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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리, 죽 한 사발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 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김남주, 사랑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윤제림, 강가에서
처음엔 이렇게 썼다
다 잊으니까 꽃도 핀다
다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천천히 흐른다
틀렸다, 이제 다시 쓴다
아무것도 못 잊으니까 꽃도 핀다
아무것도 못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시퍼렇게 흐른다
곽재구, 편지
섬과 섬 사이로
새가 날아갔다
보라색의 햇살로 묶은
편지 한 통을 물고
섬이 섬에게
편지를 썼나 보다
신경림, 별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