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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길을 걷다 - 14
게시물ID : panic_753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valanche
추천 : 2
조회수 : 3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16 14:46:09
우리는 상훈이 집 안쪽을 향해 더 깊게 들어갔다.

 

거실쪽까지 들어가자, 우리는 현관에서 부터 이어진 피의 길이, 가장 안쪽 방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뒤쪽으로 보이는 부엌과 거실은, 난장판이나 다름 없었다.

 

물 한통이 엎어져서 바닥은 물바다가 되어있었고, 거실에서는 누군가가 심하게 몸싸움을 했는지, 소파의 중간이 크게 찢어져 있었고 쿠션들 조차도 널부러져 있었다.

 

상훈이는 무언가에 홀린듯, 피의 길을 따라서 집 안쪽을 향해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영혼이 빠진 시체처럼, 아니, 놈들처럼 멍하니 집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난 걸어들어가고 있는 상훈이를 붙잡았다.

 

 ", 박상훈, 정신챙겨 임마."

 

난 상훈이의 뒤쪽에서 상훈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런식으로 무방비상태로 들어간다면, 만약 안쪽에 무언가가 있을때 제대로된 대비를 하지 못할게 뻔했다.

 

상훈이는 내가 자신을 잡자, 마치 무언가에 얻어 맞아 정신이 돌아온듯, 머리를 한번 세차게 흔들었다.

 

 "... 제발... 아니어야하는데.. 제발.. 제발..."

 

상훈이는 가지고 있던 도끼를 양손에 들며, 피의 길이 이어진 안쪽 방을 향해 걸어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방 너머는 상훈이 부모님 방이었다.

 

상훈이는 굳게닫힌 나무 문 앞에 서서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 처럼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서는 문을 열었다.

 

문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열리고 있었다.

 

문은 바닥을 따라 서서히 미끄러지며, 그 안쪽 방의 모습을 점점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상훈이는 누군가를 조심스레 부르고 있었다.

 

내가 상훈이 어깨 너머로 방 안쪽을 보았을때, 거기에는 머리를 반쯤 풀어헤친채 산발이 된 여자 한명이 침대 뒤쪽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곤 무언가에 열중을 하고 있는지, 상훈이의 말에는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있었다.

 

 "엄마...?"

 

상훈이는 안쪽으로 몇걸음 더 들어갔다.

 

침대를 사이에 두고 몇걸음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훈이가 엄마라고 부르는걸 봐서는, 상훈이의 엄마인것 같았지만, 산발이 된 머리를 보자하니 이젠 엄마라고 부르기도 힘들 것 같았다.

 

상훈이는 거리를 좀 두고 멈춰섰다.

 

그리곤 조심스레 다시, 그 여성을 향해 말을 걸었다.

 

 "..... 엄마?"

 

두사람의 인기척을 느낀 그 여성, 상훈이의 엄마는 몸을 일으켰다.

 

산발이 된 머리에,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여성은, 점점 그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여성의 손에는, 길게 늘어진 빨간색 물체가 들려있었다.

 

생물학시간에 많이 본 모양인걸로 봐서는, 아마도 소장이나 대장중 하나인것 같았다.

 

상훈이는 얼어붙어 있었다.

 

 "... 엄마....?"

 

상훈이가 나지막히 부른 소리에, 그 산발의 여성은 우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얼굴 자체는, 학교를 오가며 봤던 아주 낯익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촛점을 잃어버린채로 우리를 노려보는 회색 눈동자와, 질겅대며 무언가를 씹고 있는 입,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과 검게 물들어버린 블라우스의 앞섭은, 더이상 그 여자는 우리가 알던 그 여자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상훈이의 엄마, 아니 이제는 놈들중 하나로 변해버린 그 사람은, 우리를 보자마자 질겅대던 입을 벌렸다.

 

입에서는 씹고있던 살점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입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이 떨어지자 마자, 그 입속에서는 괴랄한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갸우우우.... 우구우........"

 

오랜만에 본 아들을 반기기라도 하는듯, 그 놈은 아주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사랑이 담긴 인사라기 보단, 새로운 먹잇감이 제발로 찾아왔다는 기쁨의 인사에 가까웠다.

 

그놈은 침대뒤쪽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우리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 엄마... 엄마........."

 

상훈이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으그윽... 우그으....."

 

상훈이의 부름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놈은 천천히 목을 긁어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린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놈은,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를 끌어안고 환영하고 싶은듯, 한걸음 한걸음씩 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상훈이는 울부짖다 시피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그 부름에 답하는 것은, 상훈이의 엄마가 아닌 괴물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로 '그래, 우리아들' 이라고 대답해주어야할 그 사람은 이미 괴물이 되어 그르렁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상훈이는 훌쩍이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의 목을 자신이 쳐야한다는 생각에 크게 갈등하고 있었다.

 

난 거기에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건 최대의 선택이기에, 그리고 이미 그 선택은 정해져 있고 마음이 정해졌어야 했기에, 난 그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상훈이는 울먹이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이었던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상훈이는 손을 떨고 있었다.

 

그리곤, 도끼를 부여잡고는 머리 위로 치켜 들었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머리위에서 멈춰있던 도끼머리는, 허공을 가르며 상훈이 엄마의 머리로 떨어졌고, 두개골을 부수며 상훈이 엄마의 뇌를 갈라버렸다.

 

그렇게 머리가 우그러진채로 상훈이 엄마의 몸은 천천히 바닥을 향해 무너져 내려갔다.

 

 

 

 

 

 

 

 

 

 

상훈이는 30분째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의 시선은, 도끼가 꽂힌채로 쓰러진 자신의 엄마였던 괴물의 시체에 고정되어 있었고, 촛점없이, 아무런 생각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난 그런 상훈이를 건드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차마 말을 붙여 상훈이를 일으켜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상훈이 엄마가 있던 방안에서, 내장이 다 파헤쳐진 상훈이 아빠가 있다는걸 차마 말해줄수는 없었다.

 

난 그렇게 상훈이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혼자 두었다.

 

난 상훈이 집을 나와, 내 집 문앞으로 향했다.

 

만약 상훈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난 과감하게 머리를 찍어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중 하나가 되어버렸다면, 이미 이세상 사람은 아닌것이기에, 또 다신 돌아올수 없다는걸 알기에, 난 과감하게 그들을 묻을 각오를 하고 집 문을 열었다.

 

내가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고 있을때, 누군가가 내 등 뒤에 서서는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미 모든것을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는 상훈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가곤, 문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따라 나온것이었다.

 

난 그런 상훈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상훈이는, 완전히 메말라 허옇게 일어난 입술을 떼며 말했다.

 

 "........ 들어가자......"

 

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난 혹시나 싶어 현관 바닥을 보았다.

 

상훈이 집처럼 긴 피의 길이 이어져있다면, 나도 내 무기를 휘둘러야 하기 때문에, 반 걱정을 하며 바닥으로 눈을 돌렸다.

 

깨끗했다.

 

피의 길은 커녕 먼지 하나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난 집 안 문을 열며 들어갔다.

 

집안 조차도, 아무런 피의 길도 없이, 그 어떤 먼지 한톨도 없이 아주 고요했다.

 

난 혹시나 싶었다.

 

아직 여기 두분이 남아계신가면 하는 생각에, 그런 희망에 가득차 부모님을 불러봤다.

 

 "엄마? 아빠?"

 

난 온 집안에 울릴 정도로 크게 부모님을 불러봤다.

 

하지만, 내가 들을수 있던건, 상훈이와 내가 만들고있는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 뿐이었다.

 

난 모든 방문을 열어봤다.

 

내 방도 텅 비어있었고, 부엌, 서재도 모두 비어있었다.

 

난 혹시나 부모님이 부모님방 안쪽에 숨어계실까 하는 생각에 부모님 방 문을 열었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볼 수 있었던건, 커버가 벗겨진 침대 뿐이었다.

 

옷장들의 문은 활짝 열린채로, 내장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안은 반쯤 비어있었다.

 

설마 모든것을 챙겨서 도망가신걸까?

 

만약 그러셨다면, 주차장에 부모님의 차가 없을것이 분명했다.

 

난 베란다 문을 열고는 고개를 내밀어 주차장을 쳐다봤다.

 

우리집에서 베란다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주차장이 바로 보였는데, 우리 차가 딱 보이는 그런 위치였다.

 

난 두리번 거리며 아빠 차를 찾아보았다.

 

아까 들어오면서 제대로 봐둘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고 있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빠 차는 없었다.

 

특히나 1204라고 쓰여진 주차장 자리가 비어있는걸로 봐서는, 이미 짐을 다 싸서는 도망치신 것 같았다.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걱정되기도 했다.

 

굉장히 빠른 상황판단을 하고 피하신거지만, 이렇게 되버리면 생사도 모르는 거니까....

 

난 애써 불안감을 떨치려 했다.

 

부모님은 분명히 살아남으실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살아남으실 게 분명했다.

 

아빠도 특전사 출신이시고, 또 워낙에 생명력이 강하신분이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려고 노력하고 계실것이다.

 

만약 살아계신다면....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 다시 만날수 있을것이다.

 

아니, 다시 만날수 있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상훈이는, 집에서 생긴 소동 이후에 우리집으로 건너왔다.

 

우리 집으로 와서도, 상훈이는 넋을 놓은채로 앉아만 있었다.

 

갈색 소파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있다가, 조용히 소파위로 몸을 누이곤, 몸을 웅크렸다.

 

상훈이의 눈에서는 멈추지 않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고, 입은 바싹 말라버려 하얀색 살껍질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곤 멍하니, 아주 멍하니 천장과 자신의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상훈이에게 해줄수 있었던건, 그나마 남아있던 이불 한두장을 꺼내주는것, 그리고 물을 건네주는것, 집에 남아있던 라면 한봉을 건네주는것 뿐이었다.

 

물론 상훈이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

 

양다리를 감싼채로 몸을 웅크린 상훈이는, 그렇게 울고만 있다 지쳐선 잠들어버렸다.

 

난 그런 상훈이 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난 눈가 주변에 짙은 눈물자국이 남아있는 상훈이를 뒤로하곤, 베란다에 가 밖을 보았다.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옥포라는 마을은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미 회색으로 변해버린 도시에, 우리 마저도 점점, 우리만의 색깔을 잃고는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희망을 잃고, 목적을 잃고, 꿈을 잃어버린채로...

 

우리도 점점 그 회색빛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회색빛에 점점 물들어, 우리의 정신은 점점 더 짙어져가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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