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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늙은 어머니는 오늘도 나를 다녀가신다
게시물ID : lovestory_925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6
조회수 : 39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11/09 15:36:1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연희, 장독 하나 묻어 두고




앵두나무 그늘 아래 장독대를 생각한다

이른 아침 커다란 독 뚜껑을 다른 장독 위에 올려놓고

고추장 몇 숟가락 탁탁 소리 나게 퍼 담던

굵은 손마디

찬바람 속에서 한 해 먹을 고추장을 담그며

말하지 못한 속내를 어머니는

장독 속에 묻었다


새빨간 고추장에 싹싹 비빈 밥을 입속에 퍼 넣을 때

할머니와 아버지 언니와 나는

흔적 없이 잘 삭은 어머니 속내를 먹었다

더러는 짜고 더러는 매웠던

소리 내지 않는 한 시절을

온가족이 골고루 나누어 먹었다


푸른 잎 사이에서 소리 없이 앵두가 익어가던

장독대의 봄날처럼

베란다 창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

덜 삭은 마음들이 맵고 짠 맛을 내며

가슴에서 밀려올 때

붉고 따뜻한 몸 안의 길을 따라

늙은 어머니는 오늘도 나를 다녀가신다

 

 

 

 

 

 

2.jpg

 

양광모, 마음꽃




꽃다운 얼굴은

한 철에 불과하나

꽃다운 마음은

일생을 지지 않네

장미꽃 백 송이는

일주일이면 시들지만

마음꽃 한 송이는

백 년의 향기를 내뿜네

 

 

 

 

 

 

3.jpg

 

오시영, 돛단배




세상이 무어라 해도

나는, 나의 눈을 가질 거야

내게 소리로 오는

향기로 오는

너를 제대로 알아보는

나만의 눈을

 

 

 

 

 

 

4.jpg

 

박영근, 탑




저 탑이

왜 이리 간절할까


내리는 어스름에

산도 멀어지고

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지고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

무너져가는 몸으로

천지간에

아슬히 살아남아

저 탑이 왜 이리 나를 부를까


사방 어둠 속

홀로 서성이는데

이내 탑마저 지워지고

나만 남아

어둠으로 남아


문득 뜨거운 이마에

야윈 얼굴에 몇 점 빗방을

오래 묵은 마음을

쓸어오는

빗소리


형체도 없이 탑이 운다

금간 돌 속에서

몇 송이 연꽃이 운다

 

 

 

 

 

 

5.jpg

 

유창섭, 창밖의 길




햇볕이 쨍쨍 소리 내며

부서지는 낮에도

어둠에 갇혔다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곳으로 열려 있는

창밖은 온통 길뿐

길 아닌 곳은 없었다

어둠보다도 더 어지럽게 생각은

흩어지고 길은

아무데고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갈 데가 없음을 알았다

갈 길이 없음을 알았다

할 일이 없음을 알았다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가장 청명한 날

가장 어두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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