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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성, 겨울 밤
찬 달
하늘 높이
혼자 떠있네
그 달
창문열고
혼자 쳐다보네
종일
기다리던 소식
끝내 없네
텅 빈
마당에는
달빛만 가득하네
류시화, 눈물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 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있는 듯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민들레밭에
내가 두 팔 벌리고
누워 있다
눈썹 끝에
민들레 풀씨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눈을 깜박이면 그냥
날아갈 것만 같은
정호승, 설해목
천년 바람 사이로
고요히
폭설이 내릴 때
내가 폭설을 너무 힘껏 껴안아
내 팔이 뚝뚝 부러졌을 뿐
부러져도 그대로 아름다울 뿐
아직
단 한 번도 폭설에게
상처받은 적 없다
김재진, 삶이 나를 불렀다
한때는 열심히 사는 것만이 삶인 줄 알았다
남보다 목소리 높이진 않았지만
결코 턱없이 손해보며 살려 하진 않던
그런 것이 삶인 줄 알았다
북한산이 막 신록으로 갈아입던 어느 날
지금까지의 삶이 문득
목소리 바꿔 나를 불렀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고 있는 건가
반짝이는 풀잎과 구르는 개울
하찮게 여겨왔던 한 마리 무당벌레가 알고 있는
미세한 자연의 이치도 알지 못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다 알고 있는 듯 착각하며
그렇게 부대끼는 것이 삶인 줄만 알았다
북한산의 신록이 단풍으로 바뀌기까지
노적봉의 그 벗겨진 이마가 마침내
적설에 덮이기까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그렇게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왔다
우은숙, 딱 한 번
가슴에 달빛 하나
옮겨 심지 못한 내가
뼈에 밴 눈물의 독소
뽑지도 못한 내가
딱 한 번 물들겠다고
노을 끝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