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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잃어버린 선물
이별은 다른 별에서 온 전언
매일매일 죽는 우리에 대한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다
믿을 만한 죽음은 항상 맨 나중 것이기에
네게서 받은 이상한 선물
다른 별에서는 사랑스런 생물이었고
이 별에서는 무서운 사물이었던
그것을 무어라 불러야 했을까
그것을 잃어버렸다
이름도 없이 처량한 그것을
어느 날 밤에
무심코 떨어지는 유성
십 년 전에 멈춘 시계
내 손이 앉았다 떠난 어깨
먼 외계에서 멸망하고 있는 그것들이
길고 낮게 숨 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들으면서 흐느껴 운 적이 있다
정희성, 아버지의 안경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는
설합에 넣어둔 안경을 찾아
아버님 무덤 앞에 갖다놓고
그 옆에 조간신문도 한 장 놓아 드리고
아버님, 잘 보이십니까
아버님, 세상 일이 뭐 좀 보이는게 있습니까
머리 조아려 울고 있었다
우정연, 오직 고요, 종심(從心)
한 생이
가녀린 벚꽃 떨어지듯
하느작거림으로 분주하더니
그보다 한 발 먼저 후드득거리는
깊은 속, 점 하나
떨림으로 사분사분하다
바람이 쉼 없이 머물다 간 후
저문 날 문고리처럼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던 오후
이제 더 떨어질 꽃도 없다
이산하, 나에게 묻는다
꽃이 대충 피더냐
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소리내어 피더냐
이 세상에 시끄러운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어떻게 생겼더냐
이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모두 아름답더냐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그 꽃들이 언제 피고 지더냐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이수정,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구름이 태어나는 높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순서
새를 날리는 바람의 가짓수
들숨과 날숨의 온도 차
일찍 온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
밤새 씌어졌다 지워질 때
비로소 반짝이는
가을의 의지
고르고 고른 말
이성적인 배열과
충동적인 종결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는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