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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 출신 학생운동가와 주사파는 같은 뜻이 아닙니다.
게시물ID : sisa_9310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봄날벚꽃너
추천 : 9
조회수 : 137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5/10 17:56:39
안녕하세요.
오유 회원가입은 사실 2013년이지만 그 이전에 눈팅족으로 있었던 기간까지 합하면...
오유를 틈틈이 들락거린지는 그래도 십년쯤은 되지않을까 싶은 유령회원입니다.
 
저는 90년대 초충반에 당시 전국에서도 학생들의 정치참여가 가장 활발했던 대학중의 하나에 입학하면서 대학생활을 했었습니다.
그 시절 전국 대부분 대학교의 총학생회는 운동권 계열의 학생들로 조직된 학생회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소위 말하는 NL계열 학생회가 절대 다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87년 대선직선제 쟁취 이후의 학생운동은 전대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같은 각학교 대표자들의 회의체 형식으로 발전됐다가
이후 수백만 대학생들의 실질적인 대표기구로의 발전을 그 최종목표로 하고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과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한대련(한국대학생총연합) 같은 최하부조직으로까지의 확장을 지향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제가 이런 글을 써보려고 생각한 것은
 PD계열은 노동운동가이고, NL계열 운동가는 북한을 신봉했던 빨갱이 주사파였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해서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때 당시 학생운동의 화두는 자주’, ‘민주’, ‘통일’... 이 세가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운동가들 모두 이 세가지 핵심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것들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우선순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그 차이가 바로 PDNL이라는 계열을 구분하게 하는 차이점이 되었다고 기억합니다.
 
 NL쪽 운동가들은 우리나라 현대사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을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친일세력의 청산실패와 분단고착 등으로 보고,
먼저 외세부터 척결하여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어야만 그 이후에 내부적인 민주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던 반면에,
PD 계열은 내부적인 계급투쟁과 노동해방을 외세로부터의 자주적 정부수립보다 더 시급한 가치로 여겼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세가지 가치중에서 NL 계열은 자주를 우선시했고, PD 계열은 민주를 우선시한 것이지요.
그래서 NL 계열은 반미가 가장 중요한 가치중 하나였으며, PD 계열은 노동운동, 시민운동이 핵심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L 계열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학생운동이었다는 것은 제 생각엔 전혀 다른 말 같습니다.
 
주사파라는 말은, 김일성이 1994년에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시 서강대 박홍 총장(신부)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했던 것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당시 방송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한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남한에 전파하고 있으며, 이미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등등.....
 얼마나 난리였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그런 주장을 했던 박홍총장은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뭐 당시의 시대가 그런 시대였어요.
오죽하면 술먹고 학교 학생회실에서 자고 있는 학생들을 사복경찰이 새벽에 강제로 연행한 후에,
 나중에 주사파 연구 조직으로 엮어서 국보법을 적용하기도 했었으니깐요.
적어도 저는 그 학생들이 평소에 김일성, 북한을 찬양하고 주체사상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본적도 들은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당시이후 주사파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한때 우리나라에 불었던 매카시즘의 광풍 정도로 생각해요.
 
 
지금 오늘날에 와서 설령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또 현재 그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질되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당시 비민주적 정부하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그 시기를 단순히 현재의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해버리는 몰이해로 인해
폄하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짧은 생각이나마 글을 써봤네요.
 
참고로 저는 무슨 거창한 학생운동 경력이 있거나, 학생운동에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바쳤다던가 하는...
그런 운동권 출신이 절대 아닙니다. (국정원 요원님들 저 같은 얼치기 뒷조사해봐야 아무것도 안나와요)
동기선후배들과 가끔 집회참석하고, 당시의 역사, 철학, 사회과학 서적 등을 조금씩 읽는 것을 좋아했던 정도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단편적이고 정확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내용은 선배에게 술자리에서 주워들었던 내용일수도 있고요 ㅎㅎ
혹시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시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지적해주신 댓글에 제가 대댓글은 아마 안달수도 있지만 ...
거는 제가 글쓰는걸 별로 안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니깐
혹시라도 삐졌거나 건방져서 그러는 것은 아니냐는 오해는 말아주세요. ^^ 
 
 
오늘 비서실장이 된 임종석과 평양통일축전에 남측대학생 대표로 참석했던 임수경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더 쓰기 귀찮아졌네요.
암튼 그래요... 부족한 글 싸질러대서 죄송합니다. 문제될시 자삭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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