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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식, 묵은 냄새
시장통 지나다
늦은 점심 한 그릇 먹는다
푹 곰삭은 젓갈이며
신김치 숭숭 우려낸 찌개며
뒷맛 다시며 문을 나서는데
밥집에 눌어붙은 냄새
온몸이 고스란히 받아 안았다
오랜 세월 묵은 때처럼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어느덧 핏속까지 녹아든 그대
맵고, 짜고, 때로는
시금털털하기까지 한 사람아
김혜순, 당신의 눈물
당신이 나를 스쳐보던 그 시선
그 시선이 멈추었던 그 순간
거기 나 영원히 있고 싶어
물끄러미
물
꾸러미
당신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것인
물 한 꾸러미
그 속에서 헤엄치고 싶어
잠들면 내 가슴을 헤적이던
물의 나라
그곳으로 잠겨서 가고 싶어
당신 시선의 줄에 매달려 가는
조그만 어항이고 싶어
김용희, 옛사람
눈꽃이 한번 피고
지는 사이
눈꽃을 한번 바라보다
눈길을 가만히 거두는
사이
옷에 물이 들었다
저녁이 작은 숨소리를 내고
지나가고
눈꽃
흰 가시가
저녁 빛을 조금씩 찢어
세상 모든 모서리가 서서히
허물어지려 했다
눈꽃은 반짝이며 잠잠히
상처를 나에게 내밀어
보여주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았는데도
저녁이 왔다
슬프지도 않게 조금씩
조금씩
저녁이 내렸다
이장욱, 전선들
우리는 완고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는 서로 통한다
전봇대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배선공이
어디론가 신호를 보낸다
고도 팔천 미터의 기류에 매인 구름처럼
우리는 멍하니
상공을 치어다본다
너와 단절되고 싶어
네가 그리워
텃새 한 마리가 전선 위에 앉아
무언가 결정적으로 제 몸의 내부를 통과할 때까지
관망하고 있다
김형영, 조금 취해서
남 칭찬하고
술 한 잔 마시고
많이는 아니고
조금, 마시고
취해서
비틀거리니
행복하구나
갈 길 몰라도
행복하구나