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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 김치 글 보고 생각난 어머니 음식에 대한 마음..
게시물ID : gomin_12819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개구리왕누님
추천 : 1
조회수 : 4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2/08 15: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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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머니께선 음식을 정말 정말 잘 만드셨습니다

14세인가 16세 꽃다운 소녀 시절 

어른들께서 짝 지어준 우리 할아버지께 시집 오셔서  

매일매일 아궁이 불 떼가며 보릿고개 시절엔 없는 재료들 모아모아 맛깔나게 음식 장만해서 장에 팔아 7남매 키우신 할머니

어릴 때, 아빠가 해주는 음식 얘기가 너무 즐거웠어요 

주말마다 멀리멀리 가족여행(아빠가 낚시광이시라ㅎ) 갈 때면

할머니가 만드신 한과얘기, 옥수수술빵 찌꺼기 훔쳐먹거 취했던 얘기, 막걸리 티 안나게 훔쳐먹는 방법 등을 듣고 있자면, 

아빠가 모락모락 김이라던가 포슬폭신한 식감 같은 걸 맛깔나게 설명해주신 덕도 있지만, 

말씀 해주시는 내내 추억에 잠겨 나른히 지으시는 행복한 표정으로 인해 아빠의 행복하고 그리웠던 옛 향수가 제 마음에까지 전해졌었습니다

명절 때, 저녁 식사 때 쯤 도착할 줄 알았는데 차가 너무 막혀 새벽 1시인가 2시 쯤 도착하게 된 할머니 댁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 온돌방 가운데 밥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오리탕. 자식새끼들 온다고 기르시던 귀한 오리 잡아다가 가마솥에 푹 끓여 놓고 이제오나 저제오나(폰도 없던 시절) 잠도 안주무시고 기다리시다 내어주신 오리탕

그런데 이상하게 막내딸인 제 국그릇에 오리 다리가 있지 뭐예요? 

그릇이 바뀐 건가 싶어 정말 깜짝 놀라 
제 그릇에 오리 다리가 있어요!!!! 아빠 꺼랑 바뀌었나봐요!!!라고 말하고보니 아빠는 이미 다리를 뜯고 계시고.. 
그럼 엄마드려야지 했는데 엄마도 있다면서 보여주시고, 그럼 오빠 건가.. 오빠는 주기 싫은데.. 하는데 오빠도 있다지 뭐예요?! 

다리는 어른이신 아빠엄마 몫인데, 오빠도 있고 심지어 딸인 제 그릇에도 다리가 있는게 너무너무 신기해서 할머니 우리땜에 두마리나 잡으신거냐고.. 

그런데 한마리만 잡으셨다는 거예요~
 손녀 마음 쓸까봐?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는 아가가 귀여워서 놀리느라? 할머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다리란다~라고만 하시며 결국 한마리에서 다리 4개가 나온 기적은 끝내 듣지 못했지만.. 
다 커서 닭손질하다가 알게 되었죠.. 
닭날개 윙 부분 손질해서 다리처럼 만들어주신.. 진짜로 할머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다리 4개..

저희 어머니께선 음식을 참....못하십니다ㅎㅎ
아빠가 엄마 음식타박하시면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토하젖을 꺼내주시는데,

언젠가 아빠께서 '이제 할머니 늙으셔서 토하젖 맛볼 날이 얼마 안남은거 같다...'라며 쓸쓸히 말하셔서 새우젖 그거 뭐 힘드냐 물었더니,
토하젖은 민물새우로 만드는건데, 장화신고 나가셔서 그물질 하고, 새우 손질해서 정성들여 만든다고, 민물새우가 얼마나 쪼금 잡히는데 이만큼 젖갈 만드려면 그물질을 얼마나 해야할까 하시는데.. 울 할매 키 진짜진짜 쪼마나신데.... 허리도 굽으셨는데...  그물질 힘든데....... 

그리고 몇해 후 
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꼬부랑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마음은 소녀였던 할머니께서... 
아픈 부위를(라고해봤자 배탈이셨대요..)의사에게 보이는게 부끄러우셔서
큰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혼자 며칠이고 참으시다..... 

그렇게 할머니께서 가시고..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시는데, 
입맛 없거나 엄마 음식이 또 너무 맛이없거나;; 할 때마다 
엄니께서  '토하젖 꺼내드릴까요?'하고 물으시는데.. 언젠가부터 아빠가 그냥 됐다고 하시는거예요.. 아깝다고.. 저거 다 먹으면 이제 울 엄니 맛 세상에 없다고... 드셔도 콩 반쪽만큼 떼어서 드시고.. 

혼자 자취하러 떨어져 나왔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정말 별 생각 없이 엄마께 여쭸습니다
토하젖 이제 다 드셨냐고 

주먹 반덩어리 정도 남기고 그렇게 아끼고 아끼고 아끼고 아끼다...곰팡이 펴버렸다고.............

쓰레기통으로 갔는지 어쨌는지는 안물어봤지만, 아빠 마음이 어떠셨을지.. 옥수수술빵 얘기해주실 때 표정이랑.. 서글퍼하시는 표정이 오버랩되서 이게 무슨 감정인가 싶었어요... 울 엄니 아부지도 언젠간 진짜로 내 곁을 떠난다.. 라는 생각도 그때 처음 절실히 깨달았고.. 

그냥.. 타지에서 어머니 음식이 왔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못 먹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큰 일이냐 이렇게까지 욕먹을 짓인가 하실 분도 있을까마는, 지금 잠도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부부의 모습에 저희 아빠가 자꾸 떠올라.. 그 내외 분들에게 필요한 건 정말 진심어린 사과라는 걸 알 것 같은 마음이예요..

이런 일이 벌어진게 안타깝기도 하고.. 
오랜만에 옛 추억들 떠올리게 되었네요
항상 알면서도 실천하기 힘든 말.. 
있을 때 잘해라 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지 못한다... 

이 글 올리고 엄마아빠한테 전화 한통씩 드려야겠네요..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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