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유치원 때, 1989년인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던 관사 텃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 계단 위에 앉혀 놓고,
그 때 당시 아버지 월급으로는 구하기 힘들었던 자동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두 분을 담고 나서
그 조막만한 손으로 셔터를 누르던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어찌나 집중해서 그 한 컷을 사진기에 담았던지 그 희열이 아직도 손 끝에 남아있는 듯 합니다.
제 사진에 대한 첫 기억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혹여 어린 꼬마가 사진찍다 실수할까 필름도 일부러 넣지 않았던 사진기였다는 걸 안 건
머리털이 좀더 길어지고 굵어졌을 쯤이네요.
(어쩐지 왜 그 사진이 앨범에 없나 했어요..;)
성장하면서 사진기란 단순히 자동카메라만 있는줄 알았던 전,
참 특이하게도 6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남들이 버린 쓰레기만 찍고 다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학교 땐 잠시 흑백 사진에 끌려 찍은 단 한장의 사진을 현상한 후엔 필카에서 손을 놓고,
그저 똑딱이만 가지고 다니며 이것 저것 소소한 일상을 담길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데쎄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누군가 나를 그 안에 담아 줬던 순간부터였습니다.
그 땐 내가 찍는 것 보다는 내가 찍히는 것에 익숙했었고 누군가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데쎄랄은 그저 그것들과 통하고 있다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처음엔 니콘d100으로 시작했고 d100을 보낸 후 그 누군가도 떠나버렸고 사진을 접게 되었습니다.
취업 후 미친듯이 일을 하다가 문득 방 한 구석에 놓인 핸드 스트랩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내 스스로에게 준 선물, 빨간 핸드 스트랩. 카메라를 팔 때도 팔지 않았던 그 녀석.
그리고 덕팔이를 만났습니다.
오십점팔과 시그마1770을 다시 사고 세로그립도 다시 사고 빨간 핸드 스트랩을 달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코 끝이 시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뷰파인더를 보니 아..!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표면에 치우쳐 놓치고 있던 것들이 여기 다 담겨 있었구나...'
그리고나자,
"아.. 진심으로 사진 잘 찍고 싶다. 내가 본 것은 이래요.. 라고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하기에 진심으로 어려운 일이고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 많지만,
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고
많은 인연이 기다리고 있고
많은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너무나 기대되고 가슴 설레입니다.
오늘 사실 술 먹은 것도 아닌데; 호박즙 두 팩만 먹었을 뿐인데 주절 주절;
야경 뽐뿌 받아서 그런 가 봅니다; 으허허허;
어서 날이 풀리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