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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길을 걷다 - 13
게시물ID : panic_753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valanche
추천 : 1
조회수 : 38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13 16:23:43
우린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아파트 주차장에 달려 들어갔다.

 

1층 주차장을 보니, 이미 빠져버린 차들도 많았다.

 

눈에 띄는 대여섯대의 차 빼고는, 대부분이 빈자리로 남아있었다.

 

상훈이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아마도 자기 부모님의 차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듯 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까치발을 들어 안쪽 주차장까지 확인한 상훈이는, 더욱 더 커진 불안감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파트와 주차장 사이에 있는 디지털 도어락쪽으로 몸을 돌렸을때, 우리는 아주 처참한 광경에, 올라오는 토악질을 삼켜야만 했다.

 

온 패널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반쯤은 말라 붙은채로, 또 반은 패널 아래쪽에 맺혀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손에 피칠갑을 하고 그 주변을 만졌는지, 시뻘건 손자국은 숫자 패널들을 뒤덮고 있었다.

 

밑에 시체가 보이지 않는걸로 봐서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힘겹게 버튼을 누르다 여기서 그대로 쓰러지고, 그 다음은 뻔하게 놈들중 한놈이 됀것 같았다.

 

우린 도어락의 신호를 받는 유리문쪽으로 눈을 돌렸다.

 

안쪽에선 누가 거나하게 피를 토해댔는지, 안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위쪽 유리에 짙게 칠해진 피는, 아래쪽으로 철철 흘러 기나긴 피의 선들을 남겨놓고 있었다.

 

상훈이는 피에 절어있는 패널 위로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아마 안쪽에서 피가 굳어버렸는지, 제대로 버튼이 안눌리는 모양이었다.

 

비밀번호를 누른다면, 삑삑하는 전자음이 들려왔어야하는데, 전혀 들리고 있지 않았다.

 

상훈이는 같은 비밀번호를 연거푸 때려넣었다.

 

대여섯번 정도 시도를 했지만, 굳게닫힌 피의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미치겠네 진짜..."

 

상훈이는 다짜고짜 주먹으로 숫자패널을 냅다 후려갈겼다.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버튼들 몇개가 떨어져 나왔다.

 

상훈이의 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핏줄기가 묻어나와, 마치 상훈이의 손은 큰 상처가 난것 처럼 보였다.

 

 "김경현 비켜봐."

 

상훈이는 비밀번호 패널 옆쪽에 세워놓은 도끼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리곤 피칠갑이 된 유리문 안쪽을 핏줄기 넘어로 살펴보았다.

 

 "오케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

 

상훈이는 도끼를 바루 잡더니, 그대로 아래쪽 유리를 강하게 후려대기 시작했다.

 

상훈이는 온 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유리를 내려 치고 있었다.

 

온 주차장 안은, 쾅쾅대는 소리로 가득차고 있었다.

 

주변에 놈들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하고 상훈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보통 큰소리가 아니라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있는 놈들도 끌어올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었다.

 

 ", 박상....."

 

내가 그를 부르려 할때, 상훈이는 유리를 향한 마지막 한방을 내리꽂고 있었다.

 

그의 도끼가 반쯤은 깨부숴진 유리틈 사이를 찍었을때, 유리는 안쪽 이곳저곳으로 흩날리며 부서졌다.

 

온 주차장은, 유리 한장이 부서지는 소리로 크게 울려퍼졌다.

 

 ", 이거 소리때문에 몰려 드는거 아니...."

 

난 내심 걱정되어 상훈이에게 말을 붙였다.

 

하지만 상훈이는, 아주 쌀쌀하게도, 아니 아주 불안한 목소리로 나에게 버럭 화를 내곤 깨진 유리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닥치고 좀 있어!"

 

상훈이는 나를 돌아보고 소리치곤, 뚫린 유리문 아래로 몸을 숙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난 주변을 두리번 대며 놈들이 없는걸 확인하곤 상훈이를 따라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선, 놈들중 한명이 있었던건지, 검은색 액체가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발한발 내딛을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우리 집은 12층에 있었기에, 계단으로 걸어가기엔 거리가 제법 됐었다.

 

우리는 혹시나 전기가 끊기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엘리베이터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6이라는 숫자에 불이 들어와있는것을 봐서는, 전기는 아직도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손을 뻗었을때, 난 또 덕지덕지 피를 붙이고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볼수 있었다.

 

이 버튼조차도 누군가가 피를 잔뜩 묻히며 문질러댔는지, 뭉개진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삐걱대는 느낌이 들며 버튼은 안쪽의 회로를 이어주며, 온 엘리베이터에 전기를 공급하는듯 했다.

 

버튼에는 주황색 불이 들어왔고, 우리는 6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가 우리에게 내려와 문을 열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당연히 버튼을 누르고 몇초정도 있다 5층으로 바뀌었어야 할 엘리베이터의 디스플레이는, 6층에 멈춰선 채로 남아있었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못쓰게 장난을 치고 있는 듯 했다.

 

난 상훈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떤 미친놈이 엘리베이터가지고 장난치나본데... 계단으로 걸어올라가야겠다."

 

상훈이는 말이 없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곤, 입만 굳게 다문채로 내 뒤에 서있었다.

 

내 말을 듣자마자, 상훈이는 바로 몸을 돌려 계단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냥 굳게 다문 입과, 피가 날정도로 세게 깨물고 입술만을 내게 보여준채, 상훈이는 비상계단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난 그런 상훈이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층한층 층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 한켠에 붙어있는 안내판의 숫자는 하나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1층에서 2, 2층에서 3, 3층에서 4, 4층에서 5.....

 

우린 5층정도에서부터 풍겨오는 짙은 피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우린 계단을 따라 올라가려 했다.

 

계단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우리가 봤던건, 계단을 따라 흘러있는 한줄기의 피였다.

 

검은색이 아닌것을 보아서는 놈들의 피는 아닌것 같았지만, 흘러있는 양이 제법 되는걸 보니 한사람의 피는 아닌 듯 했었다.

 

우리는 굽이쳐져있는 계단을 따라 걸으며 6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우리가 6층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던것은, 엘리베이터가 안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못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목이 잘려버린 시체가 엘리베이터 문쪽에서 반쯤 걸친채로 문이 닫히는걸 막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자신의 열려진 입을 닫으려고 했지만,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살덩어리때문에, 닫고있던 입을 다시 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사이에 껴있던 시체는, 목이 날라가버린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잘려진 목쪽 단면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 넘쳤는지 6층 바닥의 반정도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 피의 호수는 계단의 아래쪽으로 수십칸의 작은 한줄기의 폭포를 만들고 있었다.

 

너무나 역겨웠다.

 

난 목쪽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목을 강렬하게 자극하며 올라오는것은, 토악질이었다.

 

난 그 쓰러진 시체 위로, 먹은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상훈이는 그런 나를 살짝 쳐다보곤 등을 몇번 두드려 주었다.

 

너무나 참혹한 광경이었기에, 또 내 비위가 그렇게 좋진 않기 때문에, 난 장속에 쌓여있던 모든것을 뺄 기세로 토악질을 해댔다.

 

목이 잘린채로 죽은 시체위로 떨어진 내 구토는, 불쾌한 장면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난 한쪽 팔로 입을 슥 닦고는, 다시 위를 향해 발걸음을 향했다.

 

 

 

 

계단 벽에 붙은 패널의 숫자는 하나씩 올라가고 있었다.

 

6에서 7, 7에서 8, 8에서 9....

 

그 숫자가 하나씩 올라갈때 마다, 상훈이의 발걸음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상훈이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가족이 어떻게 됐을까, 가족이 아직도 살아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층수를 더해갈때마다, 더 커지고 있었다.

 

층수가 더해짐에 따라, 그 불안감과 긴장감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1층에서 가졌던 불안감은, 3층에서 더 배가 됐고, 6층에서는 더더욱 커졌고, 10층정도에 다다랐을때는, 심장이 두근거려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상훈이 조차도 그랬다.

 

거의 전력질주하다 시피 계단을 올라갔던 상훈이는, 10층정도에 다다랐을때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벽을 짚어댔다.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또는 '괜찮을거야.' 이러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철벽과도 같았던 상훈이에게서 보이던 그 작은 갈라진 틈은, 내가 자칫 잘못 건드리면 그 큰 벽이 무너져버릴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내뿜고 있었다.

 

계단 벽의 숫자가 어느새 11을 가리키고, 우리는 몸을 날리다 시피 하며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계단 벽의 패널은, '12↑ 11↓' 을 가리키고 있었다.

 

딱 한칸만 더 올라간다면, 바로 우리 둘의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상훈이는 헉헉대는 소리를 내며 나머지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우린 그렇게 12층에 도달할 수 있었고, 12층이라는 큰 표식을 보자마자, 우린 바닥에 엎어져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의 양옆으로는, 갈색의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고, 두 문에는 1203이라는 숫자와1204라는 숫자가 붙어있었다.

 

우리집이었다.

 

상훈이는 어느정도 호흡이 진정이 됐는지,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1203이라는 숫자가 적힌 문 앞에 섰다.

 

상훈이 집이었다.

 

상훈이는 디지털 도어락의 버튼을 눌러선, 숫자 패널을 열었다.

 

아무런 빨간색 물질도 묻어 있지 않았던 숫자패널을 본 상훈이는, 안도의 미소를 날리게 만들어 주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삑소리가 8번 들린 후,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상훈이는 "엄마!" 라고 크게 외치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상훈이의 희망은 그곳에서 산산히 깨어진것 같았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긴 빨간색 피의 길에, 상훈이는 얼어 붙고 말았다.

 

, 그 피의 길 위로 떨어져 섞이고 있는 검은색의 물질은, 상훈이가 가졌던 모든 꿈과 희망을 산산히 깨어부수기에 충분했다.

 

상훈이는 완전히 창백해진 얼굴로, 안쪽으로 한걸음씩 발을 뗐다.

 

모든것을 잃어버린것 같은 표정이, 거울에 비쳐 나에게로 전해졌다.

 

난 문을 놓고 들어가려는 상훈이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 문을 잡았다.

 

문에 손을 댔을때 내가 느낄수 있었던건, 축축함이었다.

 

깜짝 놀라 손을 뗐을땐, 내 손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손금을 가로지르며 네줄기의 빨간색 줄들이 그어져있었다.

 

난 문의 스토퍼를 내려 닫히지 못하게 막아두었다.

 

상훈이는, 현관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훈이 밑으로는, 무언가가 끌려들어간듯한 흔적이 보였다.

 

빨간색 핏자국은, 얇고 넓게 퍼진채로 집 안쪽을 향해 있었다.

 

 "........? 아빠......?"

 

상훈이는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며 조심스레 가족을 부르고 있었다.

 

안쪽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우린 조금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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