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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침식
어머니
돌아가신 후
고향 바닷가에서
뼈만 남은
기슭에 기대어
나는 울었다
뭉클한 갯벌을
맨발로 걸으며
나는 울었다
파란과 굴곡의
해안선 내달리며
가슴을 쳤다
돌아올 때
침식이라는 말이
가슴을 쳤다
길상호, 물이 마르는 동안
햇볕을 한 장
한지를 한 장
겹겹으로 널어둔 그 집 마당은
고서(古書)의 책갈피처럼 고요했네
바람만이 집중해서
뜻 모를 글귀를 적어가고 있었네
종이가 마르는 동안
할머니의 눈꺼풀이 얇아지는 동안
마당 한쪽의 감나무는
그림자를 살짝 비켜주었네
윤병무, 말의 뒤편
마저 말하려는데
왜 목메는지
목메는데 왜
말은 역류하는지
말을 물고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밤
밤이 바람을 뱉는다
구름이 반달을 뱉는다
반달이 절반만 말한다
해에게 빌린 말
빛 없는 말은
달 뒤편에 있다
허영자, 흰 수건
흰 수건에
얼굴을 닦으려다 멈칫한다
거기
슬프고 부끄러운
초상화 찍힐까봐
흰 수건에
두 손을 닦으려다 멈칫한다
거기
생활을 헤집고 온
비굴의 때 묻을까봐
문인수, 통화 중
그곳은 비 온다고?
이곳은 화창하다
그대 슬픔 조금, 조금씩 마른다
나는, 천천히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