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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게시물ID : gomin_924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번쯤은
추천 : 6
조회수 : 398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0/10/30 16:53:00

 태어나기 전부터 나라는 존재가 부정을 당한 느낌.
 제가 뱃속에 있을 때 절 지우려고 했대요. 
 그런데 아들이라고 해서 그러지 않았대요.
 지금도 세상의 많은 안 좋은 일이 나때문이라 쉽게 자책하는 난, 
 그 뱃속에서도 딸이라 미안해요, 이랬을 것 같아.
 아들아닌 딸이라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 딸이 태어난 후 몇 년 동안 사선을 넘나들어 얼마나 지쳤을까.
 커서 이모 말을 들었어요. 나는 죽을 애니까 정 주지 말라고 했었다고.
 아, 그래서 내가 사랑받지 못 했나, 그래서 난 항상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는 걸까.

 그런데 꼭 그래서만은 아니에요. 살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다들 마음이 각박했어요.
 집안을 돌보지 않는 부모님 덕으로 어렸을 때부터 살림을 했어요.
 그거 생각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에 딱 왔는데 엉망인 집을 보곤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지르며 울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요. 그래도 난 착한 딸이어야 했어요. 그래야 사랑 받으니까요.
 하루는 성적표에 우가 두 개나 있는 게 가슴이 철렁해서
 열심히 궁리해서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선생님이 그러는데~ 내 거랑 다른 애랑 바뀐 거래. 나 원래 올수래.
 ㅋㅋㅋㅋㅋ
 편지 써놓고 자주 집을 나가는 우리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 지금도 집에 돌아 왔는데 텔레비전 위에 하얀 종이가 있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덜컹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성추행을 당했어요. 너무 무섭고 아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와 아저씨 두어 명이 모여 놀다가 한 아저씨가 저한테 이래요.
 야, 누가 니 가슴 만졌다매? 히히히히 뽀뽀도 했냐?
 우리 엄마 옆에서 같이 웃어요. 우리 언니도 같이 비웃어요.
 그 아저씨 중 한 명의 무릎에 내가 앉았을 때 다른 아저씨가 농담을 했어요.
 야, 너 다리 세우지 않게 조심해라.
 우리 엄마가 또 같이 낄낄대요. 뭔가 기분이 나빴던 난 철이 들고 나서 그 농담의 뜻을 알았어요.
 분명,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뭘까요...
 
 어린 우리를 두고 화투를 치러 다녔던 엄마는 아빠가 숙직하는 날이면 외박을 했어요.
 밤중에 걸려 오는 아빠 전화에 거짓말을 하는 건 언제나 내 역할.
 어린 가슴의 심장이 튀어 나올 듯 떨리고 두려워요.
 카드 회사의 독촉 전화를 받는 것도, 엄마가 없다며 아빠도 없다며 거짓말 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다 큰 지금도 전화벨 소리에 자주 놀라요. 그래서 전화는 항상 무음 아니면 진동이에요.

 엄마 아빠 싸움 때문에 맨발로 도망쳐 나온 기억이 여러 번.
 눈을 희번득하며 어느새 따라온 아빠 때문에 가슴 저리게 놀란 기억.
 언니와 내가 이혼을 더 바랐고, 내가 중학교 때 이혼을 하셨어요.
 언니랑 나 모두 엄마랑 산다고 했어요. 아빠는 술을 마시면 너무 날카로워 지셔서...
 평생 아빠 눈치 보고 살았는데 인제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게 마음이 편했어요.
 
 그런데 이제 엄마에겐 돈이 필요했어요. 나에게 아빠한테 전화하게 시켜요.
 난 못하겠어요. 내가 떠나온 아빤데 돈을 달라기 죄송했어요.
 술을 먹고선 날 협박해요. 엄마랑 같이 살던 옥탑방에 주저 앉아 칼과 밧줄을 보여줬어요.
 내가 전화를 하지 않으면, 칼로 찔러서 죽거나 목을 매달아서 죽거나 여기서 떨어져서 죽겠다고.
 ...
 그래서 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갖다 드렸어요.
 내가 쓸모있는 인간이란 걸 인증하기 위해 열심이었어요.
 어떤 아저씨가 집에 올 때면 난방이 되지 않는 방으로 자리를 피했던 것도 
 엄마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예요.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요.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잠결에 밥 짓는 냄새와 채소 써는 칼 소리가 들려요.
 세상에 우리 엄마가 밥 먹고 가라고 아침밥을 해줬어요.
 그 날 하루종일은 정말 팔랑팔랑 날아 다닌 거 같아.

 나에게 안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상처가 된 기억만 자꾸만 반복돼요.
 난 아직 젊고 멀쩡한 몸도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열심히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요.
 있잖아요, 난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접했거든요. 가까운 사람이 자살 시도를 하는 것도 지켜 봤고
 엄마가 칼 들고 덤빈 적도, 아빠에게 목을 졸린 적도 있어요.
 죽는다는 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인이 박혔어. 만성이 되어서 밥 먹는다는 소리랑 똑같아.
 그래서 매일 어떻게 죽을지 방법을 궁리해요.
 왜냐하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할테니까요.
 기분이 참 좋은 어느 날엔 이런 생각을 해요. 이런 날 죽을 수 있는게 행복이겠다 하고요.

 저 사실 잘 웃고 유쾌하고 밝고 감사할 줄도 아는 사람이에요. 다른 이들도 그렇게 알아요.
 단지 드러내지 않는 안쪽엔 이렇게 허무함과 불신으로 가득찬 내가 있어요.
 언젠가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이런 속 얘길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기억들,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들을요.
 하하 이마저도 외면 당할까 모다 적진 못 했네요.
 
 읽어 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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