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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야간알바 여징어의 한달보고서
게시물ID : gomin_9261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mRoZ
추천 : 13
조회수 : 4189회
댓글수 : 101개
등록시간 : 2013/12/04 04:45:32
 
 
 
 0. 사회 경험이 부족한 20대 초반 여징어입니다. 올해 10월 말경부터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1. 약 1주일 무렵부터 통칭 【32살 개구쟁이】가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2. 【32살 개구쟁이】가 두 번째로 PC방을 찾았을 때 그분은 술에 취해있었습니다. 핸드폰에서는 왠지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대뜸 저에게 "이거 기억 나요?" 하시더군요. 제가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이거 되게 유명한 노랜데"
하시며 실망한 눈치를 보이시기에 제가 뒤늦게 곡명을 기억해내고 아! 기억났어요! 조성모의 아시나요죠? 라고 아는 체
했습니다. 이게 바로 사건의 발단이었죠. (물론 그 곡에 【32살 개구쟁이】와 엮인 추억 따위는 없습니다. 단지 카운터에
깔려 있는 멜론 재생 목록 리스트에 그 노래가 있었고 그분이 지나치게 실망하는 기색이길래 알바 입장에서 손님 기분
맞춰주려고 한 말이었어요. 멍청한 짓이었죠.)
 
 3. 이후 【32살 개구쟁이】는 쓸데없는 잡담을 시작했습니다. 20대일 적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때가 좋았는데~" 라며
푸념을 하시길래 마침 한가한 시간이기도 해서 지금도 잘생기셨는데요 정도의 립서비스를 해드렸죠. 물론 제가 심심해서
【32살 개구쟁이】 근처를 얼쩡거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꾸 벨을 눌러서 부르시더라고요.
 
 4. 그러나 【32살 개구쟁이】의 소싯적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제가 듣고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10대에는
패싸움을 즐겨해서 경찰서도 자주 들락거렸고, 20대 초반에 잘 나가는 밴드의 보컬이어서 양 옆에 여자를 끼고 다녔으며,
또 언젠가는 대기업에도 다녔는데 엿같아서 때려치웠고, 또 최근에는 게임에서 알게 된 여자에게 약 50만원어치 선물을
했으나 알고보니 애 딸린 유부녀 (심지어 애가 중학생) 라서 이제는 얼굴 안 따지고 착한 여자면 된다나 뭐라나.
 
 5. 이윽고 【32살 개구쟁이】는 제게 관심이 있다며 추근대기 시작했습니다. 카운터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저를 부르는
호칭이 "댁"이었어요. 대략 "댁한테 관심 있어서 그래요" 이런 식으로.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때 제가 폰겜을 하느라 메시지를
제 때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게 답답했는지 【32살 개구쟁이】는 괜시리 제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하더군요.
 
 6. 나름대로 부드러운 접근인거 같은데 이게 왜요? 라고 반문하실 분들을 위해 한 말씀 드리자면 2번부터 5번까지의 일은
단 하루만에 진행됐습니다. 두 번째 방문 때에요. 또한 문제의 그 날 【32살 개구쟁이】는 제게 무리수를 던졌는데 말인즉슨
"저랑 월미도 갈래요?" 였습니다. 암만 봐도 곱게 미치지는 않으신 것 같더라고요.
 
 7. 단순한 친절에 쓸데없는 의미 부여를 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저는 또한 제가 어지간히 얕보였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착한 여자, 성격이 좋아 보여서, 등등의 말들을 자꾸 하시는 걸로 보아 웃는 얼굴로 사근사근하게 비위 맞춰주니까 순 호구로
낙인 찍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 【32살 개구쟁이】에 한하여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관했죠. (물론 통하지는 않았습니다.)
 
 8. 다른 이야기로, 【32살 개구쟁이】와 비슷한 시기에 출몰하기 시작한 [천원아저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늘 만취
상태로 오셔서 한 시간 동안 고스톱을 치고 가시는데, 처음에는 ID와 비밀번호가 잘 기억이 안나니까 대신 쳐달라는 수준이더니
【32살 개구쟁이】와 마찬가지로 절 얕보고 점점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죠. 술기운에 ID와 패스워드를 잘못 부르는건
예사요, 하루는 한게임이 점검 중이었는데 이게 왜 점검이냐며 화를 내더니, 또 언젠가는 저더러 옆 자리에 앉아서 친한 척을
하라더라고요. 제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네??? 하고 큰 소리로 되물으니까 다른 분들 시선이 쏠려서 그제야 민망한 얼굴로
 "아 나갈 때 돈 내면 되잖아!" 라고 하시던... 곱게 안 미치신 분...ㅎㅎ
 
 9. 약 2주일 무렵에 [천원아저씨]가 여자를 데려왔습니다. 두 분이서 컴퓨터 한 대를 켜고 엎치락 뒤치락 고스톱을 치는데
같은 라인에 【32살 개구쟁이】도 앉아있었어요. 그러다가 [천원아저씨]가 게임을 전체화면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하셨는데,
함께 오신 여자분이 마우스에서 손을 안 놓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게임 끝나면 만져보겠다고 했는데 끝나기가 무섭게 재시작.
[천원아저씨]는 계속 저를 닦달합니다. 저는 게임을 끄지도 않고 제가 어떻게 그걸 만지냐고 반문했죠. 하다못해 [천원아저씨]가
근처에 있던 자리에서 테라를 하던 어떤 젊은 여성분께 치근거리시길래 제가 미리 차단했습니다. 이 판 끝나면 제가 해드린다고.
그러나 함께 오신 여자분이 도통 게임을 끝내주시지 않았죠.
 
 10.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저는 문득 같은 라인에 앉아 있던 【32살 개구쟁이】의 동향이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천원아저씨]가
오기 직전까지 【32살 개구쟁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거든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정말로 제게 관심 한 톨이라도 있다면, 딱히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상황이 어떻게 되가는지 주시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천원아저씨]가 들어 온 순간부터 급
바쁜 척을 하던 【32살 개구쟁이】는 이쪽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급 던전을 돌고 계시더군요. 어찌나 맥이 빠지던지.
 
 11. [천원아저씨]가 계산을 하는 사이에 문제의 여자분이 튀었습니다. 이게 누굴 호구로 보나 어쩌구저쩌구 하며 사람 불안하게시리
PC방을 배회하던 [천원아저씨]는 혹시라도 그 여자가 돌아오거든 절대 받아주지 말라며 제게 으름장을 놓으신뒤 쓸쓸하게 퇴장하셨고
[천원아저씨]가 나가기가 무섭게 【32살 개구쟁이】가 수줍게 다가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 내일은 출근해야겠다."
 
 12.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고 쳐다만 봤더니 코를 쓱 훔치면서 "오늘 쉬었으니까 내일은 가야겠죠?" 이러시더군요. 순간 스팀이
오르면서 그러시든가요ㅡㅡ 하고 홱 돌아섰더니 【32살 개구쟁이】가 말을 이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이쯤 되니까 화도 안
나더군요. 무슨 일? 하고 멍청하게 되물으니까 【32살 개구쟁이】는 또 한 번 코를 훔치면서 말했습니다. "아 쫌 섭섭할라 그러네...ㅎㅎ"
 
 13. 그 날을 기준으로 【32살 개구쟁이】는 약 일주일 동안 두문불출했습니다. 대신 [천원아저씨]가 꾸준히 와서 깽판을 쳤고
나중에는 당당하게 컴퓨터 꺼놓고 주무시길래 사장님과 상의해서 경찰을 불렀죠. [천원아저씨]는 경찰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티나게 일코를 시작하시더니, "아니 언니, 경찰은 또 왜 불렀어?" 하고 술 안 취한 척 또박또박하게 물으시길래 저도 대답했습니다.
"아저씨가 자꾸 술 먹고 여기 와서 주무시고 시끄럽게 하시고 저한테 소리 지르시니까요." (한게임 점검할때 왜 점검하냐고 저한테
화내셨다는 말에는 경찰분들도 어이없어 하시면서 웃으시더군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14. 13번으로부터 이틀째 되는 날 【32살 개구쟁이】가 왔습니다. 민망해서라도 다른 PC방으로 옮겼겠거니 하던 차라 저는 정말
당황했어요. 【32살 개구쟁이】는 쑥스러워하며 "오랜만이죠?"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떨떠름한 얼굴로 정색하며 아무 말도 않았죠.
 
 15. 【32살 개구쟁이】는 눈치를 싹 보더니 제 근처에서 얼쩡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달리 할 말은 마땅찮은 것 같더라고요.
얼마나 할 말이 없었는지, 100원짜리 커피 자판기에서 아무것도 안 써진 버튼을 누르면 유자차가 나오는데, 그걸 저에게 들이대며
"이 버튼 누르면 유자차 나오는데. 몰랐죠? 몰랐죠?" ...신이시여.
 
 16. 이외에도 【32살 개구쟁이】는 진상이었습니다. 앞에서 자꾸 얼쩡거리길래 주시했더니 "아 왜 그렇게 귀엽게 봐요. 아, 커피
한 잔 사달라고 보는구나?" 하면서 부탁하지도 않은 커피를 뽑아주지를 않나 (물론 안 보이는데서 버렸습니다.) 커피 뽑아먹게
100원만 달라고 하지를 않나 (비록 버렸지만 받은 커피가 있어서 드렸습니다. 100원.) 하다못해 저는 비흡연잔데 저한테 담배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암만봐도 사장님거 같은 담배가 앞에 있어서 그걸 보고 한 말인 것 같기는 한데ㅋㅋㅋ 이거 제게 아니라서 드릴
수가 없다고 그랬더니ㅋㅋㅋ 괜히 또 얼쩡얼쩡거리면서 "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개피만 있으면 좋겠다~" 라며 힐끔힐끔.
어찌나 궁상맞던지 나중에는 PC 비용도 안 내고 튈까봐 걱정스러워지기까지 하더군요.
 
 17. 얼마 전에는 (개띠블소)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32살 개구쟁이】의 지정석에 앉아서 【32살 개구쟁이】와 같은 나이에
【32살 개구쟁이】와 같은 게임을 하던 (개띠블소)는 제가 인계받던 시점에서 이미 2만원에 가까운 요금을 정산해야 했는데, 제게
주의하라고 말하시던 사장님도 (개띠블소)가 먹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지 결국 퇴근도 못 하시고 저와 함께 오랫동안
(개띠블소)를 주시했죠.
 
 18. (개띠블소)는 자기가 자는 사이에 누가 지갑에서 돈을 빼간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장님이 CCTV 돌려볼까요? 했더니
그러자고 배짱도 부리시다가 CCTV 돌려서 만약 누가 손 안댔으면 어쩔건데요? 하니까 쭈그러들더랍니다. 이 와중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경찰들이 미성년자 단속을 나왔는데, 사장님이 옳다구나 하며 (개띠블소)에 대해 언질을 주자 (개띠블소)가 한없이
위축되더군요. 그러면서 자기가 핸드폰이 없다고, 어쨌든 돈 가지고 와줄만한 사람을 알아보겠다며 네이트온 친구 목록을 하염없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19. 어렵게 연락이 된 (개띠블소)의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본인 아들이 게임에 미쳐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밖에서 떠돌아다니느라
간혹 이런 전화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냉큼 돈을 부쳐줬다가는 또 집에 안 들어올 테니, 죄송하지만 본인께서 직접 여기에
오시겠다며 그 새벽에 장장 3시간에 달하는 거리를 달려오셨는데, 그 와중에 아들 추울까봐 패딩까지 챙겨오셨더군요. 어머님께서
대단히 민망해하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지" 하시는데, 물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개띠블소)께서는 원망의 눈길을 보내시더나이다.
고작 이런 일로 부모님 호출이라니...! 이런 모욕은 내 평생 처음이야...! 대략 이런 눈빛...?
 
 
 
 20. 한 달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요 근래의 고민은 수능 끝난 95년생들의 꼼수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32살 개구쟁이】
네요. 어딜 가도 저는 특이 케이스를 많이 접하는 편이라, 아마도 위 세 분은 흔치 않은 케이스일 법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괜히 나서서 좀 더 친절하게 굴 필요가 없었던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받는 만큼만 할걸 괜히 긁어부스럼이었네요.
 
 
 
 21. 마지막으로 미리 양해를 구하며【32살 개구쟁이】에게 한 말씀. 야ㅡㅡ 네가 9살 어린 연하가 좋으면 뭐해 내가 싫은데.
어깨 위에 그게 장식이야? 뇌 대신 요구르트를 부어놨어? 김칫국을 어디로 먹었길래 내가 그렇게 싫은 티를 팍팍 내도 알아먹지를 못하냐.
애초에 나더러 "착한 사람" 운운하는 것부터가 넌 여자 보는 눈이 존ㄴㄴㄴㄴㄴㄴ나ㅏㅏㅏㅏㅏㅏ 없는 거야. 정말로 내가 암것도 모르는
대가리 빈 호구새끼로 보이던? 미안한데... 나... 이전 직장이 산부인과였다... 알거 다 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남녀 관계라면
학을 뗀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는지 자꾸 너같은 놈만 꼬여서 더 학을 뗀다... 그러니까 꺼져 이 개구쟁이야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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