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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규, 죽은 새를 위한 메모
당신이 내게 오는 방법과 내가 당신에게 가는 방법은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전언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이 꽃봉오리처럼 터지거나
익은 사과처럼 툭 떨어질 때
비로소 당신이 당도한 걸 알아차린다
당신에게 가기 위해 나는 구름과 바람의 높이에 닿고자 했지만
당신은 언제나 내 노래보다 높은 곳에 있고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낯선 목록에 편입되어 있다
애초에 노래의 형식으로 당신에게 가고자 했던 건 내 생애 최대의 실수였다
이를테면, 일종의 꿈이나 허구의 형식으로 당신은 존재한다
모든 결말은 결국 어디에든 도달한다
자, 이제 내가 가까스로 당신이라는 결말에 닿았다면
노래가 빠져나간 내 부리에 남은 것은 결국 침묵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발설했고 당신은 아마
먼 별에서 맨발로 뛰어내린 빛줄기였을 것이다
오랜 단골처럼 수시로 내 몸에는
햇빛과 바람과 오래된 노래가 넘나들고 있다
김행숙, 그곳에 있다
신체는 깎아지른 듯 절벽이 되었어
기도하기 좋은 곳
자살하기에 더 좋은 곳에서
나의 신체는 멈추었다
나는 그리워했다
그리워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
절벽에 매달린 기분으로
너의 손을 잡았을까
그런 기분으로
너의 손을 놓칠 때
허공을 할퀴는 분홍 손톱들이 활짝 활짝 피어나는 곳에서
저녁의 꽃처럼 오므리는 곳에서
안미옥, 거미
새벽이 되기 전부터 저 닭은 울고 있다
어차피 허물어질 것이라면
연약한 재료를 구하고 싶었다
허공을 돌면서
지금은 버티는 중이라고
나를 속여왔다고
물을 견디고 있는 모래벽
연결은 끊을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
내게는 외면하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도망치는 발에게서 조금 더 멀어지려고
차가움은 가파르고
흉터에서 출발하려는 마음
나는 그저 내게 좋은 일을 해야 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양이는 눈을 피하는 법이 없다
볼 수 없던 것을 보려고 할 때
나는 숨을 참는 얼굴이 된다
이성복, 하지만 뭐란 말인가
한 잎의 겸손도 없이
봄은 꽃들을
다 불러들인다
해 지면 꽃들의
불안까지도
하지만 뭐란 말인가
저렇게 떨어지고 밟혀
변색하는 꽃들을
등불처럼 매달았던
봄의 악취미는?
김용택, 입맞춤
달이 화안히 떠올랐어요
그대 등 뒤 검은 산에
흰 꽃잎들이 날았습니다
검은 산 속을 나와
달빛을 받은
감미롭고도 찬란한
저 꽃잎들
숨 막히고, 어지러웠지요
휘황한 달빛이야
눈 감으면 되지만
날로 커가는 이 마음의 달은
무엇으로 다 가린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