 안한거야."

고 형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니 근데 그 있잖수... 영상이랑 동선을 따긴 땄는데..."

그는 머뭇거렸다. 이창준의 눈썹이 씰룩거리자 그는 다시 말을 꺼냈다.

 "보시면 알 거요, 참 신기한 놈이더라구요.... 어떻게 알았지?"

고상영은 입을 다물고 자신의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믿든지 말든지
잠을 잘 때 목을 꺾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 습관을 고쳐보자.
디스크가 안 좋아질 뿐더러 귀신들이 시체인줄 알고 와서 이리저리 구경한다고 한다.
잘 때는 자신을 구경하는 존재들이 보일 수도 있으므로 일어나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뜨자.


 자신의 컴퓨터에 앉은 고 형사는 일시정지된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약간의 노이즈가 끼긴 했지만 전혀 못 볼 수준은 아니었었다.
USB 안에 있던 PDF 파일에는 배수길로 추정되는 자의 동선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모든 것은 정상적으로 잘 정리되었고, 잘 촬영된, 그런 영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지금 보이는 이 화면을 제외하고 말이다.

 배수길로 추정되는, 아니, 배수길은 몰래 카메라의 렌즈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대단한 놈이네.'

묘하게 웃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배수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동선은 더 가관이었다.

 오후 4시 00분 - 자택 출발
 오후 4시 07분 - '조양 식당'에서 식사
 오후 4시 55분 - 가게 나섬.
 오후 5시 03분 - '심성 철물점', 쇠사슬로 추정되는 물건 구입 
 오후 5시 14분 - '해오름 마트' 방문
 오후 5시 18분 - 가게를 나섬.
 오후 5시 32분 - '라이프 헤어샵' 방문
 .
 .
 .
 .

역대급으로 교활한 놈이었다.
이창준은 상호명으로 장난질을 쳐 놓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조심해라 훅간다'라고 정리된 장난질을 보고 그는 배수길을 그냥 찾아가서 조져버리기로 결심했다.

 "내가 행동하려면 여기 있어선 안 된다."

그가 주저하는 동안에도, 놈의 손에 놀아나 희생되는 사람들은 또 생기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로어들, 그것을 막으려면 배수길의 거처를 급습하는 수 밖에는 없어보였다.



 ◆믿든지 말든지
 TV 조정 시간에 나오는 노이즈는 아주 오래 전 우주에서 쏘아진 신호라고 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방송국의 위성 안테나는 어떤 전파를 잡고 있는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가끔 노이즈 대신 지구의 언어가 아닌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어떤 얼굴이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믿든지 말든지
 기계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 모두는 전자파를 느끼고 있지만 이들은 사실상 청각화나 시각화된다고 할 만큼 민감하게 느끼는 쪽이다.
그들은 도청장치나 몰래 카메라같은 장비들을 단숨에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믿든지 말든지
 한국의 한 남자는 자신의 딸을 지켜주었으면 하고  칼을 들고 있는 남자 기사 모양의 인형을 그녀에게 사 주었다.
어느 날 그 남자의 딸이 자던 도중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눈을 떠 보니 그 기사 인형이 자신의 방에 들어온 도둑 고양이와 싸우고 있었다고 한다.

 ◆믿든지 말든지
 군대 초병의 야간 근무 수칙 중에는 이하의 내용이 존재한다.
'한 곳을 오래 쳐다보거나 맘대로 상상하지 말 것.'
무수히 쏟아지는 군대 괴담은 어쩌면 실체가 없는 떠도는 이야기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

 ◆믿든지 말든지
 당신이 가진 물건은 어쩌면 '괘락시니'일 수도 있다.
괘락시니는 당신의 방에 있는 물건 중 하나이고,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어떤 '것'을 쫓아내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물건이지만
그 '것'은 이 지구에 없으므로 결국 '괘락시니'의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믿든지 말든지
 1996년 김 모씨는 자신의 집 마당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구멍을 들여다보자
구멍의 끝에 보이는 것은 매우 강한 빛이었다. 아주 작게 사람들이 무어라 떠드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김 모씨는 구멍에 대고 누구 있느냐고 소리쳤고, 한 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으며
곧 그 구멍은 누군가 허겁지겁 흙으로 덮듯이 메워졌다고 한다.



 "네, XX경찰서 형사과 이창준입니다."
 ....
 "신고자분 성함이 어찌 되시죠?."
 ....
 "그렇습니까? 주소가 어디죠?"
 ....
 "네 지금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강창배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씩 웃었다.
이창준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배수길이 자신에게 지시한 일을 그는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진실을 이길 날만을 기다리며 그는 오랜 시간동안 떠돌아 다녔다.
지금까지의 허송세월을 한 번에 뒤집을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

강창배는 이창준의 PC를 뒤져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와라..!"

그의 손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졌다.

 '나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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