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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길을 걷다 - 06
게시물ID : panic_751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valanche
추천 : 3
조회수 : 5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09 15:35:13
내가 눈을 떴을 때,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베이지색의 천장이었다.

 

정독실의 천장이 하얀색 이었으니, 내가 있는 곳이 정독실은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난 몸을 일으켜보려 했다.

 

기절하기 직전에 아이들에게 깔려 수도 없이 밟혀서 그런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일어났냐."

 

난 정체 모를 목소리에 놀라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가보았다.

 

내 바로 옆에서 난 소리에 놀라 난 그쪽으로 머리를 돌려보았다.

 

상훈이었다.

 

 "빨리도 일어난다. 김경현."

 

상훈이는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대곤, 내 옆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했다.

 

 "상훈아, 여기가 어디냐...?"

 

 "니 방."

 

난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튼이 쳐져 있어 약간 어둑어둑 했지만, 주변에 보이는 책장과, 그 책장에 꽂혀있는 책으로 보아 이게 내 방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걸 보니 수도 없이 밟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절하고 나서 더 밟힌 건 아니겠지....

 

난 아픈 몸을 일으켜 상훈이와 마주보고 앉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 난 또 정독실이 아니라 왜 여기 있고...?"

 

상훈이는 옆에 있던 물통을 들고 나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일단 이거 마셔라."

 

난 내 앞에 떨어진 물통을 들고는 벌컥벌컥 물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절해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입과 목이 많이 말랐는지, 바싹 말라있던 살갗들이 물로 적셔지는 느낌이 너무나도 기분 좋았다.

 

 "니가 언제 기절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일이 좀 있었거든. 정독실에서."

 

 "철진이가 구쌤 물고 나서... 또 무슨 일 있었지...."

 

 "정독실 입구 문 부서지고 막 그 놈들이 들어오더라고. .. 좀비라고 해야하나 이제.. 암튼, 문 부서지고 막 그 놈들이 들어오더라고. 애들은 막 혼비백산해서 좀비를 뚫고 나가려고 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몇 놈 잡혀서 목 물어 뜯기고 얼굴 갈리고, 내장 뜯기고 그랬지 뭐. 구쌤도 철진이랑 똑같이 되가지고 도망치는 애들한테 손 뻗어서 목을 물어 뜯더라. 나 나가려다가 바닥에 너 쓰러져있길래 일단은 어떻게든 부축해서 여기로 데려 왔지.... 아 그리고 나가기 전에 뒤돌아봤는데.... 이철진 그 새끼, 여자애 하나 배 뜯어가지고 쳐먹고 있더라.. 씨발..."

 

상훈이가 거리낌없이 뱉어낸 그 장면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피칠갑이 된 바닥을 건너고, 문을 막고 있는 놈들의 벽을 뚫으려던 아이들은, 아마 그 시체들의 벽에 가로막혀, 똑같은 시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목을 물어 뜯기고... 배가 갈리고... 그리고 또다시 피바다를 만들고, 시체를 만들고.... 아마 지금 내려가보면 온 바닥이 피로 물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넌 나까지 데리고 정독실 어떻게 빠져나왔냐?"

 

난 생수 한 통을 비우곤, 빈 병을 구겨 바닥에 던졌다.

 

 "... 그 좀비 새끼들이 한 명씩 잡고 씹뜯맛즐하고 있을 때 그 옆으로 빨리 빠져나왔지. 다른 애들 딱 중간에 섞여서."

 

 "씹뜯맛즐이 뭔데?"

 

상훈이는 침대에서 일어서서는 옆에 있던 자기 가방을 열며 툭 던지듯 말을 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미친놈.....

 

 

난 밖이 어떤지 알고 싶어 잠시 커튼을 열어 재끼려 했다.

 

 "야야, 커튼 열지마라. 밖에 놈들이 너 보고 엄청 달려들거다."

 

 "밖에도 있냐?"

 

 "어우.. 말도 마라 임마. 너 데리고 오고 나서 보니까 무슨 산에서 칩거하던 은거기인들이 싸그리 다 내려온 줄 알았다. 정 궁금하면 살짝 젖히고 보던지..."

 

난 굳게 닫힌 커튼 틈을 살짝 벌려 밖을 보았다.

 

커튼 사이로 난 좁은 틈 사이로 태양빛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난 내 눈을 찔러대는 밝은 빛에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빛에 점점 익숙해지며 시야가 트였을 땐, 내가 보았던 건 참상이었다.

 

내 사실 방 베란다에서는, 뒷산과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 도로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외곽도로는 놈들로 점령당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충 보이는 놈들만 해도 여덟놈 정도 됐다. 아마 바로 밑에선 서성대고 있는 놈들이 더 있을게 뻔했다.

 

오솔길 바로 아래쪽에서는, 놈들이 모여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곤 마치 피의 파티를 열듯, 한 명을 뜯어 먹고 있었다.

 

아마 죽은 지 좀 됐는지, 몸에는 미동도 없었고, 놈들 틈 사이로 보이는 그 시체의 배는, 이미 70퍼센트 정도는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한 인간의 시체를 앞에 두고, 목과 머리에 내장을 감고 만찬을 즐기고 있는 놈들의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다.

 

입안에 한움큼 인간의 살을 집어 넣어 놓고도 만족을 하지 못했는지 또다시 아래쪽에 누워있는 놈의 배쪽으로 입을 가져가서는 옆쪽을 베어 물어서는 살갗을 뜯어냈다.

 

그 시체의 배에서 딸려 나온 소장과 대장은 여러 놈들 머리 위에 얹혀져 있었고, 어떤 놈은 목도리라도 새로 산 양 목에 대장을 칭칭 감고 있었다.

 

난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참으며 커튼을 다시 닫았다.

 

 "졸라 볼만하지. 그치? 아직도 뜯어먹고 있냐?"

 

상훈이는 가방에서 노트를 하나 꺼내며 나에게 말했다.

 

 ". 아직도 만찬을 즐기고 있는 거 같다. 토 나오네.. 미친놈들..."

 

난 토악질이 나올 거 같은 느낌을 애써 참으려 침을 몇번 삼키며 말했다.

 

 "... 그 새끼들 네시간 전쯤부터 그렇게 쳐먹고 있는거거든. 아직도 쳐먹고 있는 거면 무슨 소새끼들인가보다. 되새김질을 하는 거도 아니고......"

 

상훈이는 피식 조소를 날리며 말했다.

 

아마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봤을 것이다.

 

먹고 먹히는 장면이라던가... 또는 도망가려다 잡히는 모습들을 말이다.

 

상훈이는 내게 노트를 던져줬다.

 

 "탈출 루트 생각해본거다 이거. 너 기절해 있는 동안 한번 짜본 거니까 한번 읽어 봐."

 

난 상훈이가 던진 노트를 집어 들었다.

 

제법 두툼한 노트였다. 겉 표지의 문양이 익숙한걸 보니 내 책장에서 뽑아 쓴 모양이다.

 

100장짜리 노트를 보곤 냅다 잡아서 막 휘갈겨 썼겠지...

 

난 노트를 펴봤다. 앞쪽 열 장정도가 빼곡하게 무엇이 그려져 있고 쓰여 있었다.

 

이정도까지 조사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했을 정도면 나도 꽤 오래 기절을 해있었던 것 같다.

 

 "나 얼마나 기절해있었냐?"

 

난 노트를 훑어보며 상훈이에게 물어봤다.

 

 "이틀."

 

상훈이는 배낭에서 물건을 몇개 꺼내 다시 정리하며 나에게 말했다.

 

이틀이나 무의미하게 기절해 있었다니... 시간만 낭비한 기분이다.

 

상훈이는 내가 기절해있는 그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아주 다양한 루트를 생각해보고 있었나보다.

 

외곽도로를 따라 학교 건물 뒤쪽으로 빠져나가는 루트, 정문으로 바로 돌파하는 루트, 기숙사 외곽도로를 따라 주차장 쪽으로 나가는 루트 등등등, 아주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 이제 어떡하냐?"

 

난 노트를 덮고 상훈이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까지 계획을 짠 상태라면, 우리 집인 거제도까지 돌아가려는 생각이겠지.

 

 "어떡하긴. 돌아가야지, 거제도로."

 

그럼 그렇지...

 

 ", 근데 차로도 40분이나 50분 걸리는 거 뻔히 알잖아. 그걸 걸어가게?"

 

 "아니, 차로 가려고."

 

상훈이는 정리하던 가방을 내팽겨 치고는 침대에서 내려 왔다.

 

그리곤 한쪽 책상의 의자를 빼선 앉고는 다리를 내 책상 쪽으로 올려놓았다.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가려고? 무슨 근처에 공장이라도 하나 있냐?"

 

말도 안되는 소리에 난 기가 찼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차를 어떻게 구하겠다는 건지.....

 

 "아 그건 걱정 크게 안해도 될걸. 차는 있으니까."

 

 "차가 있다고?"

 

 "그럼, 있지. 장쌤거 타고 갈거거든."

 

장쌤이라... 장쌤이라는 말에 문득 다리를 물어 뜯기고 실려가던 그 장면이 다시 스쳐 지나갔다.

 

상훈이는 내가 던져두었던 노트를 발끝으로 가져와서는, 노트를 펴 안쪽 메모를 확인하곤 말했다.

 

 "내 기억이 맞으면, 장쌤은 자기 차 키를 사감실 책상에다 넣어놓거든. 한번 기숙사 들어오면 밖에 안나가고 기숙사 안에서만 열심히 일하려고 그렇게 하는 거 같더라. 그거 타고 갈거야. 기름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상훈이는 '탈출' 이라고 쓰여있는 노트 부분을 펼쳐 나에게 보여주었다.

 

여러가지 메모들이 적혀있었다.

 

그 중에 상훈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던 건, '장쌤 차' 라고 적혀있는 부분이었다.

 

 "갈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거지. 어짜피 길은 2년 동안 같은 데로 다녀서 대충은 다 외우고 있으니까... 한번 가보는 거지."

 

상훈이는 노트를 다시 접어서는 가방 근처로 던져놓았다.

 

 "너 근데 운전은 할 줄 아냐?"

 

난 내심 걱정됐다. 막상 열쇠를 구하고, 차까진 갔는데 운전을 할 줄 모른다면, 그건 또 다시 차 속에 갇혀 버리는 거랑 비단 다를게 없으니까 말이다.

 

 "시동 켜고, 사이드브레이크 내리고, 기어를 파킹에서 드라이브로 맞추고, 액셀 밟고. 아 걱정은 하지 마라, 페달 두개 중에 큰 게 브레이크인건 알고 있다."

 

갑자기 의심되기 시작했다. 정말 얘랑 같이 가도 되는 건지 아닌 건지......

 

 "너도 가방 싸라. 내일이나 모레쯤에 출발할거니까."

 

상훈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가방 근처에 앉으며 짐들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 내일이나 모레 떠나야 한다면, 나도 어서 짐을 싸야겠지...

 

난 침대 밑 서랍장에서 중간 정도의 가방을 꺼냈다.

 

상훈이랑 비슷한 크기의 가방이니, 아마 먹을 거나 마실 거, 옷가지 같은 건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난 옷장의 문을 열어 기본적이고 활동성이 있는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 경현아. 반팔 이런 거 챙기지 말고 되도록이면 긴팔 위주로 많이 챙겨라. 반팔 입어서 맨살 드러내면 나 먹어주십쇼 하는 거랑 다를 거 없으니까."

 

상훈이는 가방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말을 던졌다.

 

지금 난 정말 생존 전문가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조금 특이점이 있다면, 이놈은 좀비사태 생존 전문가라고 해야할 거 같다.

 

베어그릴스가 보이는 모든 단백질 공급원을 먹는다면, 상훈이 얘는 보이는 놈들 머리통을 모두 까부수고 다닐 거 같다.

 

 

난 가방에 물건을 하나하나 집어 넣으며 생각했다.

 

아직도 이 일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내가 아주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한번도 상상해 본적도 없고,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만약 이게 진짜라면 내 가족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내심 가족 걱정도 심하게 되기 시작했다.

 

만약 나를 찾으러 지금 학교로 오고 있다면 어떡할까....

 

아니면 놈들처럼 변해버린다면.... 또 어떻게 될까

 

정말 너무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음속이 너무나 복잡해졌다.

 

짐을 정리하면서 늘어가는 건 걱정과 근심뿐이었다.

 

정리가 아니라,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 같았다.

 

 ", 경현아. 내일은 니 방이든 어디든 무기 될만한 거 찾아볼 거니까, 몸 쓸 준비 좀 해라."

 

상훈이의 한마디가 나를 근심의 도가니에서 잠시 꺼내줬다.

 

그래... 일단은 살아 남아야 한다.

 

살아남아 당당하게 부모님도 볼 수 있지 않나....

 

난 가방 속으로 옷과 먹을 것을 구겨 넣으며 다짐했다.

 

'그래, 복잡하다.

 

복잡해 미칠 거 같다.

 

아직도 내가 본 일과 겪은 일들이 꿈속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지금 내 옆쪽에서 들리고 있는 소리와 내가 본 장면들을 봐서는 꿈이 아니라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비록 꿈처럼 보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지금은 어안이 벙벙하고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지만 내가 지금 눈을 뜨고 서있는 이 곳이 현실이라면 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가족? 형제? 친구?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일단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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