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선배가 말했다. 아마 대충 따지면 나랑 대수로 20대 정도 차이가 나니까 나이가 쉰 정도 되시겠지. 술을 한잔 들이키시고는 입을 뗐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열정이 없어. 내가 젊었을 때만해도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부모가 말려, 선생이 말려 이래 저래 여기저기서 말리기 바빴는데 말이야. 요새 젊은이들은 부모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면서 열정이 없단 말이지. 그리고 부모가 뭘 지원해준다 해야지 마지못해 하지, 먼저 말을 안 꺼내면 또 안 해요"
듣다 보니 맞는 말 같았다. 내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와 지금 내가 사는 시대는 다르다. 예전 아버지 일화를 말하자면, 명절 때 돼지 비계 한 덩어리 먹으려고 가마솥에 줄 서던 시대랑은 많이 다른 건 확실하다. 그래도 듣자 보니, 뭔가 속이 상한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선배한테 말했다.
"선배님, 저희들은 열정이 없는 게 아니고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거에요. 뭘 할지 모르는데 열정이고 뭐고 있겠습니까? 정말 뭐라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우리도 뭔가 괜찮은 것을 하고 싶은데, 사실은 모르는 게 제일 문제인 거에요."
내 말을 듣고 선배는 머뭇거린다. 머뭇거리다가 다시 술잔을 기울이며 한잔을 들이킨다.
"그래도 이 사람아, 부모가 해외 보내줘, 어학연수 보내줘, 학원 보내줘, 등록금 다 대주지. 그런데 자기가 알아서 뭘 하겠다고도 안 해. 뭘 해도 진득하게 안 해. 참 배부른 세대지.."
다른 신입 후배들과, 어린 후배들은 멀끔히 그 선배를 바라본다. 자기네들도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다. 그런데 대화는 진행이 안 된다. 반문해도 다시 쳇바퀴 돌듯 막혀있는 부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내가 지금 태어났어 봐, 부모가 지원 빵빵해, 사달라는 거 다 사줘, 배우고 싶다고 하는 거 학원 보내줘, 해외 연수도 보내줘. 기가 막힌 인생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시원치 못하다. 중심이 되는 대화 내용은 없고 쭉정이만 서로 내어 보인다. 답답한 마음에 선배께 소주 한잔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본다.
"그럼 선배님, 20년 전에 뭘 하고 싶으셨어요? 부모님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음 난 말이야. 그, 20년전에, 음,,, 뭐 하고 싶은 것들이,, 뭐,, ,, 그게 뭐 부모님이 뭘 하도록 하지를 못해서 말이지,,,뭐,,,,,"
그리고 그 선배와 대화는 끝났다. 현재의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단순히 열정의 문제로 따지는 기성세대들의 과오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우리 세대의 무능력함이나 문제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과 현재는 다르다. 그 시절은 현재와 상대적으로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이라는 게 어렵지 않은 시대였다. 현재 우리 세대들의 절반의 꿈이 공무원인 세대랑은 다른 세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성세대들이 잘 만들어낸 사회 구조에 던져졌다. 보호장치는 없다. 20살까지는 좋은 대학가는 게 인생의 전부로 살아왔다가, 갑자기 열정 있는 삶, 내가 주인인 삶, 진정한 행복을 위한 삶으로 잔뜩 꾸민 기성세대들의 기반들 속에 던져져 무차별적으로 내 자신은 상품화 되고, 그들에게서 선택되고 판매된다. 이게 우리시대의 상황인데 여기서 열정이라니, 진정한 삶이라니. 요즘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이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오과장, 장그래, 전무, 똑똑하고 잘나가는 안영이 모두가 미생이다. 날고 기고, 팀 프로젝트에 큰 성과를 보이고, 서울대를 나오고, 일반직이라도, 계약직이라도, 거기 나오는 모두가 '미생'이다. 우리 모두 '미생'이면서 왜 그렇게 멋쟁이인 냥 위세를 부리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차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 단지 필요한 건 진심 어린 위로, 그리고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변화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끼고 사회적 참여를 해줬음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