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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길을 걷다 - 16
게시물ID : panic_754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valanche
추천 : 1
조회수 : 3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17 16:27:05
누군가에게는 먹이를 찾아다니는 밤이고, 누군가에게는 살아남으려 발버둥 쳐야하는 밤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어둠의 밤이고,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검은색 차양을 드리워주는 심연의 밤이다.

 

누군가에게 이 밤은 고요한 사색의 밤이고, 누군가에겐 넘기기 힘든 통한의 밤이다.

 

내가 전자라면, 상훈이는 후자에 가까웠다.

 

상훈이는 숨이 넘어갈정도로 울어대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마도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퉁퉁 부어있든지, 눈이 퉁퉁 부어있든지 둘중 하나일 것이다.

 

난 그런 상훈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기가 지금 감내해야할것이 어떤것임이 알기에, 차마 손을 댈수 없었다.

 

내가 괜시리 건드렸다간, 스스로 쌓아왔던 모든것이 무너져내릴수 있어서, 내가 지금 할수 있는건, 무너져버린 상훈이의 마음이 다시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무너져내려버린 자신의 마음을, 마저 다시 쌓을 수 있도록 가만히 둘수밖에 없었다.

 

난 그런 상훈이를 거실에 두고, 부엌에서 쪼그려 불편한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이 밝아지는걸 보고는 눈을 떴다.

 

창밖에서는 기나긴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내가 웅크려있다 눈을 떴을땐, 상훈이는 내앞에서 내가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김경현. 일어나. 슬슬 움직여야지."

 

상훈이의 목은 반쯤 잠겨있었다.

 

아마 밤새 울다가 지쳐 잠들어서 그런지, 할아버지 소리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난 찌뿌둥 해진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웅크리고 자서 그런지 온몸이 쑤셨다.

 

내가 일어서자마자 볼 수 있었던건, 퉁퉁 부어있는 상훈이의 눈이었다.

 

안쓰러울정도로 벌겋게 부어있어, 차마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얻어 맞았냐....?"

 

난 퉁퉁부어버린 상훈이의 눈을 보고 한마디를 건냈다.

 

 "..... 죽고잡냐?"

 

상훈이는 약간 얼굴을 찌푸리곤 내 배를 살짝 쥐어 박았다.

 

난 냉장고로 발길을 옮겨, 냉장고를 열며 말했다.

 

 "계란 하나 줄까?"

 

상훈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쓰레기같은 새끼...."

 

 

 

상훈이는 어느정도 회복을 한것 처럼 보였다.

 

못봐줄정도로 퉁퉁 부은 얼굴에 쉬어버린 목만 빼면, 나머지는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데 있는 대피소쪽으로 몸을 옮겨보기로 했다.

 

이런 난장판에서, 식량이나 물같은게 조금이라도 더 있어야지, 안그러면 말라죽든지 굶어죽든지 물려죽든지 셋중 하나일게 뻔했다.

 

내가 이 주변에서 살던 기억을 더듬어 봤을때, 근처에 있는 약국 맞은편 건물 지하주차장이 대피소였던 게 떠올랐다.

 

만약 라디오나 방송에서 했던 소리가 정말이라면, 그쪽으로 가면 뭐 하나든 얻을수 있을 것이다.

 

상훈이와 난, 옷가지가 들어있던 가방을 싹 비우곤, 티셔츠와 바지 하나, 물과 건조식량 세개씩을 챙겨 넣었다.

 

만약 대피소에 물자를 쌓아놨다면, 가방에 밀어 넣을 각오를 하곤 집을 나섰다.

 

또 혹시나 우리 얼굴을 보였을때,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미친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모자를 깊게 눌러쓰곤 마스크까지 눌러썼다.

 

 

 

 

 

 

 

엘리베이터가 되지 않아, 또다시 계단을 통해 걸어 내려왔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막아놓은 시체와, 피의 강을 지난후,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크게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었는데도 불구하고, 바깥에는 놈들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깨어진 창문을 넘어, 바깥으로 몸을 옮겼다.

 

시간은 오전 11.

 

3월인데도 불구하고, 약간은 쌀쌀했다.

 

햇빛은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기온 자체도 낮고 바람도 약간 불고 있어서, 그리 기분이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우리는 입고있던 바람막이의 지퍼를 굳게 잠궜다.

 

옆에서 지퍼를 올리는 지익 거리는 소리가 나자,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곧 은행을 털거 같은 덜떨어진 강도 한명처럼 보였다.

 

아마 상훈이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나 보다.

 

우린 서로를 보며 피식하곤 웃었다.

 

 ", 무슨 은행 털러가냐. 완전 무장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니까 딱이네 큭큭큭..."

 

나는 아직도 굳어있을 상훈이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약간의 농담을 날렸다.

 

상훈이는 내 말을 듣고는 피식하고 웃으며 나에게 답을 해주었다.

 

 "어우, 우린 은행강도라기 보단 나홀로집에쪽이 더 가깝지. 덜떨어진 두명이 대피소 털러 가는거잖아 큭큭큭..."

 

상훈이는 가방끈을 고쳐 메곤,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우리는 그렇게 한걸음씩, 아파트 주차장을 나서선 골목길쪽으로 발을 옮겼다.

 

 

 

우린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혹시 모를 놈들의 습격에 대비에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가 기억하는 옥포의 모습은, 아주 활기찬 동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가게들마다 사람이 들어차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한손에 맥주병을 들고 걸어다니며 얘기하는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큰 길가에서는 수많은 차들이 옥포를 거치며 지나가고, 중간중간 골목길 마저도 차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이런 옥포의 모습은 우리 상상속에만 남게 되었다.

 

단 한사람의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당연스레 들려와야할 시끄러운 사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주변에 있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아 놓았었다.

 

가게 안쪽이 어두운걸로 봐서는, 안쪽의 불을 모두 꺼놓은 듯 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편의점들의 앞문은 깨어지거나 안쪽으로 열려있었고, 안쪽의 물건들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아마 살아있는 사람들이 몰려와 물건들을 다 가져갔을게 뻔했다.

 

편의점 상황이 이렇다는것은, 더 큰 마트 상황은 안좋을게 뻔했다.

 

옥포동에만 마트가 세군데가 있었다.

 

수협, GS마트, 그리고 농협.

 

농협은 건물을 통채로 신축한다고 완전히 뜯어서 없어졌으니, 아마도 수협과 GS 마트쪽으로 사람들이 가득 몰렸을 것이다.

 

워낙에 사람들이 바글바글대던 동네라, 그곳은 이미 털렸을게 뻔했다.

 

 "... 이거 완전 죽은 도시네 죽은도시....."

 

난 주변을 둘러보다 상훈이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골목길쪽을 살펴보던 상훈이는, 내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말은 좀 조용히 해라. 좀비들 잔뜩 몰릴라..."

 

상훈이는 내게 냉정하게 한마디를 뱉고는, 다시 골목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약간 퉁명스러워지기도, 또 약간 차가워지기도 한것 같은 상훈이는, 내가 알던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훈이가 겪었던 그 일련의 일들에, 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이해를 해주었다.

 

평생을 힘들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힘들테니까......

 

우리가 여관 앞쪽을 지나갈때, 옆쪽 골목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그으.... 그르......."

 

우리는 재촉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여관쪽 골목에서, 흰색 런닝과 반바지를 입은 놈이 하나 걸어 나왔다.

 

놈은 지나가는 먹이 하나를 잡으려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자마자 발걸음을 옮긴듯 했다.

 

 "이건 내꺼다..."

 

상훈이는 도끼를 곧게 잡고는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난 말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저렇게라도 상훈이가 모든 원망을 돌렸으면 했다.

 

상훈이는 몸을 옆쪽으로 틀어 도끼를 몸 뒤로 크게 뺐다.

 

 "더러운 시체새끼...."

 

그리곤 걸어오는 그 속도를 그대로 실어, 도끼를 머리위로 크게 휘둘렀다.

 

빨간색 도끼자루는, 상훈이의 머리 위로 크게 원호를 그리며, 밖으로 걸어오던 놈의 머리를 향해 질주했다.

 

어찌나 힘을 강하게 주었던지, 도끼는 놈의 머리위에 닿자마자 놈의 버리를 부수어 내리며 반으로 갈라버렸다.

 

빠각!

 

두개골을 부수어 내리는 소리가 골목 가득 울려퍼졌다.

 

놈의 머리는, 도끼 한방에 목까지 잘려 내려간채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상훈이는 놈이 쓰러지자 마자, 놈의 목을 밟고는 도끼를 뽑아 들었다.

 

도끼에서는 놈의 뇌수와, 놈의 검은색 피가 묻어 나와, 빨갰던 도끼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상훈이는 마스크를 내리곤, 놈의 시체 위에 침을 뱉고는 몸을 돌렸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듯, 놈의 시체를 뒤로하고 걸어나갔다.

 

난 그런 상훈이의 뒤를 따라, 대피소로 쪽으로 걸어나갔다.

 

난 느낄수 있었다.

 

상훈이가 변했다고...

 

 

 

우리는 골목쪽에서 걸어나와, 옥포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길쪽으로 나왔다.

 

왼쪽으로 돌면, 약국이 나올것이고, 그 맞은편 건물 지하주차장에 대피소가 차려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긴장되기 시작했다.

 

골목길은 좁아도 볼 공간이 좁기라도 하지, 여긴 길도 넓은데다 건물들도 많고, 건물 입구쪽이 많아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난 오른손에 쥐고있던 크로우바를 더욱 꽉 움켜잡았다.

 

상훈이는 좌우를 둘러보며, 왼쪽으로 길을 틀었다.

 

내가 상훈이를 따라 몸을 틀었을때, 바로 길 맞은편에서 약국이 보였다.

 

녹색 십자가와 함께, ''이라는 글자가 써진 간판을 가진 건물 안쪽은, 아무런 불도 켜지지 않은채, 또다른 어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약국의 불은 켜지지 않은채, 문조차도 열리지 않은 채로 그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우리는 그 맞은편쪽으로 눈길을 돌리곤, 발소리를 죽인채로 걸어나갔다.

 

상훈이는 앞쪽을 보곤 내 쪽으로 손을 뻗어 오지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상훈이 어깨를 넘어 앞쪽을 보니, 십수명의 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상훈이는 나를 뒤돌아보곤, 입가로 손을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조금만이라도 소음을 낸다면, 놈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걸어올것이 분명했다.

 

상훈이는 나를 돌아보며 조용히 입을 뗐다.

 

 ".... 죽일수 있겠냐....?"

 

상훈이를 넘어 대충 놈들 머릿수를 세어보니, 열둘정도 되는 것 같았다.

 

어짜피 걸어오는 놈들인데다가, 많이 퍼져있기에 안잡히게 조심만 한다면, 충분히 죽일수 있을것 같았다.

 

난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상훈이는 눌러쓴 모자 너머로, 내 눈속의 의지를 본건지, 놈들을 바라보며 도끼를 고쳐잡았다.

 

우린 성큼성큼 놈들에게 다가갔다.

 

가장 가까이있던 놈중 하나가, 우리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리곤 먹잇감을 찾았다는듯, 우리쪽으로 손을 들고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입에선 괴물 특유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그 신음소리는 주변의 놈들의 이목을 모두 끌어왔다.

 

이제는 도망치기도 힘들다.

 

도망쳤다간, 놈들이 끝까지 따라올지도 몰랐다.

 

여기서 모든 놈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대피소 안쪽으로는 걸어들어가지 못할 분더러, 더이상 이 근처로 나오지 못할게 뻔했다.

 

혹은... 우리도 놈들중 하나가 된다든지......

 

난 굳게 마음을 먹곤,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가장 앞에있던 놈이 나를 향해 손을 뻗어들었다.

 

놈들따위에게 내 남은 여생을 줄순 없었다.

 

난 그렇게 놈의 머리를 향해 크로우바를 휘둘렀다.

 

그것이, 내가 맨정신으로 놈들과 싸운 첫번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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