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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박시교, 그리운 쉼표
이윽고
마침표를 찍기까지
우리 삶에
몇 개의
느낌표와 물음표가 필요할까
어쩌면
생은 한 줄 글
그 행간 점
쉼표여
이승훈, 지금
커다란 고요가 있고
여름 해가 있고
흘러간 존재의 모습이 있다
네가 떠난 다음
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것
이정하, 슬픔의 무게
구름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 만한 힘이 없을 때
비가 내린다
슬픔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 만한 힘이 없을 때
눈물이 흐른다
밤새워 울어본 사람은 알리라
세상의 어떤 슬픔이든 간에
슬픔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눈물로 덜어내지 않으면
제 몸 하나도 추스를 수 없다는 것을
길상호, 빗물 사발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가랑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누가 거기 두고 갔는지
이 빠진 사발은
똑, 똑, 똑, 지붕의 빗방울을 받아
흙먼지 가득한 입을 열었다
그릇의 중심에서
출렁이며 혀가 돋아나
잃었던 소리를 되살려 놓는 것
둥글게 둥글게 물의 파장이
연이어 물레를 돌리자
금 간 연꽃도
그릇을 다시 향기로 채웠다
사람을 보내놓고 허기졌던 빈집은
삭은 입술을 사발에 대고
무너진 배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