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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우, 공범
의자를 사러간다
내가 느끼는 편안함보다
빈 의자라는 형태가 아름다운
소모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의자를 고르고 있다
첼로 연주가 가능하고
식탁에 놓을 수 없고
명확하게 빨강, 초록, 검정
부르기 힘든
색깔이어야 한다
의자를 산다
다 커버린
애완동물들이 좋아해줄까
의자를 버린다
이틀이 지나기 전에
필요 이상의 쓸모가 생기기 전에
버린 의자에 앉는다
비로소 나는 사회인이 된다
조용미,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빈소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 것 같다
며칠간 그곳을 떠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으로
읽지 못할 긴 편지를 쓴 것도 같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천천히
멱목을 덮었다
지금 내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길고 따뜻했던 손가락을 느끼며
잡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었으며
우리의 다짐은 얼마나 위태로웠으며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초라했는지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이곳에서
당신과 나를 위해 만들어진 짧은 세계를
의심하느라
나는 아직 혼자다
손택수, 터치
건반을 누르는 것이 아니다
건반 위의 공기를 들어 올리듯이
얼른
뗄 줄 아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이 터치
안장을 눌렀다가 떼는 식으로
내 자전거 바퀴도 돌아간다
대지와 하늘이 챙, 은빛 쇳소리를 내는
어느 구비에는 연못을 치는 빗방울의 연타음이 들려오고
두두두두 뭉친 겨울 벌판을 안마하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공기를 야구공처럼 때려대는 스윙
스윙, 웅크린 꽃망울에 가닿는 봄 햇살의 터치
터치
타자기처럼 두드려대는 한 점 한 점
속에서 온 우주가 팍 터져버릴 때까지
닿는 순간
멀어질 줄 아는
운행
윤제림, 봄은 길게 눕는다
일찌감치 구덩이를 파놓고
술과 담배 적당히 나눠 먹은 인부들이
공원묘지 차일 아래
벌러덩 누워 있다
한 사람만 몸이 달아서
긴 언덕길을 분주히 오르내릴 뿐
누워서 올 그대도
그대를 들고 산비탈을 올라올 사람들도
아직 보이지 않는데
그대 누울 자리에
목련꽃 이파리 서넛이
먼저
들어가 누웠다
나무 그림자도 길게 누웠다
최금녀, 잠 속의 발
한 번도 신어본 적 없는 것을 신었다
그의 두 발이 거실에 있고
내 발 한쪽이 다용도실에서 땀을 흘린다
그의 발은 차고도 남아
나에게 흙을 넣고 그 위를 걸어다닌다
나의 발은 아직 덜 자라서
모래밭에서 길어진다
덜 자란 발과
차고 넘친 발이 쓴 사랑시들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밤
그는 잠속에서 내 긴 발을 잘라낸다
반창고를 붙이고 잠드는 발
100가지의 문수와
100가지의 색깔이 현관에 엉켜있다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것을 신고
마트로 간다
로봇 걸음걸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