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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텔레비전처럼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게시물ID : readers_92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촉슬
추천 : 3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0/15 00:48:12
 
청량리 황혼 / 허연 
-canvas에 유채
 

이따금씩 피를 팔러 가기도 했습니다
카스테라 한 봉지씩 사들고
지하 주차장에 모여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울음을 터뜨리는 건
지하도입구에서 구두를 닦던
혼혈아 경태녀석이었습니다
애써 보이려 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가난과
짝사랑은 속살을 비집고 나와
찬 바닥에 나뒹골곤 했습니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던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누가 그었는지 우리들의 기억 속엔
붉은 줄이 하나둘씩 지나가 있었고
시장골목에서 소주를 마시며 우리는 어느새
그것들을 용서했습니다
시대극장 앞 길
유난히 눈길이 자주 마주치던
조그만 창녀애를 구해 내는 꿈을 꾸다 잠이 깨던
제기동 자취방
눈이 많았던 겨울이었습니다
나 혼자 용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중국집 구석방에서 녀석들은 나를 끌어안았습니다
희미한 알전구 속에서 흘러내리던 눈물
우리가 미친 듯 소리를 질러대던
무심한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겁이 많던 경태를
서울 구치소에서 면회하고 돌아오던 날
우리는 문신을 새겼던 가느다란 팔목을 확인하며
버리고 싶어도 땅끝까지 따라오던 날들과
그 거리를 떠났습니다
몇은 지원병이 되어
몇은 직업 훈련원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어깨를 누르고 있던
어디에도 없는 내일로 떠나며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텔레비전처럼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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