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강상기, 염전에서
뼈 시린 노동이
겨울 바다 위에 내리는 눈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땡볕과 바람에 단련된 눈물이
흰빛 반짝이는 소금꽃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아득한 하늘 끝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
핏빛 노을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이정록, 등
암만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첫애 업었을 때
아기의 입술이 닿았던 곳이다
새근새근 새털 같은 콧김으로
내 젖은 흙을 말리던 곳이다
아기가 자라
어딘가에 홧김을 내뿜을 때마다
등짝은 오그라드는 것이다
까치발을 딛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손차양하고 멀리 내다본다
오래도록 햇살을 업어보지만
얼음이 잡히는 북쪽 언덕이 있다
언 입술 오물거리는
약숟가락만한 응달이 있다
서안나, 애월
나는 밤을 이해한다
애월이라 부르면 밤에 갇힌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맨발로 돌 속의 꽃을 꺾었다
흰 소와 만근의 나무 물고기가 따라왔다
백사장에 얼굴을 그리면
물로 쓰는 전언은 천 개의 밤을 끌고 온다
귀에서 꽃이 쏟아진다
내 늑골에 사는 머리 검은 짐승을 버렸다
시집에 끼워둔 애월은 눈이 검다
수평선에서 밤까지 밑줄을 그어본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검정은 어디쯤에서 상심을 찢고 태어나나
나는 오늘부터 저녁이다
박소란, 감상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이 있었네
가파른 계단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들었네
뜻 없는 선율이 푸수수 귓가에 공연한 파문을 일으킬 때
슬픔이 왔네
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곁을 파고들었네
새하얀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잠시 울기도 하였네
슬픔은 되돌아가지 않았네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데리고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렸네
임지은, 대충 천사
천사가 있다면
자르다 만 핫케이크에 누워 있을 텐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서
나만 안다
천사는 대충을 좋아한다
대충 싼 가방을 메고 피크닉 가는 것을
몇 개의 단어로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천사는
모든 것이 대충인 세계로 온 것
좋아해서 그어놓은 밑줄 위에 천사가 누워 있다
내가 좀 전에 벗어놓은 추리닝을 입고 있는
천사는 튀어나온 무릎만큼
상심한다
인간은 악취 위에 뿌린 냄새 같아서
향수로도 잘 감춰지지 않고
우리는 틀어놓은 음악을 함께 듣고 있지만
모두 자기 자신만 듣느라
천사가 곁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나의 이어폰으로 놀러 온 천사여
지금 그 기분을 벗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