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제민숙, 등짐
사람들은 누구나
등짐 하나씩 지고 산다
보이는 짐이든
보이지 않는 짐이든
빈 그릇
속이 꽉 찬 그릇
그도 같이 지니면서
박두순, 어떤 하루
사용 설명서도 잘 읽지 않고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했다
삐거덕거리는 몸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듯
오늘 하루
내 몸의 스위치를 다 내리고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본다
냇물 소리에 귀기울여본다
뛰는 개구리를 바라본다
제대로 보인다
사용 설명서에 없는
하루치 삶이
나를 더 밝혔다
최병무, 미완의 시
시를 쓰는 한
가난하게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니면 가난하게 사는 동안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아직 미완의 내 시가
살고 있는 집
그래도 말보다는 자리가 잡힌
내 문자를 사랑하는 일
떠도는 삶의 기록에 대하여
가난한 내가 가난하게 사는 동안
가난한 시를 쓴다
조지훈, 사모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박재삼, 강물에서
무거운 짐을 부리듯 강물에 마음을 풀다
오늘 안타까이 바란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아지랭이가 솟아 아뜩하여 지는가
물오른 풀잎처럼 새삼 느끼는 보람
꿈같은 그 세월을 아른아른 어찌 잊으랴
하도한 햇살이 흘러 눈이 절로 감기는데
그날을 바라보는 마음은 너그럽다
반짝이는 강물이사 주름도 아닌 것은
눈물로 아로새긴 내 눈부신 자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