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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바다속에서
게시물ID : panic_92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0년만에
추천 : 12
조회수 : 152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2/13 00: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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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여행을 가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었다.
숨막히게 살아가면서 나는 주변을 돌아볼 자신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의 엄마이자 한 회사의 과장. 그리고 아내라는 위치 속에서 나는 도저히 휴식이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 겨우 숨을 붙이고 살아오고 있었다. 
무슨 힘으로 난 그것들을 다 이겨내고 있었단 말인가?
 
 
**
 
 
"가족 여행을 가는건 어때? 애들 데리고 발리에 다같이 가는거...."
 
 
남편의 제안에도 섣불리 예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위약금때문에 강제로 여행을 갔다고 해야 맞는 걸까......
그렇지만 막상 가보니 무척 신났었다. 
새로산 인형을 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오늘은 생애 제일 행복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일을 잊고 핸드폰도 호텔방에 던져둔 채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이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얕은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남편을 뒤로한 채 나는 해변으로 갔다.
남편이 산 액션캠을 손에 꽉 쥔 채로...
이게 뭐라고, 바다속에서 동영상을 찍고 싶으니 이걸 꼭 사겠다고 조르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소나기가 오는 바다에서 몇번이고 자맥질을 하며 동영상을 찍어댔다.
그리고 발이 바닥에 닫지 않았다. 빨간 부표가 보였다.
 
"help me!!"
사람들은 너무 멀었다.
눈을 질끈 감고 마구 해안 쪽으로 헤엄쳤다... 나는 해안가에 안착해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아 쪽팔려... '  액션캠은 계속 돌아갔으니 내가 허우적대는 장면을 찍었으리라. 마지막 동영상을 지워버렸다.
 
 
**
 
 
"엄마가 예쁜 물고기 많이 찍어왔으니깐 한번 보자~"
아이들은 엄마가 찍어온 동영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 아이들의 자는 얼굴을 보며 출근하고, 퇴근했었지.
아이들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아이들은 늘씬한 바비인형을 안고서 노래만 불러댈 뿐이었다.
 
 
**
 
 
비행기가 한차례 출렁거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착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떠올려보았다.
면세품 인도장까지 뛰어가 그놈의 액션캠인지 수분크림인지 하는 봉투들을 찾느라 비행기를 놓칠뻔 했었다.
'시짜들 구매대행까지 해줘야되나...'  짜증이 확 났다.
 
 
**
 
 
착륙한 비행기의 웅웅 소리가 잦아들 무렵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10년이 넘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누구와도 연락이 안되는 고등학교 동창 경희였다.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뭐야 너 그동안 뭐하고 살았어?"
우연의 일치일까? 경희도 인천공항 근처에 있다고 했다. 나를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인천공항으로 오겠다고 했다.
 
 
**
 
 
남편에게 오랜 친구에 대해 쫑알댔지만 액션캠만 쳐다보며 대답을 하질 않는다.
액션캠을 들여다보았더니 물고기 대신 긴 머리카락만이 찰랑이고 있다.
 
'까똑'
 
남편의 핸드폰으로 카톡이 왔다.
'내 화장품 언제 줄꺼야? 다음에 만날때?'
그 위로 주루룩 그간의 카톡 내용이 펼쳐졌다. 친하다는 직장 여자 동료였다.
 
 
아... 그랬었지.
 
 
난 다시 슬퍼졌다. 
호텔방에서 저 카톡소리를 들었었지.
그리고 액션캠을 쥐고 바다로 나갔던 기억이 뚜렷히 떠올랐다.
바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바다로 걸어들어가며 우는 내 얼굴을 촬영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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