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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대리들 장면'이 현실성 있으니 문제 없다는분들께
게시물ID : drama_210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금보
추천 : 11/4
조회수 : 116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2/20 05:15:53
대리들이 여성 직원들을 평가하고, 안영이가 애교를 운운하는 장면에 불편함을 토로하는 글의 댓글을 보면

저건 현실이 그래서 그런거다. 실제 그 또래 남성 직원들이 그런다. 
여자들은 실제 저런 처세술을 펼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오히려 리얼한 장면이다. 라는 반응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건 사실 현실에 그 장면이 실제 존재하느냐 여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고졸 출신 낙하산 장그래는 애초에 불가능한 인물이니까요.

 
작가나 감독은 현실에서 실제 발생하는 수 많은 상황 중 '의미 있는 장면'을 골라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수 많은 재료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전부 선택되지는 않는 다는 거에요.

회사에서 여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성추행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더 심한 일도 사실 벌어지구요. 그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작가가 그 장면을 선택해 다루는 시각입니다. 그건 주제의식과도 연결될거에요.

똑같은 배우로 똑같은 정사 장면을 찍어도,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맥락, 카메라 앵글에 따라 명작이 되기도 하고 포르노가 되기도 하는 것 처럼요.


전 19화에서 다른 장면들은, 드라마 초기 분량을 볼 때 처럼 즐겁만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넘길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대리 장면은 보면서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즐거움이 모두 모욕당한 느낌.. 

카메라 앵글, 이야기 등장 타이밍, 주인공들의 대사와 그것에 대한 주변인의 반응.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였을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좋은 쪽으로는 답이 나오질 않네요.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성희롱의 정의를 용감하게 말하던 안영이와 
'애교'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남성 상사들의 즐거움을 위한 여직원들의 '서비스'를 당연시하고 합리화하는 안영이. 

사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전자 쪽이 완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아니, 완생이라기보다는 미생일 가치가 있는 미생.

좋게좋게 넘어가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행동하는 건 확실히 괴롭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통념에 맞서 싸우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안영이는 초반에 너무 심하게 당하면서 완전히 마모되어 버렸는지 "사회 생활을 하려면 그정도는 해야 한다"라고 과거의 자신을 부정합니다. 

소속감. 동료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의 달콤함에 눈이 멀어 
애초 그들이 자신을 배척했던 이유가 얼마나 터무니없는것이었는지 잊어 버리고, 그냥 어떤 비판 의식도 없이 내면화 해 버린 것 처럼.

업무 능력으로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하던, 그 용감하고 꿋꿋하던 과거의 안영이가. 
시청자들이 모두 사랑하던 그 안영이가 순식간에 '철부지'로 폄훼되는 순간, 
과거의 그녀의 그런 모습에 기쁨을 느끼던 시청자들 역시 동시에 '철부지'가 되어 버린 겁니다. 

작품 속 모든 대사와 장면은 작가와 감독이 시청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이 모욕감은 적어도 '미생'을 만드는 작가와 감독은 '꼰대'여서는 안된다는 제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미생인데 작가와 감독은 이미 완생이고, 완생에 도달한 입장에서 배우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답'을 말해주려 하는 것 같기도 했구요. 

제 입장에서 그나마 그 답은 몹시 불쾌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합리화'였구요. 

덕분에 개인적으로 오늘 안영이는 강제로 사회화당한 미미인형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연히 원작과 드라마의 내용이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은 깊은 이해와 상당한 고민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원작에 대한 예의인거겠지요.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했는지, 역량이 부족했는지. 여건상 한계가 있었던 건지 그건 알 수 없네요. 

아무튼 오랜만에 본방 사수해가며 본 작품이기에 안타까움도 큽니다. 고려하던 DVD구매는 보류할 생각이에요.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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